몬스터 콜스 - 영화 [몬스터콜] 원작소설
패트릭 네스 지음, 홍한별 옮김, 짐 케이 그림 / 웅진주니어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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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 대의 오랜 기간, 내 삶은 무채색이었다. 지나가다 교통사고를 당해서 죽는다 해도 아무 아쉬울 것이 없었던 시절. 하루하루 지나는 시간들이 무의미했다. 아파트 베란다에 나갈 때마다 아래를 내려다보며 생각했다.‘여기서 떨어지면 죽을까?’하지만 잘못되면 살 수도 있을 것 같고, 아플 것 같기도 해서 포기했다.^^; 많은 사람들도 만나보고, 늦게까지 직장 일을 하며 몸 안에 피곤을 잔뜩 담아오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마음속은 텅 비어버리는 듯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엘리베이터의 거울을 바라보면 공허한 두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엇으로도 채워질 것 같지 않은 외로움이 스멀스멀 찾아와 나를 집어삼켰다. ‘젊음은 한순간이라고들 말하지만, 그 시간이 꽤 오래 계속되지 않는가,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더 긴 세월동안.(힐러리 맨틀, <사랑의 실험>중에서, p9)’그렇게 끝나지 않아 죽을 것만 같은 현재를 담고 있는 내게 미래는 존재하지 않았다.

 

처음에 보았을 때에는 그저 독특한 책이었다. 예술적인 무채색의 그림과 함께 몬스터가 등장하며 상상력을 자극하는 동화 같은 이야기, 한 아이의 치열한 성장 과정이 담긴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었다.

왜 다시 읽어볼 생각이 들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며칠 뒤의 나는 편안히 누워서 책장을 가볍게 넘기고 있었다. 그런데, 두 번째로 접한 책은 처음과는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오랜 기억들이 생각나 가슴이 한동안 먹먹해졌다. 지금에 와서 웃어넘길 수 있는 가벼운 이야기부터 지금까지도 나를 무겁게 하는 이야기까지 영화 속 장면을 보는 것처럼 머릿속에서 이야기가 펼쳐졌다. 자세를 고쳐 잡고 문장 하나하나를 선명하게 짚어갔다.‘이야기가 작가에게서 끝날 수는 없다.(p6)’며 몬스터가 세 편의 이야기와 주인공 코너의 네 번째 이야기를 넘어 다섯 번째 이야기를 자꾸 요구하는 것만 같았다.

 

과거의 기억은 디지털적이다. 모든 과정이 기억나는 게 아니라 특히 인상 깊었던 몇몇 장면들이 한 장 한 장 떠오른다. 직접 했던 행동들뿐 아니라 생각만 했을 뿐인 기억들도 선명해질 때가 있다.

어리석게도 나를 이렇게 무채색으로 만든 것이 다 주변 사람들 탓이라고 생각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속으로 원망의 말을 뱉어냈다. 마음속에 폭풍이 지나가고 거센 바람이 불었다. 내 앞에 펼쳐지는 상황으로 내 삶을 이끌어가는 것은 나이므로, 모든 것은 나의 책임이라는 자각을 한 후에도 상황은 썩 달라지지 않았다. 모든 게 내 탓이라 생각하니 나를 더욱 무겁게 누르는 짐들이 다가왔다.

진짜 나의 모습은 무엇인가? 타인에게 보여 지는 모습과 스스로 느끼는 모습과의 괴리감에서 허무가 몰려왔다. 표면적으로 나는 평온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착한 사람으로 비춰졌다. 누군가 내게‘착한 아이야. 네가 그렇게 착하지 않아도 되면 좋겠구나.(p31)’라며 위로를 해주었으면 덜 힘겨웠을까?‘항상 좋은 사람은 없다. 항상 나쁜 사람도 없고. 대부분 사람들은 그 사이 어딘가에 있지.(p91)’‘삶은 말로 쓰는 게 아니다. 삶은 행동으로 쓰는 거다. 네가 무얼 생각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오직 네가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다.(p255)’라는 말을 해주었으면 좀 나아졌을까? 생각을 했다는 것만으로 죄책감이 느껴지는 상황에서 조금이나마 위안을 받을 수 있었을까?

‘너는 고통이 끝나기를 바랐을 뿐이다. 네 고통. 고통 때문에 네가 겪는 소외감을 끝내고 싶었다. 지극히 인간적인 바람이다.(p253)’몬스터가 코너에게 하는 말은 어느 덧 내게 들려주는 말이 되어 나를 어루만져주었다.

 

사람은 이중적이다. 진실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맞닥뜨리면 어느 정도의 사실을 얘기한 후에는 방어막이 작동한다. ‘때로는 누구보다도 스스로를 먼저 속여야 할 때가 있지.(p88)’ 진실이기도 하고, 진실이 아니기도 한 말로 스스로를 에워싼다. ‘진심이었다. 하지만 진심이 아니기도 했지.(p253)’그래서 ‘진실은 속임수처럼 여겨질 때가 많다.(p91)’모순된 말이지만 두 말이 다 진실이 되는 묘한 상황이 연출된다. 지금 생각해보면 죽고 싶었다고 생각했던 그 시기에 나는 그만큼이나 절실하게 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요즘에도 마음 한 구석이 외롭고 허무해질 때가 있어요..”슬쩍 울적해진 마음을 선생님께 비춰보았다.

“사람에게는 늘 그런 면이 있는 것 아닌가? 꽉 채워져 있는 것보다 한 구석 비어있어야 새로워질 수 있는 거지.”

이 말을 들으면서 예전에 즐겨 맞추던 아기공룡이 그려진 9칸짜리 플라스틱 퍼즐이 생각났다. 하나의 빈 칸이 있어야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맞출 수 있는 퍼즐. 꽉 차 있는 마음속은 다 맞추고 움직이지 못하게 해 놓은 퍼즐처럼 삶을 굳어지게 할 수도 있겠다. 죽고 싶어질 때에도 느껴졌던 허전함이 살고 싶은 지금도 느껴지는 걸 보면 어쩌면 인간은 늘 마음 한 구석에 퍼즐의 빈 칸을 가지고 다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이리 저리 빈 칸을 채우려고 움직여가는 과정이 바로 ‘삶’이란 것일까?

 

글을 쓰면 행복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글을 쓰면 아프기도 하다. 진심이 아니면 써지지 않기에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나를 드러내게 된다. 내게 있어 글은 즐거움이면서 괴로움이다.

‘그냥 진실이 아니라, 너의 진실...(중략)...너는 네 진실이, 네가 감추는 것이, 네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라는 걸 안다.(p55)’새빨간 주목의 열매처럼 몬스터의 말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진정한 진실은 ‘용기’일까? 그것을 기꺼이 드러낼 수 있는 용기. 용기와 함께 드러내어진 진실은 두려움을 녹여내고 그 사람을 치유해준다.

‘모든 이야기가 행복하게 끝나는 건 아니(p180)’지만, 나는 이제 서서히 불완전한 나의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어볼 수 있을 것만 같다.‘이야기는 중요하(p189)’고,‘진실을 담고 있다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일 수 있(p189)’으므로.

이제 나의 다섯 번째 이야기가 미래를 향해 펼쳐지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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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ungho 2012-08-11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용기와 함께 드러내어진 진실은 두려움을 녹여내고 그 사람을 치유해준다.'는 나비종님의 말씀이 가슴을 울리네요. 이제 두려움을 이겨낸, 나비종님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삶의 이야기를 계속 기대하겠습니다.


천수진 2012-08-13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예전에 공지영씨의 글에서 이런 문장을 본 적이 있어.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럽지만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음을 아는 것이다."
오늘따라 왠지 그 말이 와닿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heliosinn 2012-09-16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주 다크하면서도 울림이 있는 책이지요.

나비종 2012-09-17 20:30   좋아요 0 | URL
내면을 깊게 파고 들어가는 내용이라 스스로를 냉철하게 바라보게 하는 책입니다.. 어린이들을 위한 책인듯 하지만 어른들이 읽으면 울림이 더욱 클 것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