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 (40만 부 기념 스페셜 리커버)
태수 지음 / 페이지2(page2)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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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에 막연히 상상했던 나이의 상한선은 서른이다. 무려 50대가 내게도 올까. 60대가 머지않은 지금의 나이가 당시에는 TV 속 연예인처럼 비현실적으로 자리한다. 80대 어머니의 나이와 나의 미래가 선뜻 겹치지 않는 것처럼. 서른 살이면 성숙한 어른일 테니 뭐든 척척 해결하며 살겠지? 지금보다 두 배 이상의 기간은 어른이 되기에 충분한 시간이잖아? 고작 서른 살을, 겨우 10대는 무적의 어른인 양 우러러본다. 성인과 어른의 개념을 착각한다.

19세 이상 맞아? 인증해 봐. 드넓은 뷰가 야릇하게 펼쳐질 꼬야, 흐흐흐. 붉은빛 OTT가 끈적하게 묻는다. 훗~ 일말의 거리낌도 없다. 성인의 관문을 열어젖히는 열쇠는 몸의 나이에만 다다르면 누구에게나 생기니까. 생년월일 등 소수의 정보만 입력하면 입성 가능한 세계, 몇 개는 묻지만 따지지는 않는 영역 아닌가. 두 번의 기회가 주어지는 OX문제처럼 답이 명확하다. 노안으로 잘못 클릭하여 낭패를 볼지언정. 

어른 맞아? 인증해 봐.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무엇으로 증명하나. 성인과 비슷해 보이지만 어른은 정신적인 의미가 더 크니 말이다. 하여 어른의 자격은 신체의 나이와 비례하지 않는다. 10대에 '스럽다'는 표현으로 불리는가 하면, 중년에 '어른이'라는 신조어로 지칭되기도 한다. '답다'라는 디폴트의 범주에 입성하는 게 의외로 까다롭다. 주관식 답처럼 판단이 모호하다. 성인이 확실한 나는 어른일까, 어른이 되는 과정에 있는 걸까.


'어른'의 의미를 생각하게 된 계기는 자그마한 몸집을 가진 에세이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이다. 책 위에 손바닥을 펼치면 꽉 찰 정도로 아담하다. 288g, 288쪽의 가뿐한 모습이 뽀득뽀득 세수시킨 말간 어린아이 같다. 모자를 쓴 채 바다를 응시하는 표지 속 여인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은은한 파스텔톤 백사장과 부드러운 옥색 바다에 물들어버리기라도 한 듯 덩달아 마음이 차분해진다.

살짝 튀어 오르는 하얀 점들은 파도 방울인가. 표지의 중앙을 손끝으로 더듬자, 눈에 띄지 않던 점자가 톡톡 존재감을 드러낸다. 숨은 글씨 찾기에 성공한 듯 작은 희열을 느낀다. 감각 기관을 가르칠 때, 점자 관련 활동을 한 이후로 엘리베이터만 타면 점자에 눈길이 가던 차다. 무슨 뜻일까. 책 제목인가. 질문 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답변을 시전하여 신뢰도에 제 발등을 찍지만, 여전히 방대한 지식을 보유한 J에게 표지를 보여준다.

사진을 찍어서 요청하니, '바다가 들려'입니다. 이미지를 회전하고 다시 읽어 달라니, '해바라기'입니다. 책 제목을 알려주니,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가 맞습니다. 1번에서 6번까지의 점자 배치를 파악하여 번호를 제시하니, '아아 르논본배 번 작야어드브'란다. 하아. 그래, 좋은 말이겠지. 이쯤에서 포기한다. 정답은 의외의 순간에 허탈하게 드러난다. 알라딘 책 소개를 진작 노트북으로 읽어볼걸. 핸드폰을 한 번 더 두드려 전문을 보았더라도.


책날개에 적힌 설명을 보기는 했다. 리커버 공모전의 참여작 1,080점 중에 선정된 표지 디자인, 수상자의 의도를 반영한 디자인적 장치라는 점이다. 핸드폰 액정에 드러난 알라딘 책 소개의 초기 화면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거기까지만 읽은 나는, 무슨 글씨인지 단순한 궁금증만을 가진다. 대륙붕 언저리에서 깔짝거리던 내 앞에 심해가 펼쳐질 때까지.

'바닷가에서 잔잔하고 조용한 행복을 누리는 사람과 손에 닿는 행복의 의미를 담아 '푸른 바다가 반짝인 어느 날'을 점자로 수놓은'게 진정한 의도라고 한다. 행복의 본질을 관통하는 의미에 순간적으로 전율이 인다. 첫째, 행복은 섬세한 솜털처럼 자칫 모르고 지나치기 십상이니 손끝을 내밀어 천천히 느껴야 닿을 수 있다는 점이다. 둘째, 행복은 늘 거기에 존재하지만 바다 위의 윤슬이 반짝이는 순간을 발견하는 건 찾는 이의 몫이라는 점이다.

점자의 루프에서 빠져나오니 이번에는 제목이 시선을 붙든다. '어른'과 '행복'이란 두 단어의 무게 때문이다. 나는 어른일까. 어른은 성인 인증하듯 당연한 명칭이 아니니 스스로 하는 질문 앞에서 주춤한다. 여전히 결정이 어렵고 종종 책임을 버거워하는 나를 어른이라 할 수 있을까. 나는 행복한가. 어느 순간에 '행복'이라는 명사를 붙일 수 있을까. 책을 펼쳐보지도 못한 채 제목 앞을 서성인다.


'아'와 '어'의 교체를 반복하니 조사에서조차 강아지풀 같은 까슬한 차이가 느껴져 글이 섬세해진다. 의미를 지닌 명사는 그 차이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갈수록 명사가 낯설다. 말을 처음 배우는 아이라도 된 양 반복적으로 단어를 곱씹는다. 당신이 말하는 '사랑'과 나의 '사랑'이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부터이다. 그가 말하는 '행복'의 빛깔과 나의 것이 다르듯이, '어른'의 의미도 마찬가지이리라.

자세히 바라보는 이에게 보통 명사는 고유 명사로 탈피한다. 질감, 냄새, 리듬, 온도, 색깔, 무게 같은 비언어적 물리량으로 만들어진 옷을 새로 착장하면, 강렬한 인상을 지닌 단어가 된다. 어쩌면 모든 명사는 존재하는 사람의 수만큼 명도와 채도가 다른 동음이의어가 아닐까.

평범하게 사는 것이 가장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저자 소개에 눈길이 간다. 그와 나 사이에 놓인 시간의 간극이 20여 년이어도 '평범'은 여전히 어려운 명사이기에. 태수 작가에게 '어른'과 '행복'은 어떤 의미를 지닌 명사일까. 그의 해석이 궁금해진다. 화면을 느리게 재생하듯 천천히 책장을 넘긴다.

두 종류의 세상을 보게 되리라. 작가가 바라보는 세상과 그런 세상을 바라보며 스스로 돌아보는 나의 세상이다. 두 세상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가늠하며, 책이라는 통역사를 통해 저자와 대화하는 시간을 보낼 예정이다.


빛을 선명하게 바라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아는가. 어둠과 나란히 놓는 거다. 작가의 문장은 전반적으로 대조와 대구의 형식을 취한다. 똑똑한 우울증보다는 행복한 바보로 살 거라 말하고, 행복을 설명하는 데 불행이 등장한다. 행복에 대한 그의 정의는 '불행이 없는 상태'이다. 막연히 '상상'만 하던 행복을 '일상'에 있는 불행 가까이 끌어당겨 불행으로부터 한 걸음 남짓 벗어난 영역으로 독자의 시선을 이끈다. 에필로그의 제목처럼 '우린 너무 쓸데없이 불행하고 너무 복잡하게 행복'하기에.

행복하다고 느끼는 경우만큼 불행하다고 여기는 극단의 순간은 그리 많지 않다. 당신은 지금 행복한가. 그런 것 같지는 않다고? 그렇다면 지금 불행한가. 뭐, 그렇다고 불행하다고 말할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그렇다면 당신의 삶은 행복의 영역에 있는 게 분명하다. 과도한 자극에 익숙해져 사락사락 반짝이는 행복이 보이지 않을 뿐이다.

행복은 윤슬을 닮았다. 분명 거기에서 보일 것임을 알아도 매 순간 보이지 않는 잔물결 말이다. 삶의 바다가 심하게 출렁일 때면 여유롭게 바라볼 엄두를 내지 못하며, 바람 한 점 없는 순간에도 반짝임은 보이지 않는다. 강렬한 태양 아래에서는 과도한 눈부심으로 외면하게 만든다. 바라보는 각도와 빛과 물결의 일렁임이 조화로울 때, 비로소 윤슬은 존재감을 드러낸다. 편안하게 숨 쉬며 삶과 함께 리듬을 타는 순간, 우리는 물결을 보듬는 빛의 손길을 알아챈다. 작가가 말하는 '어른의 조용한 행복'을 나는 이런 느낌으로 해석한다.


행복의 몇 가지 물리량을 나만의 시선으로 정의해본다.

행복의 맛은? 드시기 전에 충분히 흔들어줘야 느낄 수 있는 0.1%의 소금만 첨가된 무가당 두유 맛.

행복의 온도는?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늘 곁에 있으나 알아차리기 어려운 일상적인 온도, 상온. 극한의 열기나 냉기가 삶을 훑고 갔을 때, 폭풍 후에 불어오는 최초의 바람으로부터 전해지는 온기. 

행복의 질감은? 구석구석 방 청소를 하며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기는 마음으로 단 한 글자도 놓치지 않고 손걸음을 옮길 때, 가만가만 어루만지는 손끝으로 흘러 들어오는 다정한 점자의 감촉. 

행복의 무게는? 있는 듯 없는 듯 평상시에는 존재감을 느끼지 못하지만, 사방에서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게 분명한 공기의 무게.

물질로 비유하는 행복의 상태는? 압축하면 급격하게 줄어들지만 팽창하면 한껏 확장되는 기체.

행복이 내는 소리의 크기는? 나뭇잎 뒤척이는 소리, 시계 초침 소리, 속삭임과 잘 어우러지는 20~30데시벨.

행복의 냄새는? 커피 향으로 우아하게 흘러들다 순식간에 청국장 냄새 풍풍 풍겨도 여전히 매력적인 향기. 삶이 코로나에 걸리는 시기에는 후각처럼 마비되기도 하며 야누스적인 변화무쌍함을 보이기에 정체를 특정하기 어려운 냄새.

행복의 시제는? 언제나 현재. 지나 보니 '행복이더라'는 지나갈 때 잡지 못하고 떠나보낸 회한, 앞으로 '행복할 예정이다'는 매번 앞서가기에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상상이니, '행복하다'만이 유일하게 감각 할 수 있는 지금의 경험이리라.


특별할 것 없는 말들이 작가의 경험을 통과하니 물 만난 꽃차처럼 생생해진다. 문장의 형태로 차례에 제시된 제목만 읽어도 겉바속촉의 소금빵을 먹는 듯 기분 좋은 맛을 선사한다.       

'다정함은 체력에서 나온다, 트럼프가 총에 맞았을 때 나는 내 주식이 가장 먼저 걱정됐다, 진짜 사이코패스는 감옥에 있지 않다, 왜 한국인의 최선은 90%가 아니라 110%일까, 무례한 사람들은 자신을 솔직하다고 소개한다, 불행은 견딜 수 있지만 '너보다' 불행한 건 싫어, 성공은 어렵다. 쉬운 건 성공이 쉽다는 말 한마디일 뿐, 내 인생이 잘되길 바라는 건 의외로 나밖에 없다.' 바삭한 문장들이 촌철살인의 후련함을 뿜어낸다.

'그만두는 것도 용기, 그만두지 않는 것도 용기,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이다, 마음이 아픈 사람은 가장 먼저 아프지 않은 척을 한다, 죽고 싶은 게 아니라 이렇게 살고 싶지 않은 거야, 너무 잘하고 싶어지면 반대로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게 돼.' 몰랑몰랑한 촉촉함을 안겨주는 문장들이다.

무엇보다 마음이 드는 건 그의 관점이다. '포기가 습관이 되면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것까지 포기하게 된다. 자신이다, 내 인생의 가장 큰 안티는 나였다, 우린 언제나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조금 더 높이 날 수 있는 사람이다.' 본문 속 문장들이 답정너 화살표가 되어 '나'를 맞추니 마음이 후련해진다.


천천히 글을 쓰다 저녁 준비를 한다. 남편이 어제 사 온 백합 봉지를 냉장고에서 슬그머니 꺼내 놓는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2초 외과 의사로 빙의하여 주방 가위로 비닐을 절개한다. 자신 있게 공기의 감촉을 선사했지만, 순간 주춤한다. 실로 오랜만에 백선생님을 영접했기 때문이다. 사촌인 바선생도 한동안 찾지 않았기에 순서가 헷갈린다. 처음부터? 끓은 다음? 손안의 비서, J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하아. BGM의 볼륨 조절에 실패했다는 사실을 깨끗하게 인정한다. 조개 향을 첨가한 완성작이 되고 말았으니. 순간 고급 재료를 저급한 실력으로 발라버렸다는 민망함에 은밀한 심폐소생술을 시도한다. 일단 화이어! 다시 우르르 오케스트라를 시전할 때, 마법의 링 투하! 휴, 일단 조개의 정체성은 살렸다. 그럼, 그건? 당신의 예상이 맞다. 식감은 지못미. 오래 가열하여 질겨졌지만 제 발이 저린 당사자를 제외하고 한 사람만 희생하면 되니까 괜찮다.

드넓은 궁중 팬 안에서 백합들이 한가로이 헤엄을 친다. 간만에 재료를 사 온 1인에게 괜스레 미안해서 식탁에 놓으며 한 마디를 꺼낸다. "물이 너무 많네." "배 띄우면 되지." 순간, 웃음이 윤슬처럼 반짝인다. "오늘 들은 말 중에 제일 웃겨." 웃지 않는 척하는 희생자의 얼굴에도 웃음이 번진다. 책을 읽는 동안 작가의 글이 토닥토닥 내 마음을 어루만져준 걸까. 심장이 몰랑몰랑한 밀가루가 된 기분이다. 작은 말에도 금세 반응하여 간지럼을 탄다.


'자신에게 선물하게 되는 순간부터 어른'이라는 문장을 천천히 어루만진다. 나에게 무언가를 선물했던 순간이 언제더라. 좋아하는 장소로 나를 데려가고, 좋아하는 음식을 먹이고, 좋아하는 이들과 보내는 시간을 만들어주던 기억 말이다. 드문드문 떠오른다. 자신 있게 말하기에는 많이 부족하지만, 예전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나에게 잘해주고 있다는 건 분명하다. 산책하듯 카페로 가서 커피를 옆에 두고 이어폰을 통해 흘러 들어오는 음악 속에서 글을 쓰는 이 순간처럼. 나는 점점 어른이 되어가는 중일까.

태수 작가의 문장들은 자극적이지 않다. 점자처럼 톡톡 심장을 두드린다. 잔잔한 비에 젖어 드는 몸처럼 심장이 조금씩 들썩인다. 미세한 리듬으로 덩달아 울리는 행복이 조용하게 출렁인다.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님의 깨달음처럼 '제비꽃같이 조그마한' 이 책이 행복을 향해 나를 끌어당긴 걸까.

글로 박제되어 있던 행복이 어느 순간 책에서 빠져나와 가만히 자유 낙하를 한다. 나의 마음은 저항 없는 중력으로 담백한 세상을 끌어당긴다. 행복은 잔잔한 마음으로 느끼는 실시간의 감각이다. '쿵 소리를 내는 아찔한 진동'이 아니기에 내가 할 일은 고요한 물리량을 지닌 채 가까이에 머무는 행복을 다만, 깨닫는 것일 뿐. 어쩐지 보드라운 윤슬이 눈앞에서 반짝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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