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길이 닿는 순간 당신에게 일어나는 일 - 촉각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의 과학
마르틴 그룬발트 지음, 강영옥 옮김 / 자음과모음 / 2019년 2월
평점 :
절판


제목만으로 그저 좋았다. 가사 내용이 뭔지도 모르면서 떠올리기만 해도 좋은 노래, <Touch by Touch>. 디스코 리듬을 선호하는 건 아니다. 발라드를 좋아하던 시기였으니 이 노래를 좋아하게 된 건 순전히 한 단어 때문이다. 'kiss'라는 단어만 보아도 몽글몽글했던 고딩의 갬성은 'touch'라는 단어에 제대로 저격당한다. 오랜만에 유튜브를 찾아 추억의 80년대 팝송에 포함된 노래를 듣는다.

여전히 내용은 모르지만, 굳이 해석하고 싶지는 않다. 노래가 전해주는 느낌을 그저 받아들이고 싶어서이다. 여전히 좋다. 당시의 기억이 각인되어서인지 듣는 순간 살짝 두근거린다. 반복해서 들으니 뭉클하면서 찡한 느낌이 크다. 갓 따낸 복숭아 같은 설렘보다는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님'에 가까우리라. 40여 년 흘러간 시간이 건네주는 선물일까.

커피 맛을 음미하듯 '접촉'이란 말을 속으로 발음해 본다. 어릴 적 기억이 떠오른다. 마음으로 찍은 스냅 사진인 양 두 가지 장면이 선명하다. 하나, 아파트 앞 공터를 서성이는 엄마 등에 업혔던 장면이다. 4살 아기를 덮고 있던 올리브색 털스웨터가 기억난다. 온몸을 감싸던 느낌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 공중목욕탕에서 나를 안은 엄마가 머리를 감겨주시던 장면이다. 부드럽고 따뜻한 가슴이 얼굴에 닿았던 감촉이 마냥 좋았다.

 

돌이켜보면 예전부터 나는 접촉을 좋아했던 듯하다. 20대 초반에는 이 사실을 몰랐다. 풍문으로 들은 세 종류의 사랑에 심취했던 시기였다. 간혹 철학에서 언급되는 아가페, 에로스, 플라토닉 러브 말이다. 당시에는 플라토닉 러브가 어찌나 매력적으로 보이던지. '정신적인 사랑이야말로 순수함의 결정체 아닌가!'라는 생각이 마음을 지배한다. 접촉의 위력을 몰랐던 시절이다.

'세상이 어떻게 니맘대로 되니!' 흔한 드라마의 대사처럼 마음과 현실의 속도는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접촉을 갈구하던 시기에 현실은 마음대로 구현되지 않는다. 사랑을 글로 배우는 인간에 빙의하여 접촉과 관련된 책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사들인다. <터치>,<몸의 일기>,<손길이 닿는 순간 당신에게 일어나는 일>이 이런 목적으로 사들인 책이다.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위안이 되었기에 보유만 했다.

당신은 운명적인 만남을 믿는가! 세상이 동화 같지 않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운명'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되는 몇몇 만남은 존재하는 듯하다. 사람에 대해서도, 책에 대해서도 말이다. 20193월에 구입한 책을 7년도 더 지난 지금, 불현듯 펼쳐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이유는 뭘까. 접촉과 관련된 책 중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뭘까. 예전에 받았던 편지의 문구처럼 '만나지 않으면 안 되었을 운명' 같은 끌림이었을까.

 

<손길이 닿는 순간 당신에게 일어나는 일>은 촉각에 관한 실험 결과가 기록된 책이다. 원제는 'Homo Hapticus', '햅틱(Haptik)'은 인간과 동물의 촉각 체계와 이를 통해 지각할 수 있는 대상의 특성을 연구하는 영역이다. 저자 마르틴 그룬발트는 심리학, 산업 심리학, 생물학, 철학을 전공하고 '햅틱 연구소'를 설립한 사람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연구소에서 진행한 연구 결과를 심도 있게 다룬다.

제목만 보고 MBTIF식 전개를 연상한다면 낭패를 본다. 극강의 T를 시전하는 연구 보고서에 가깝기 때문이다. 책 표지 윗부분에 있는 문구, '촉각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의 과학'이 이 책의 정체성에 가깝다. 책에 의하면 인간의 촉각 작용 방식이 사고, 감각, 행동에 끼치는 영향은 상상 이상으로 강력하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촉각에 대하여 새로운 시각이 생긴다.

중학교 3학년 과학 '자극과 반응' 단원에서 등장하는 감각 기관이 생각난다. 교과서에서는 눈, , , , 피부 등 인간의 오감과 관련된 기관의 구조와 기능을 다룬다. 그중 시각의 비중이 가장 크며 청각이 두 번째 분량을 차지한다. 드라마 캐릭터로 치면, 눈은 남주, 귀는 서브남주, 코와 혀는 조연 정도랄까. 피부는 다만 거들 뿐인 지나가는 행인 1 정도로 엑스트라에 가깝다. 두 달만 더 일찍 읽었더라면 수업의 방향이 달라졌을 텐데.

 

무지는 무시를 불러온다. 제대로 알지 못하고 은연중에 교과서 분량에 비례하여 피부 감각을 무시한 나를 반성한다. 인간의 기관 중에 피부가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건 생명체의 빅픽처였던 거다. 저자는 서문에서 촉각이 시각이나 청각에 비하여 여전히 대중적 인식이 낮은 점을 말하며, 인간은 촉각 없이 생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생사를 가른다는 말은 너무 과하지 않나. 처음 든 생각은 책 속에 제시된 연구 결과를 보며 서서히 바뀐다.

'촉각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이라는 문구에 걸맞게 저자의 글은 태아로부터 출발한다. <1: 촉각, 최초의 감각>에서는 생물학적 관점에서 인간의 오감 중 촉각이 가장 먼저 발달한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엄마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수록 태아가 자신의 얼굴을 만지는 횟수가 늘어난다는 연구 결과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본능적으로 접촉을 통해 안정감을 찾는 행동이라고 한다.

<2: 스킨십은 아이에게 밥이다>는 신생아가 건강하게 자라기 위한 조건으로, 정상적으로 반응하는 촉각 체계와 적절한 신체 자극을 말한다. '같은 종의 동물들이 가까이에서 몸을 부대끼고 살 때 생물학적으로 의미 있는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것'. 수유할 때도 아이가 젖에 주는 자극이 엄마의 옥시토신 호르몬의 분비로 이어져 생리적 상태뿐 아니라 감정과 인지적 상태에도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온다는 거다.

 

<3: 자극이 있는 일상>에서는 신체의 움직임에도 촉각의 영향력이 막중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피부, 관절, 힘줄, 근육에 존재하는 자극의 수용기들이 정확하고 지속적으로 활동해야 몸을 움직일 수 있다고 말이다.

<4: 느끼는 자에게 변화가 생기리니>는 촉각이 감정에 미치는 영향력을 다룬다. 자기 접촉은 심리적 상태를 흥분에서 평정으로 되돌린다는 문장에서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에 나오는 장면을 떠올린다. 여주인공이 감정의 동요를 일으켰을 때, 남주인공은 스스로 다독이는 방법을 알려준다. 두 팔을 교차하여 스스로 안아주는 방식이다.

적절한 신체 접촉을 통해 '인체의 약국'이 작동할 수 있다고 한다. 무생물을 접촉하는 순간조차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실험 결과가 놀랍다. 거칠고 차가운 물질을 접했던 피실험자들은 부정적 반응을, 부드럽고 따뜻한 물질을 만졌던 사람들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니! 뜨거운 홍차와 푹신한 소파를 상대에게 제공하는 것이 나에게 유리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틱 반응을 보이던 아이를 잠시 안아주었던 기억이 난다.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괜찮다' 토닥거리며 안아주었던 게 과학적으로도 효과가 있었던 거다. 어떤 감각이나 말도 신체 접촉처럼 즉각적으로 긍정적인 감정을 전달할 수 없음을 강조한 저자의 말에 동의한다.

 

'자극과 반응' 단원에서 중추 신경계를 가르치면서 연수의 중요성을 어필하던 순간이 떠오른다. 대뇌, 소뇌, 간뇌, 중간뇌, 연수, 척수 모두 중요하지만, 생명과 직결되는 중추는 연수라고. 연수는 호흡, 심장 박동 등을 관장하기 때문이다. 대뇌를 다치면 기억을 잃거나 팔다리를 못 쓰게 될지언정 죽지는 않으니까. 같은 맥락으로 눈이 멀거나 귀가 들리지 않는다고 죽지는 않지만, 촉각에 이상이 생기면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고 한다.

<5: 만약 촉각이 사라진다면>에서는 촉각과 관련된 의학적인 질병을 다룬다. 용어들이 생소해 개론적인 의학서적을 보는 기분이 들지만, 촉각 이상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사실은 제대로 수긍할 수 있다.

몇 가지 알게 된 사실을 나열하면, 아토피 피부염 등 피부 질환 치료제에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함유되어 있다는 것, 해당 신체 부위를 정확하게 지각하지 못한다는 다발성 신경병증은 접촉과 온도 자극에 과민 반응을 보인다는 것, 촉각 민감성의 둔화로 당뇨병성 족부병변이 생긴다는 것, 선천적 무통증은 땀 분비와 온도 조절 능력의 문제로 생긴다는 것, 우측 두정엽의 통합 능력 장애로 좌측 신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지각하는 '니글렉트 신드롬'이 발생한다는 것, 알츠하이머병성 치매를 초기 진단할 때 촉각 이상 여부를 확인한다는 것, 왜곡된 신체 환상과 거식증을 햅티미터라는 촉각 검사 장치로 연구하고 네오프렌 소재의 옷을 개발하여 치료를 시도하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 등이다.

 

<6: 햅틱 디자인과 뉴로마케팅>에서는 질병뿐 아니라 제품의 마케팅에도 촉각을 적용하는 사례를 소개한다. 인간의 신체가 '만물의 척도'라는 문장이 인상적이다. 저자는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제품이 인체를 근거로 만들어짐을 일깨운다. 칫솔에 적용되는 구강의 해부학적 구조라든지, 손의 구조가 반영된 가위 손잡이 구멍의 직경, 자동차 핸들의 직경, 다리미의 손잡이, 어린이용 자전거의 핸드 브레이크 같은 제품을 예로 든다.

더 나아가 기업들은 촉각 체험이 시각적인 인상보다 사용자의 판단에 더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이용한다. 볼펜 판매대 옆에 필기감을 체험할 수 있는 종이가 매달려있는 데에도 이유가 있었던 거다. 같은 굵기의 볼펜이라도 각자 선호하는 필기감은 다르니까. 직접 써보고 제품을 선택하게 만든 건 매우 영리한 영업 전략이리라.

자동차 핸들의 감촉에서 출발한 변화는 주방기기, 종이, 가구, 휴대폰, 신발, , 화장품 등의 분야로 확대된다. 저자가 몸담고 있는 연구소에서는 '햅틱 디자인'이라는 단어를 발표한다. 인간의 촉각 체계의 요구와 기능성의 관점에서 제품을 만든다는 것이다.

메시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전략으로 선택된 '뉴로마케팅'이 급부상하는 이유도 인간이 촉각적 광고 문구에 민감하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기업들은 이제 제품을 직접 만져볼 수 있을 때 제품에 대한 신뢰도가 쌓여 구매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을 이용한다.

 

연구소에서 진행하고 있는 과제들을 소개하는 <7: 앞으로의 연구 과제들>을 보니 뭉클하다. 이렇게나 집요하게 파고들다니! 신생아, 우는 아기, 중증 질환자, 거식증 환자, 우울증 환자, 과체중 비만 환자 등 다양한 질병의 치료 방법부터 신체 자극을 준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효과, 촉각 민감성으로 예민한 유형 구분하기, 지능과 촉각 기능 사이의 상관관계, 햅틱 추적 시스템 개발, 피부 융선과 지각 기능의 관계, 촉각 중단 현상의 메커니즘, 단세포 생물의 촉각 작용, 인체의 촉각 수용체 상태에 관한 정확한 분석 등을 보니 생각이 많아진다.

연구 결과의 신뢰도와는 별개로 '촉각'에 대하여 알기 위한 노력을 보니 인간의 순수한 호기심에 경외감이 든다. 이런 과정이 모여서 학문이 서서히 발전하는 거겠지. 피부 감각 구조의 모식도를 무심코 지나치던 순간이 떠오른다. 발견한 과학자들의 이름을 본뜬 명칭을 각각의 감각점에서 확인하며 수많은 이들의 노력과 땀을 가늠해 본다. 인체에 있는 하나의 점을 발견하기 위해 수년을 탐구한 마음을 생각하니 찡한 감동이 다가온다.

책을 읽으며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낸다. 다만 과학적이고 의학적인 내용이 있어 다소 어렵게 느껴진 것과는 별개로 오타가 너무 많아 몰입감이 깨진다는 점을 치명적인 단점으로 꼽고 싶다. 절판 도서라 재출판의 가능성은 낮아 보이지만, 촉각에 관한 도서인 만큼 다른 책과 겉표지의 감촉을 차별화하면 어땠을까. 책 속에 등장하는 돋을새김 같은 방식으로 말이다. 책 표지의 감촉이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아서 들었던 생각이다.


맞닿는 감각은 어떤 감각보다 느낌이 짙다. 손길과 손길이 닿는 순간, 유의미한 변화가 일어난다. 본능적으로 인간은 이러한 사실을 깨달았음이 분명하다. 책을 접하기 전에 시도했던 나의 액션을 떠올려보면 말이다.

제일 좋아하는 스킨십은 손을 잡는 거다. 심히 안타까운 건 손을 잡아줄 인간이 없다는 것. 직계비속은 다른 머스마의 손을 선호하는 나이가 되어버렸고, 80대 노모의 손을 잡기도 새삼스럽다. 50대가 되어버린 형제자매의 손을 잡기도 어색하다. 가장 많은 기회가 보장된 사람과 함께 살고 있지 않냐고? 간지럽다니! 손을 만지는 게 어찌 간지러울 일인가 말이다! 즐겨 입던 터틀넥 스웨터를 입지 못하게 되어서야 이해 모드가 가동된다. 나이가 들면 촉각에 변화가 생긴다는 점을 인정하게 된 거다.

이대로 물러설 순 없다. 감전된 듯 움찔하는 모습을 관찰하며 조금씩 접촉 부위에 변화를 준다. 불굴의 시도 결과, 딱 한 군데 태풍의 눈을 찾아낸다. 심 봤다! 감질나는 범위이지만 이게 어디냐. 감사할 따름이다.

더불어 시도 때도 없이 현관에서 "안아주떼염~"을 시전하며 이중 공략을 펼친다. 접촉 면적과 압력은 반비례한다는 법칙을 적용하여 자극을 분산시키자는 전략이다. 인간이 적응의 동물인 건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처음에는 움찔하더니 이제는 자연스러워졌다. 스킨십이 감정의 변화를 일으킨다는 과학적 근거를 빵빵하게 장착한 나는 '터치 바이 터치'를 들으며 '유아 마이 올타임 러버'가 실현되는 빅픽처를 그린다. ~! 비실비실 회심의 미소가 새어 나온다.

 

p63, 6째줄: 단어을 단어를

p140, 밑에서 9째줄: 자극에 관한 실험했을 ~ 실험을 했을

p152, 맨 아래줄: 끼치는 영향을 끼치는지 영향을 끼치는지 또는 끼치는 영향을

p155, 3째줄: 모델을 개발은 모델 개발은

p182, 5째줄: 정학히 정확히

p194, 5째줄: 신경 통해 신경을 통해

p198, 9째줄: 에너지가 필요하는 증상 ~ 필요한

p208, 밑에서 5째줄: 어렵기 않기 때문에 어렵기 때문에

p215, 밑에서 9째줄: 증가하고 하는 ~ 있는

p236, 밑에서 2째줄: 받아드려 받아들여

p250, 밑에서 3째줄: 특별한 기술적 도움 없이도 관찰할 수 없다. ~ 도움 없이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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