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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함의 습격 - 편리와 효율, 멸균과 풍족의 시대가 우리에게서 앗아간 것들에 관하여
마이클 이스터 지음, 김원진 옮김 / 수오서재 / 2025년 6월
평점 :
망망대해는 물질세계에만 있지 않다. 사람의 내면에도 드넓은 바다가 있다. 바다를 휘휘 저어 흩어져 있는 생각들을 건져 올린 다음 서로 연결하여 정갈한 글로 옮기는 것, 오늘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다. 노트북 앞에 앉기 전까지 글은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어느 방향으로 향할지 알 수 없다. 언제 쓰느냐, 어디에서 쓰느냐, 머무는 시공간에 따라 모습을 바꾼다.
책을 계기로 나를 알게 된다. 잔잔하던 마음의 바다로 저자의 생각이 뛰어 들어온다. 작용과 반작용인 듯 마음이 출렁인다. 리뷰를 쓰기 위해 마음을 들여다본다. 글은 보이지 않는 생각을 드러내는 도구다. 이토록 많은 생각이 담겨있었다니! 주인도 몰랐던 생각이 은밀하게 숨어있다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생각의 파편들이 고요를 깨뜨린다. 평온했다면 알지 못했을 생각들이 고개를 내민다. 글쓰기는 나를 조금씩 알아가는 과정이 된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게 만드는 책을 만났다. 『편안함의 습격』이다. 저널리스트이자 탐험가인 마이클 이스터는 과학적인 연구 결과와 자신의 경험을 제시하며 '편리와 효율, 멸균과 풍족의 시대가 우리에게서 앗아간 것들에 관하여' 말한다. 편안함이 우리의 삶을 위협한다 경고한다. 저자의 생각이 내 생각의 바다를 습격한다. 긍정적인 자극에 마음이 반응한다.
교양 인문학의 범주에 포함되는 이 책을 보며 중학교 3학년 과학의 '자극과 반응' 단원을 떠올린다. 과학적인 현상을 인문학적 비유로 연결 지을 때가 있다. 두 분야는 의외로 자연스레 어울린다. 철학자로 알려진 아리스토텔레스가 과학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건 사유를 확장하면 커다란 틀로 묶인다는 방증이리라. 학문의 본질은 인간과 이를 둘러싼 환경을 탐구한다는 점이니까.
교사의 목소리가 자장가가 되는 시간은 5교시만이 아니다. 1, 2교시는 너무 일러서, 4교시는 당이 떨어져서, 마지막 교시는 집에 가기 전이라 지쳐서. 10대의 취침은 대체로 시간을 가리지 않는다. 생물학적으로 탄탄한 근거를 확보한 채 정점을 찍는 5교시. 탁!탁! 인간과 혼연일체가 되어 졸음의 바다를 유영하던 책상을 두드린다. 화들짝! 편안하던 몇몇 생명체가 움찔한다. 생물과 무생물의 차이점이 뭘까요. 책상은 건드려도 아무 반응이 없죠? 살아 있다면 여러분들처럼 리액션을 취한다는 겁니다. 소리 자극에 대하여 반응하는 거죠.
인간이 지난 다섯 가지 감각 기관은 빛, 소리, 화학 물질, 접촉 등 외부 자극을 감지하여 반응을 이끌어낸다. 변화하는 환경에 리액션을 취하는 건 스스로 보호하고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려는 생존 본능이다. 뜨거우면 피하고, 눈부시면 눈을 감는 것처럼.
정신적인 영역 역시 외부 자극에 반응한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울부짖는 드라마 주인공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어진다. "사랑뿐이겠니?" 마음에 담긴 모든 생각과 감정은 변한다. 변하지 않는 생각은 이론적으로만 존재하는 이상 기체와 같다. 바람과 현실을 구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다만 이상 기체에 가까운 상태가 존재하듯 포용할 수 있는 범주를 정하여, 이 정도 변화까지는 괜찮다고 여기는 것이리라.
편안한 마음 상태는 고요한 바다와 같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편안함을 추구'하니 이 상태가 관성처럼 지속되기를 원한다. 짧은 순간은 좋다. 귀찮고 불편하게 반응을 보일 필요가 없으니.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변화가 없는 상태는 매우 위험하다.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욕창에 걸리거나 근육이 굳어지는 것처럼. 몸이든 마음이든 환경에 반응하지 않는 상태는 살아있는 인간을 무생물에 가까워지도록 한다. 생명체는 외부 자극에 대하여 끊임없이 반응을 보여야 한다. 살아있다면, 살고자 한다면.
저자는 편리한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이 상상력과 사회적인 유대, 노력과 인내로부터 멀어지는 모습을 스케치한다. 편안함을 대가로 인지하지도 못한 채 많은 것들이 증발한다는 사실을 역설한다. 편안함에 잠식되어 가는 인간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다.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저자의 제안은 구체적이다. '아주 힘들어야 한다, 그러나 죽지 않아야 한다, 따분함을 즐겨라, 배고픔을 느껴라, 매일 죽음을 생각하라, 짐을 날라라.' 그의 주장은 인류가 잃어버린 감각, '불편함'을 담고 있다.
마이클 이스터는 기대 수명이 점점 길어지는 현대 사회의 맹점을 파헤친다. '생존 기간은 길어졌으나 건강한 삶은 짧아졌다'고. 동네에서 위태위태한 어르신들을 마주쳤을 때 들었던 생각이 기억난다. 나, 너무 오래 살면 어쩌지? 건강하게 오래 살면 아무 문제가 없다. 문제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거나 명료한 의사소통이 어려운 상태가 지속될까 불안하다는 점이다.
저자의 경험담에서 해결책을 발견한다. 그는 알래스카의 순록 사냥 원정에 참여한 경험을 실감 나게 들려주며 '불편함'이 주는 효과를 증명한다. 여러 분야의 연구 결과를 이야기 중간에 간지처럼 끼워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활용한다. 몰입 상태가 '삶을 더 풍요롭고 열정적이고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드는 힘'이 있음을 생생한 사례로 보여준다. 경험과 이론의 연결이 자연스러워 체험담을 듣는 데 이질감이 없다.
나이가 드니 편안하던 육체가 삐그덕거린다. 성호르몬 분비량의 변화로 묻혀있던 DNA가 존재감을 어필한다. 지속적인 내부 마찰로 또래보다 빨리 양쪽 관절이 닳아버린다. 6개월마다 대학 병원에서 무릎 영상을 찍고 관절 약을 받아온 지 몇 년째다. 더 좋아진다는 건 선택지에 없다. 나빠지지 않는 게 목표다. 처음 병원에 갔을 때, '무릎이 안 좋으니 되도록 움직이지 마세요.'라는 말을 들으리라 예상한다.
운동을 하세요. 정반대의 멘트에 당황한다. 예? (무릎이 안 좋은데 운동이라굽쇼?) 모름지기 운동이란 공간을 종횡무진하며 삐질삐질 땀 한 바가지 정도를 쏟아내는 움직임이 아닌가. 누워서 하는 운동 말이예요. (누우면 자는 거지 뭔 운동이래요?) 자, 이렇게 쿠션을 받치고 천천히 다리를 들어 올렸다 그 상태에서 조금 지탱하다 내립니다, 양쪽 번갈아 가면서요. 시범을 보이는 닥터 앞에서 일단 고개를 끄덕인다. (에게? 이게 다예요?)
그날 밤, 침대에 누워 부들부들 다리를 떨며 그 운동이 '에게'가 아님을 절실히 깨닫는다. 뼈를 붙들고 있는 대퇴사두근을 키워 무릎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최선책이란다. 몹시 귀찮다. 움직이지 않으면 점점 더 근 손실이 일어나요. 나이를 생각하셔야죠. 편안함을 추구하고 싶을 때마다 닥터의 음성이 재생된다. 불편한 이 운동이 나의 몸을 지금보다 건강하게 만든다는 사실은 불편한 진실이다.
집에서도 혼자 있잖아. 글을 쓰거나 책을 읽기 위해 커피숍이나 스터디 카페에 간다는 내게 친구가 말한다. 아이들이 다 커서 타지에서 직장을 다니니 남편이 없는 시간에는 혼자 있게 된다. 집에서는 집중이 되지 않아. 무심코 했던 말을 곱씹는다. 집에서는 왜 집중이 되지 않을까. 심리적인 이유가 크다. 집은 집안일을 해야 하는 공간이므로 의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곳곳에서 기다리는 소리 없는 부름을 외면하기 어렵다. 나만의 장소에서 배제한다.
'외부의 어떤 것으로도 자신을 규정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 자신과 함께 있는 시간을 가져보자.' 책 속의 문장에 부합하는 장소가 나에게는 커피숍이나 스터디 카페다. 그곳에서 하는 일은 오롯이 나만을 위한 것이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생각을 정리한다. 글은 커피숍에서 가장 잘 써진다. 절대적인 소음의 수치를 비교한다면, 가장 열악한 환경일 텐데 말이다. 의무로부터 완벽하게 벗어난 공간에서 존재감을 찾는다.
'천연 신경안정제'라며 자연을 언급하는 저자의 생각에 동의한다. 그는 자연에서 보내는 시간을 '명상 없는 마음챙김'이라며 적극 권장한다. 도심 공원에서의 20분간 산책으로도 뇌의 신경 구조에는 심대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동네 공원을 한 바퀴 돌고 왔다. 생각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아 정체된 글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던 날이다. 나에게는 확실히 효과가 있었던 행동이다.
이유가 뭘까. 자극과 반응에서 답을 찾는다. 공원 나무에서 흔들리는 야들야들한 초록, 부드럽게 뺨을 간질이는 바람, 콧속으로 스며드는 풀 냄새, 기분 좋은 햇살의 온기까지 자연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나를 건드린다. 가라앉아 있던 마음이 떠오르니 생각이 재배열된다.
힘든 자극으로 인한 불편함조차 삶에는 이롭다는 말에도 공감한다. '힘든 일을 해내면 그 이후의 삶이 훨씬 쉬워지고 모든 것에 더 감사하게 된다'는 문장에 나의 경험을 얹는다. 그만두고 싶은 순간을 넘어서니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불쑥 솟아 올랐지.
마음이 이미지로 보인다면 어떤 모습일까. 나의 마음은 나이만큼의 성숙도로 담겨있을까. 순차적으로 나이 드는 육체와 달리 마음의 나이는 각기 다를 텐데. 내면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자각하는 것이 '마음챙김'의 핵심이라고 한다.
글이 생각만큼 이어지지 않을 때, 이제는 벌떡 일어난다. 장소를 옮기거나 음악을 듣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좋은 냄새를 맡거나 몸을 움직인다. 환경에 변화를 준다. 몸과 마음은 별개의 대상이 아닌 듯하다. 변화된 환경이 나를 자극하니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반응한다. 두근거리는 심장 사이로 마음이 들썩인다. 삶이 내는 소리에 가만가만 귀를 기울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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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88, 밑에서 2째 줄: 부정적인 생각들을 덜했습니다. → ~ 생각들은 ~
p88, 1째 줄: 시리어 → 시어리
p200, 6~7째 줄: 청소년을 ~ 국제기구 → 아래 각주에 있으니 빠져야 할 문장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