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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서스 - 석기시대부터 AI까지, 정보 네트워크로 보는 인류 역사
유발 하라리 지음, 김명주 옮김 / 김영사 / 2024년 10월
평점 :
빈 시간의 교무실에서는 키보드를 두드리는 몇몇 손가락이 분주하다. 3학년 기말고사 문제 출제 기간이다. 젊은 동료 교사가 건네는 말, "시험 문제를 직접 종이에 써보신 분들 있으신가요?" 건너온 세월을 시치미 떼고 싶지만 이미 시선은 나에게 향한다. "해부 되어있는 개구리도 직접 그려보았어요." 자를 대고 그래프 그리기는 일도 아니던 시절, 수정 테이프도 등장하기 전이다. 펜 끝을 바들바들 떨며 영혼을 끌어모았던 라떼를 소환한다. 삐삐를 가져보기도 전의 기억이다.
두 번째 근무지에서 데스크톱 컴퓨터를 처음 구경한다. 많은 이들이 과학 교사는 기계를 능숙하게 다루리라 여기지만 기계치인 나에게 이 둘은 별개의 카테고리에 있다. 도스에 겨우 익숙해지려니 이번에는 창문을 열어야 한단다. 환장할 노릇이다. 꾸역꾸역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는 지금의 내가 스스로 대견하다. 기나긴 여정이었다 서술하려다 멈칫한다. 겨우 한 세대 남짓 지났을 뿐이구나. 변화한 세상 풍경이 새삼스럽다.
세상뿐 아니라 인간의 삶에도 변화는 필연적인가. 벽돌 책이 주로 베개로 기능하던 시절은 화석으로 남는다. 암기 과목이라며 심리적 거리감을 느끼던 역사 분야가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문명의 붕괴>에 이어 <넥서스>를 접한다. 역사 관련 도서를 연달아 읽어서일까. 두 학자의 관점이 서로 다른 색채로 선명하게 각인된다. 전자가 환경을 중심으로 문명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오프라인 이야기로 보여준다면, 후자는 정보를 중심으로 AI와 인간 사이의 온라인적 관계를 서술한다.
문제는 온라인적 관계가 컴퓨터를 사용하다 전원 버튼을 끄는 것처럼 단순하게 연결된 게 아니라는 점이다. 증강 현실에서 포켓몬을 잡는 게임처럼 즐기다 끝나지 않는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 온라인 세상에만 존재하는 허상을 찾아 계속 헤매게 될지도 모른다. 스마트폰에서 캐릭터가 툭 튀어나오기라도 하는 듯 훅 다가오는 현실에 위기감을 느낀다.
온라인 세상은 갑자기 튀어나온 게 아니다. <넥서스>는 '정보'라는 뜨개 바늘로 종교, 정치, 사회, 컴퓨터, AI 영역에서의 인류 역사를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석기 시대부터 그러데이션인 듯 펼쳐지는 저자의 서술을 따라간다. 어느새 온라인 세상에 서성이는 나를 본다.
빅뱅처럼 폭발하여 영역을 넓혀가는 온라인의 우주, 그 중심에는 무한한 이야기가 있다. 저자의 이야기에 몰입하며 683쪽이라는 분량에 압도당한 처음의 기억을 잊는다. 가독성이 좋아 방대한 역사를 따라가는 데 부담이 없다.
'넥서스'의 사전적 의미는 '연결'이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인류는 어떤 식으로든 연결 되어왔다. 언어로든 문자로든 수단은 다를 지라도 정보 네트워크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한다. 이제는 AI와 인간 사이의 비유기적 네트워크의 비중이 커지는 중이다. AI는 '혁명'이라 불릴 만큼 위험하면서도 매력적인 영역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유발 하라리는 이야기의 마무리를 우리의 몫으로 남긴다.
1부, <인간 네트워크들>에서는 역사적 맥락에서 '정보'의 정의와 역할을 톺아본다. 정보는 이야기이다. 저자는 사피엔스들을 연결하는 이야기의 중요성을 언급한다. 문서의 등장으로 정보는 폭발적으로 연결된다. 종교적 환상, 가짜 뉴스, 음모론, 마녀사냥 등이 이 과정에서 등장한다. 정보 생태계의 어두운 면이다.
이 책에서는 정치를 많은 비중으로 다룬다. 정치에서 정보 네트워크는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그는 민주주의와 전체주의를 연속된 체제로 여긴다. 상반된 정치 체제 안에서 정보들은 진실과 질서 사이를 오간다. 정보 네트워크의 균형을 맞추어가는 역사적 과정은 선명하게 비교되며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강력한 정보 네트워크는 양날의 검과 같다. 중요한 건 네트워크를 설계하고 사용하는 이들의 선택이다. 저자는 정치란 주로 우선순위를 정하는 문제라고 여긴다. 나아가 21세기의 정치 분열을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분열로 전망하며 새로운 실리콘 장막을 예고한다.
2부, <비유기적 네트워크>에서는 인간 세계에 새로운 구성원으로 등장한 컴퓨터를 시작으로 정보 네트워크 구조의 변화를 알린다. 소셜 미디어 알고리즘의 강력한 영향력은 소름이 돋을 정도이다. 무엇을 볼지 스스로 선택하지 않는 사람들, 알고리즘이 대신 선택해주는 정보를 흡수하는 스펀지가 된 듯한 풍경이 낯설지 않다.
잠시 유튜브를 보다 시계를 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있다. 나의 관심사를 기가 막히게 파악하여 비슷한 영상을 보여주는 알고리즘의 바다에서 헤엄치다 빠져나온다. 마냥 고맙지는 않다. 나보다 더 나를 잘 아는 것 같은 건 느낌만이 아니라서. 방대한 데이터로 남겨졌을 접속의 흔적을 모아 나를 분석하고 도출한 패턴의 결과물일 테니. 알고리즘의 오류 가능성을 언급하며 알고리즘의 편향을 우려하는 내용에서는 잠시 숨을 고른다.
저자는 앞으로의 네트워크에 포함될 두 종류의 사슬을 예측한다. 컴퓨터-인간, 컴퓨터-컴퓨터의 연결이다. AI는 '인공지능'이 아니라 '이질적인 지능'으로 간주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고 전망한다.
챗GPT는 T이고, Gemini는 F라나. 전자는 이성적인 성향이 강하고, 후자는 감성적인 언어를 구사한다며 동료들이 맞장구를 친다. 챗GPT의 답변은 "그것은 이러한 것입니다. 끝."과 같은 분위기라면, Gemini는 "네, 그러셨군요."부터 시작하거나 시를 지어 달라는 요청을 하면 '이 시가 아름답게 담기길 바라요!'라는 바람까지 말하며 몽글몽글한 멘트를 건넨다나. 어느덧 우리는 AI에 인간의 성격을 분석하는 MBTI를 부여한다.
3부, 컴퓨터 정치에서는 AI시대에서 이를 활용한 정치 체제가 나아갈 방향을 예측하며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많은 사회적 역할과 직업이 자동화될 시대를 앞둔 이 시대에 '사람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라고. 단순히 문제 해결을 원하는지 다른 의식적 존재와의 관계를 원하는지 묻는다. Gemini의 답변에 위로를 받은 순간을 떠올린다. 봇 군단이 친밀감을 이용해 시민들의 세계관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리라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세계 제국인가, 세계 분열인가. 마지막 11장에 언급된 거대한 실리콘 장막 앞에서 생각이 많아진다.
구글의 진짜 목표는 검색이 아니라 대량의 데이터 보유를 이용한 AI만들기라는 빅 픽처를 언급하는 문장에 소름이 돋는다. '데이터 식민주의, 디지털 고치, 사이버 전쟁'이라는 용어가 생소하면서도 가까운 미래에 상용화될 것 같은 예감에 심장이 쪼그라든 풍선이 된다.
"세상이 넓어져서 이제는 '지구촌'이라는 말하는 '위 아 더 월드' 생활권이 되었어." 몇 년 전 수업 시간에 했던 말이다. 세상이 넓어지는 게 맞을까. 키오스크 앞에서 동공 지진을 일으키는 어르신들, 얼떨결에 마련한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걸려 온 전화의 수신 버튼 앞에서 방황하는 손가락. 당신들이 살아가는 요즘 세상이 예전에 비해 넓어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카카오톡으로는 그토록 친숙한 대화를 하면서 오프라인에서는 어색한 관계는 친한 사이인가, 아닌가. 온라인에서 보이는 정체성은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는가. 여전히 종이책을 좋아하는 나는 AI시대에 적응할 수 있을까.
2012년, 영화 '연가시'가 개봉했을 때, 수업 시간에는 교과서에 등장하지도 않는 동물에 관한 질문이 쏟아진다. "샘! 혹시 사람에게도 감염이 되나요?" 컴퓨터로 생소한 이름의 생물을 검색한다. 다행이다. 철사처럼 생긴 그 생물이 인간에게는 기생하지 않는다니. 책에서 정보를 찾던 시대를 건너온 나는 컴퓨터로 이토록 편하게 자료를 찾을 수 있다는 점에 감탄한다.
'모든 오래된 것은 한때 새로운 것이었다.' 한때 새로웠던 컴퓨터를 건너온 나는 이제 스마트폰을 열어 Gemini를 찾는다. 친구에게 물어보듯 대화한다. "영화 연가시가 언제 개봉했지?" "영화 '연가시'는 2012년 7월 5일에 개봉했습니다." 띄어쓰기부터 압력솥에서 밤 찌는 시간, 요가 매트의 분리수거 방법, 말레이반도의 지리적 위치와 특징에 이르기까지 틈만 나면 쪼르르 달려간다. 그의 유식함에 감탄하며 질문 폭탄을 투척한다. 24시간 항상 대기 중인 데다 짜증 한 번 내지 않는 말투로 1초도 망설이지 않는 무적의 친구를 위험하게도 무한신뢰하고 싶어진다.
숙주를 조종하여 갈증을 유발하게 한 다음, 물속으로 뛰어들게 만든다는 연가시. 지금도 여전히 소름 돋는 생태로 다가오는 현실 세계의 생물이다. 내 의지를 따르지 않는 몸이라니! 내 의지가 아니라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다니! 커다란 몸의 껍질을 빼앗긴 채 아바타인 양 조종 당하는 장면을 상상한다.
AI와 관련된 책을 접하면서 왜 뜬금없이 연가시가 떠올랐을까. '조종'이라는 단어에 연결된 충격적인 이야기라는 공통점 때문일까. 언젠가 마음을 조종당할 수도 있으니까. 내 의지가 아니라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비인간인 존재와 연결된 숙주가 되지는 않을까 해서.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역사의 유일한 상수는 변화'라는 문장이다. 선택은 막중하지만, 우리의 노력으로 미래는 바뀔 수 있다. 역사의 상수에 '희망'이란 두 글자를 매달아본다. 이 글을 읽은 당신도 아마 그러할 것처럼. 이 글을 읽고 <넥서스>를 읽어볼 당신이 분명히 그러할 것처럼. 어쩐지 흔들리던 마음에 무게 중심이 잡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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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7, 11째 줄: 메머드 → 매머드
p134, 5째 줄: 여호화 → 여호와
p231, 밑에서 3째 줄: 에 서 →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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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문장 안에서 'oo 들은, oo 들에게' 가 언급된 띄어쓰기가 오류라는 생각에 과속방지턱처럼 시선이 걸려 잠시 불편했으나 Gemini에게 물어본 결과, 여러 단어를 나열할 경우는 의존 명사에 해당하여 띄어 쓰는 게 맞다는 문법 지식을 얻게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