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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선물 - 제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개정판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6월
평점 :
집착녀가 따로 없다. 오른손엔 집게, 왼손엔 밥숟가락을 든 지 30분째다. 집게로 건더기를 포착해 숟가락 위에서 살과 가시를 분리하는 중이다. 군산 앞바다에서 건져 올린 것도 모자라 광어 서너 네댓 마리를 들통에 손수 고아 광어 지리를 만들어준 초보 낚시꾼. 남은 국물에 라면을 끓여 먹는다는 말에 어부의 아내로서 본분을 다하는 마음으로 맑은 탕에서 가시를 골라낸다.
늘 그렇듯 시작은 사소하다. 새끼손가락만 한 척추 가시 토막만을 휘휘 골라내고 나머지 잔가시는 입으로 발라내며 먹으면 그만이다. 도구를 들었을 때 한 생각이다. 한데 골라낼수록 더 골라내고 싶은 거다. 완벽주의병이 도지는 바람에 지 발등을 지가 찍어버리는 무모함으로 개고생을 자처한다. 은근한 성취감까지 느끼던 아내는 매의 눈을 장착한 채 장인 정신을 발휘한다. 비루했던 맑은 탕이 추어탕 비주얼로 환골탈태한다.
멀리서 볼 때는 번거로울 가족을 위해 이보다 정성스러울 수 없는 마음으로 가시를 골라내는 가족 사랑의 표본이다. 알고 보면 자기만족을 위해 이루어진 작업일 뿐이다. "당신의 소중한 입을 위해 이토록 정성스레 발라버렸떠염~" 아름다운 멘트로 포장하며 본래 의도를 완벽하게 숨긴다. 삶의 아이러니. 보이는 모습이 다가 아니다. 때로는 진실보다 적절한 거리 두기와 결합한 숨바꼭질이 삶에 유용하지 않을까. 사악한 의도가 아니라면.
『새의 선물』은 삶과의 거리 두기를 유지하는 30대 후반의 여성이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성장 소설이다. 여섯 살 때 어머니는 자살하고, 아버지가 도망가는 바람에 주인공 진희는 외할머니의 손에서 자란다. 아이는 '열두 살 이후 나는 성장할 필요가 없었다'라는 표현을 할 정도로 조숙한 시선으로 자신과 주변의 삶을 관찰한다. 소설은 12세 진희를 일인칭 관찰자로 설정하여 액자를 들여다보듯 1960년대 시골 읍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묘사한다.
스스로의 삶까지도 관찰하는 아이는 자신을 둘로 분리하여 사고한다. '보여지는 나'와 '바라보는 나'이다. '보여지는 나'가 삶을 이끌어가면, '바라보는 나'는 관찰한다. 자신을 객관화하는 방식으로 삶으로부터 다가오는 상처를 스스로 치유한다. 얼핏 냉소적으로 보이지만 이러한 관점은 오히려 삶 속으로 과감하게 파고 들어가는 원동력이 된다. '바라보는 나'는 담담하게 자신과 얽힌 주변인들의 삶을 묘사한다.
어른 아이는 원초적인 욕망을 드러내지 않는다. 거리 두기로 대상을 바라본다. 주인공 진희의 캐릭터는 MBTI의 전형적인 T 유형이다. 상황 판단이 명확하다. 감정을 개입하지 않고 판사처럼 시시비비를 가리는 건조함은 때로는 당황스러운 웃음을 유발한다. 몰래 숨기려는 의도는 진희의 레이더에 포착되면 햇빛에 노출되듯 여지없이 드러난다. 그게 오히려 독자에게 카타르시스로 작용한다. 뽀송뽀송 마른 빨래를 만지듯 개운한 느낌마저 안긴다.
공간적 배경은 한 울타리에 살면서 마당에 있는 빨래 바지랑대를 공유하는 집들이다. 주인공이 살고 있는 주인집, 세 들어 사는 장군이네집, 네 칸으로 이루어진 가겟집이다. 마당 중앙의 우물을 둘러싸고 진희, 이모 영옥, 외할머니, 삼촌, 장군이 모자, 최선생님, 이선생님, 광진테라 양복점 부부와 어린 아들, 뉴스타일 양장점 미스 리가 살아간다. 아이는 이들의 서사를 번갈아 펼치며 여성으로서의 삶과 사회적인 부조리를 고스란히 뒤집어 보인다.
시대적 배경에서 중간중간 화석처럼 튀어나오는 낱말이 고리가 되어 번번이 나를 어린 시절로 데리고 간다. 당시 상황을 묘사한 사물들에 대한 개념이 배경지식으로 장착되어 있으니 2차원 문장이 3차원 동영상으로 머릿속에 재생되는 기현상을 경험한다. 덕분에 훨씬 실감 나는 장면으로 작가가 이끌어가는 이야기의 맛을 음미한다.
국민학교 때 다른 지역에서 전학 온 친구의 소개로 주고받던 펜팔, 3월이면 하얀 달력 종이를 잘라 겉표지를 쌌던 새 교과서, 손 편지, 환경미화 심사, 빨랫줄, 우물, 석유풍로, 형광등에 달린 끈, 가정의례준칙, 다락, 자석 필통, 고무 인형, 빨간 때수건, 송충이, 혼식 검사, 신작로, 연극, 아플리케 스티치, 책받침, 띠기, 책보, 국민교육헌장, 주번, 토요일 등교, 홑청, 요강, 변소, 마당을 제시어로 딸려 오는 먼지 쌓인 기억들이 들썩임을 반복한다.
세 들어 사는 집 이야기를 접하니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똑같은 전세여도 독채 전세에 살기를 꿈꾸던 시절, 주인집과 공유한 마당이 있던 시절, 아파트에 살아보는 게 꿈이던 시절, 커다란 솥단지에 씻을 물을 데워 사용하던 시절이 스냅 사진처럼 지나간다. 소설 속 집 한가운데 존재하던 우물처럼 그 시절 한가운데 나의 어머니가 있다. 뜨거운 솥단지의 물에 데였던 당신의 모습은 빛바랜 기억 가운데 또렷하다.
『시린 새벽 다섯 시를 연탄불에 올리셨다 / 어두운 밤 한껏 품고 출렁이는 물을 담아 / 커다란 솥 한가득 데워 하얀 아침 건네주셨다 // 걸레 꽁꽁 얼던 방안 코끝까지 덮은 이불 / 부스스 눈뜬 아침 모락모락 김 나는 물 / 한 바가지 찬물과 섞어 따뜻하게 세수를 했다 // 뜨거운 물 나르시다 뜨거운 물 쏟아진 날 / 화들짝 부어올라 벌겋던 당신의 발등 / 당신 삶의 쓰라린 물기가 어린 기억에 내려앉아 / 녹지 않는 눈이 되어 가만가만 쌓인 걸까 // 시린 새벽 다섯 시에 하얀 아침 꺼내어본다 / 온수에 손 적시는 계절이 올 때마다 / 당신의 나날들을 종종 그러안는다 / 촉촉해진 눈으로 덴 듯한 심장으로 / 차가운 겨울 아침 뜨거움을 안는다 』(제목: 뜨거운 겨울, 2017. 11.)
어떤 기억은 망각의 영역 밖에 존재하는 걸까. 방금 한 말도 금세 까먹는데 하물며 국민학교 때의 일이건만 매번 선명하다. 시를 지어 박제를 해도 불쑥 솟구치는 온천물인 양 겨울이면 불현듯 심장 속을 부유한다.
춥고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 연탄불을 때는 아랫목에 앉은 기분이다. 고생하셨던 어머니 덕분에 자식의 심장에는 따뜻한 선물을 받은 것처럼 온기가 스민다. '인생의 의미는 당신의 선물을 찾는 것입니다.' 파블로 피카소가 말했다던가. 이 책의 제목 '새의 선물'을 보는 순간, 그의 말이 떠오른다. 왜 '선물'일까. 완독한 지는 꽤 지났건만 제목과 본문과의 연결 고리가 명확히 이해되지 않아 답답한 마음으로 일주일가량을 보낸다.
『아주 늙은 앵무새 한 마리가 / 그에게 해바라기 씨앗을 갖다주자 / 해는 그의 어린 시절 감옥으로 들어가버렸네』(자크 프레베르, 「새의 선물」 전문)
꼴랑 세 줄을 이토록 이해하지 못할 일인가. 자크 프레베르는 왜 하필 프랑스 사람인가. 원문이 영어로 되어 있다면 더듬더듬 해석이라도 시도해 볼 텐데. 그가 지은 시의 제목에서 차용했음을 짐작해도, 차례 이전에 시의 전문이 제시되었어도, 심지어 KBS 뉴스의 인터뷰 글에서 은희경 작가의 설명을 직접 찾아 읽어도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건 여전했다.
작가의 설명에 의하면 방점은 '어린 시절 감옥'에 찍힌다. 해는 해바라기 씨앗을 거절한다. 어린 시절 감옥, 자기가 원하는 것일 텐데도 이를 거부하는 삶의 태도가 주인공 소녀를 담아내기에 적절하다고 생각했다는 답변이다.
일주일가량 집착녀 모드를 가동한 결과, 다른 해석을 시도한다. 나는 선물에 방점을 찍고 싶다. 시의 문장을 아무리 곱씹어도 씨앗을 거절하는 상황 같지 않다. 씨앗을 거부한 게 아니라 씨앗이 감옥으로 들어갈 용기를 불러일으킨 계기가 된 건 아닐까.
감옥은 구속의 상징이다. 어린 시절과 감옥의 결합은 불우한 환경을 상징한다. 힘들었던 시절은 떠올리기조차 힘겨운 법이다. 힘든 기억은 종종 트라우마로 남아 어른이 되어서도 그를 괴롭힌다. 무의식의 저변에 가라앉아 있다 마음이 약해지는 순간이면 어김없이 떠오른다.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를 마주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시 속의 해는 제 발로 그곳으로 들어가 버린다. 끌려 들어간 게 아니라 능동성을 보이는 상황이다.
해를 바꾼 계기는 씨앗이다. 해만 바라보던 해바라기의 꽃잎은 시간이 흘러 다 떨어졌으리라. 멀리서 꽃잎이 사그라드는 것만 보던 해는 절망한다. 한데 씨앗을 받음으로써 다시 해바라기를 볼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된다. 이는 어린 시절을 마주할 용기로 연결된다.
아주 늙었다는 건 삶이 품은 시간의 흐름을 의미한다. 새는 자유롭게 공중을 날 수 있어 자유의 상징으로 비유된다. 삶의 자유가 가져다준 씨앗은 어린 시절에 해를 사랑했던 해바라기가 있었음을 깨닫게 만든다. 그러므로 이 소중한 '선물'은 예상치 못한 뭉클함이다. 이제는 당당하게 어린 시절의 자신을 마주하라는 따뜻한 속삭임이다.
새로운 관점으로 책의 내용을 되감기 하니 책의 제목이 내용과 더욱 긴밀하게 연결된다. 어떤 글이든 작가의 일부는 담겨있으리라. 직접적인 경험이거나 다른 이의 경험을 공감한 것이거나. 시를 포함한 나의 글이 나를 묘사하거나 공감이 되는 드라마 속 인물이나 주변인의 삶을 담아내므로 100% 허구는 아닌 것처럼. 작가의 영혼과 공명해야 좋은 글이 나온다. 문학 작품에 제일 먼저 감동하는 이는 작가 자신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인 이 작품의 원제목이 '연애 대위법'이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문학에서 대위법은 서로 다른 감정이나 주제를 병치시키는 기법이라고 한다. 표면적으로 이모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연애사가 가장 많이 등장하니 얼핏 적절해 보인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사랑보다 삶의 향기가 더 짙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사람만이 그 삶에 성실하다는 것, 자갈투성이 밭에 들어와서도 바로 옆에 기름진 땅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발을 들여놨다는 이유만으로 평생 뼈빠지게 그 밭만을 개간한다는 것, 건드려질 때마다 아픔을 느끼는 상처를 갖는다는 건 삶에 대한 조절 능력을 상실하는 거라는 것, 사람들은 더 나은 삶을 위해서라기보다 지금의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떠난다는 것, 어이없고 하찮은 우연이 삶을 이끌어간다는 것, 상처를 덮어가는 일로 삶이 이어진다는 것.' 밑줄을 그은 문장들이 한결같이 삶의 과녁을 향한다.
삶에 대한 통찰력이 빛나는 문장들이 많다. 작가가 다시 붙인 제목은 아주 탁월한 선택이다. 은희경 작가에게 '새의 선물'은 무엇이었을까. 감히 상상하건대 그녀에게는 작품을 탄생시키기까지 받았던 영감과 경험이 아니었을까.
소설 속 화자의 거리 두기를 통해 누군가의 어린 시절을 마주하며 또 다른 누군가는 용기를 얻었으리라. 여성의 삶과 가부장적인 가정의 모습과 사회적인 시선들을 그려냄으로써 시대적 상황을 비판하는 통쾌함으로 어떤 이는 다른 길로 걸어갈 힘을 얻었으리라. 혹은 상처 입은 영혼이 이 작품을 계기로 희망을 품게 되었을지 모른다. 새의 선물이 릴레이로 이어지는 상상을 한다. 우연이 삶을 이끌어간다면 충분히 가능한 예측이다.
나에게 새의 선물은 무엇일까. 삶의 순간순간 많은 선물을 받아왔음을 깨닫는다. 끈끈한 가족애,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는 삶에 대한 긍정, 돈보다 훨씬 소중한 마음의 풍요가 가져다주는 기쁨을 어린 시절에 나는 어머니로부터 건네받았다. 궁핍한 가운데 자그마한 책의 숲을 만들어주셨기에 글과 친숙한 벗이 될 수 있었다.
가장 큰 선물은 책을 좋아했던 소녀가 전해준 유전자이다. 이토록 기가 막힌 표현이라니! 자아도취성 문장이 튀어나올 때마다 유전의 영향력을 절감한다. 집착녀 기질에서 파생된 끈기 덕분에 나의 글은 나날이 창대해지는 중이다. 삶의 중력에 끌려들 때마다 글은 몽글몽글한 풍선이 되어 시린 바닥으로부터 나를 떨어뜨려 놓는 선물이 되었다. 풍선 안에는 당신이 불어넣어 주신 뜨거운 숨결이 있다. 나의 삶은 매번 지금처럼 따뜻해진다. 뜨거운 선물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