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공공미술, 도시를 그리다 - 우리가 몰랐던 공공미술에 관한 이야기
홍경한 지음, 리모 그림 / 재승출판 / 2017년 9월
평점 :
절판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는 과정이라니! 조각에 대한 멋진 정의를 들었을 때, 매끈한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을 떠올린다. 바로 그가 이렇게 멋진 말을 한 장본인이라는 걸 아는 순간, 살짝 소름이 돋는다. 자신이 한 말을 그대로 구현해 낸 사람이라는 생각에서이다.
머릿속에만 머물던 이미지를 세상에 존재하는 물질로 탄생시키는 예술은 멋진 작업이다. 무(無)에서 유(有)를 만드는 과정으로 향하는 화살표에 인간의 손길이 있다. 울퉁불퉁한 직육면체 비스므레한 덩어리였을 돌 조각을 그토록 멋지게 깎아내기까지 작가는 얼만큼 땀을 흘렸을까. 상상이 현실로 점차 모습을 드러낼 때, 흐르다 자유롭게 날아간 땀의 양만큼 희열을 느꼈을까.
거리가 3차원 캔버스인 양 돌과 나무와 철과 때로는 상상도 하지 못한 물질들로 거대한 예술을 구현하는 조각가들이 있다. 소설 <걸리버 여행기>의 실사판인 양 거대한 조각상들 아래 소인국 사람들이 지나다닌다. 온통 예술로 가득한 공간,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삶에 묻을 예술의 향기를 상상한다.
공공 미술은 '거리 곳곳에서 마주하는 조각들'을 말한다. 미술 비평가이자 칼럼니스트, 전시기획자인 홍경한은 우리나라에 있는 길섶의 작품 1만 5천여 점 중 38점을 선정하여 소개한다. 그가 작품을 선정한 기준은 심미성을 포함한 예술성, 작품의 가치, 작품에 새겨진 흥미로운 내레이션이다.
일상에서 만나는 조각, 삶과 예술의 하모니, 공공 미술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들 등 3부로 구성하여 이에 부합하는 작품들을 전시 기획을 하듯 배치한다. 더불어 저자는 큐레이터이자 도슨트 역할을 친절하게 수행한다. 작품에 얽힌 이야기, 조각가들의 의도, 유사한 작품들과 비슷한 맥락의 다른 작가에 대한 안내까지 곁들이니 공공 미술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
그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미술 비평가와 칼럼니스트로서의 정체성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우리나라 공공 미술의 역사를 톺아보고, 공공 미술의 현재를 진단한다. 일방적인 소통이나 사후 관리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비판하며 공공 미술의 근본적인 정체성을 통해 이를 바라보는 시선을 제안한다. 나아가 공공 미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 제시한다.
내용 못지않게 눈에 들어오는 건 소개 작품에 대한 드로잉이다. 리모 김현길의 작업을 통해 사진이 수록되지 않은 아쉬움을 뛰어난 그림으로 채운다. 문장에서 언급된 작품과 작가들의 다른 작품의 실물 사진을 모두 인터넷으로 검색하며 읽었다. 그리 두껍지 않은 책임에도 완독하는 데 생각보다 오래 걸린 이유다.
조각 예술로 풍성한 일주일을 보낸다. 놀랍도록 실물 이미지와 드로잉의 싱크로율이 일치하는 작품들이 많았다. 덕분에 나의 시간도 수채화로 투명하고 아름답게 채색되는 듯했다.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는 한계가 있기에 생생한 색감이 아쉬운 작품도 보이지만 실물 사진과 대조하는 시간도 재밌고 의미 있었다.
조각의 매력은 역동적이라는 점이다. 2D 작품만 주로 감상하다 3D로 보니 입체가 주는 매력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공간과의 어우러짐, 공간과 주고받는 메시지가 더해진다. 개성적인 에너지를 뿜어내는 작품들을 보며 책장마다 입체 카드라도 삽입된 듯 공간감을 느낀다. 특히 마음에 들어오는 작품을 보며 나의 취향을 새삼 깨닫는다. 예술가의 시선에 공감하다 보니 내 삶의 무대가 보다 넓어지는 듯하다.
속도감이 느껴지는 작품들을 감상하며 내 삶의 속도를 가늠하는 시간을 갖는다. 초침의 속도, 분침의 속도, 시침의 속도. 나는 어떤 속도로 살아가고 있을까. 소리 없는 예술 작품이 전하는 공간의 파장을 느끼며 나의 심장은 조금씩 규칙적인 리듬을 찾는다.
심현지의 <물고기>는 색감이 좋다. 커다란 물고기에 무지갯빛으로 반짝이는 색채를 보며 잠시 행복한 동화 속 바다를 상상한다. 서도호의 <카르마>에 대한 해설을 접하고 다시 작품을 본다. 얼핏 보았을 때는 청록색 모기장처럼 보였던 작품이다. 전해져 오는 철학적인 무게감이 마음을 울린다.
저자가 언급한 헨리 무어의 작품 중 인터넷으로 검색해 본 <누워있는 형상>에서 깔끔한 돌 조각의 매력에 반한다.
노동식 작가의 작품은 부드러운 충격을 준다. 조각의 재료가 솜이라니! 고정관념을 깨뜨린 시도가 경이롭다. 책에 소개된 <민들레 홀씨 되어>는 공들여 쓴 칼럼을 접하는 듯하다. 검색으로 3m 모기향, 램프의 요정 지니가 나오는 장면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다. 공간으로 허무하게 사라지는 연기를 사진을 찍듯 붙들어 놓은 발상에 감탄한다.
소개된 내용에 대한 의견이 두 가지 있다.
첫째, 프랭크 스텔라의 <아마벨>의 부제는 '고철에 담긴 비애와 슬픔의 꽃 한 송이'이다. 한데 이에 대한 구체적 설명이 없다. 저자의 설명에 의하면 이 작품은 20세기 물질문명 사회가 만들어낸 상처를 담고 있다. 이게 왜 상처인지, '아마벨'이란 제목은 무슨 의미인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인터넷 검색을 하니 이해가 된다. 아마벨이 비행기 사고로 죽은 19세 소녀이며, 그 비행기의 잔해를 모아 해당 조형물을 만들었다는 설명이 추가되었더라면 '비애와 슬픔'에 대한 이해가 보다 더 깊어지지 않았을까. 작품의 재료가 고철일 수밖에 없는 이유까지 말이다.
둘째, 하우메 플렌자의 작품은 <가능성>으로 제시하는 편이 좋지 않았을까. <칠드런스 소울>에서는 '각 나라의 고유한 문자를 통해~'라는 문장이 언급된다. 저자의 서술 의도는 나라별 고유 문자를 표현한 예술을 소개하는 듯 보인다. 고유한 문자라면 영어로 된 작품보다는 한글로 제작되었다는 <가능성>이 더 적합해 보인다.
책의 구성에 대한 의견도 있다.
첫째, 책 표지 디자인이다. 표지에는 본문에 소개된 작품들이 앞과 뒤에 각각 7점씩 배열되어 있다. 한데 앞표지와 뒤표지의 작품 중 6점이 중복된다. 디자인의 의도는 분명 있을 테니 전문가의 작업에 이의를 제기하자는 건 아니다. 다만 비전문가의 입장에서 직관적인 의견을 적는다. 나라면 작품이 38점이나 되니 각기 다른 작품을 수록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둘째, 새드 엔딩이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은 '~씁쓸함이 남는다.'이다. 덩달아 그리 유쾌하지 않은 마음으로 마무리를 한다. 저자의 시선은 전체적인 시스템을 총괄하는 입장에 있는 듯하니 수긍이 간다. 날카로운 비판은 필요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여운을 느끼고 싶은 마음이 있다. 보다 희망적인 내용을 마지막에 배열했으면 어땠을까. 그 많은 공공 미술에 참여한 작가들의 마음에는 분명 보다 나은 세상을 향한 희망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을 테니 말이다.
세상은 분명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믿고 싶다. 미술의 진정한 역할은 삶의 긍정성을 배가하는 데 있다던가. 미술로 인해 사람들의 마음이 변화한다면 덩달아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따뜻해지리라 생각한다.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게 밥을 먹여주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밥을 먹고 싶은 마음을 안겨준다고 나는 믿는다.
공공 미술 조각가들이 진정으로 원한 건 세상과의 소통이리라.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에 말을 걸었던 이들의 마음을 상상한다. 그들의 외침이 조금씩 모여 커다란 울림으로 전해진다. 작품뿐 아니라 주변의 공간까지 조화를 이루면서 파동인 듯 메시지가 전달되기 때문일까. 주변의 바람과 햇살, 희미한 대지의 냄새와 함께 3D의 입체 예술을 느끼고 싶다. 여행의 테마로 잡아도 의미가 있을 듯하다.
언제나 그렇듯 마지막 시선은 나를 향한다. 내면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조각들을 감상하니 삶에 입체감이 더해진다. 공간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느낌이다. 당신은 어떤 방식으로 세상에 말을 걸고 싶냐고. 이 글을 따라 시선을 옮기는 당신에게 하듯 나는 한 글자 한 글자에 마음을 담아 세상에 말을 걸고 싶은 걸까.
※
p127, 밑에서 4째 줄: 토니 오슬로 → ~오슬러
p135, 4째 줄: 프리즈마 → 프라즈마
p144, 밑에서 4째 줄: 전통문화예술중심지 인사동 → ~중심 인사동
p271, 7째 줄: 운봉길 → 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