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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준의 인문 건축 기행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3년 5월
평점 :
리뷰를 쓸 때마다 집 짓는 상상을 한다. 마음을 울리는 문장과 파편적 생각을 건축 자재인 양 '빈 문서 1'의 집터에 가져다 놓는다. 유리창, 나무판, 벽돌, 철근을 닮은 글의 조각들을 이리저리 옮기며 어울리는 자리를 찾는다. 기둥을 세우고 벽을 연결하고 문장의 방을 만든다. 출입문과 창문도 끼워 넣는다. 작가가 제공한 건축 재료에 내가 가진 것을 더한다. 글로 만드는 집이다. 몇 번이고 서성이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미련 없이 허문다.
완성된 집을 보듯 한 권의 책을 본다. 수많은 집을 구경하다 꿈을 꾸게 만드는 집도 만난다. 평면에 박제된 감성을 공간으로 생생하게 펼쳐주는 집이다. 펼치면 크리스마스트리나 산타 할아버지가 벌떡 일어서는 3차원 입체 카드를 건네받는 느낌이다. 밋밋하던 공간에 공기 이상의 의미가 다채롭게 담긴다. 공간의 개념이 확장된다. 낯선 설렘으로 두근거린다.
공간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그 안의 사람은 많은 영향을 받는다. 유현준 작가의 글을 접하면서 공간과 건축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건축에 대한 글로 이런 느낌을 받을 줄이야. 건축은 놀라우면서도 조심스러운 작업인 듯하다. 인간을 담는 공간을 구현하는 일이니 어찌 보면 당연하다. 건축가들은 자연과학적 기술력에 인문학적 소양까지 풍부하게 갖추고 건축에 접근해야 하리라. 단순히 물질로 만든 구조물이 아니라 무형의 공간을 유형의 공간으로 변화시킨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접했을 때 받았던 생소한 느낌이 떠오른다. 한동안 내가 사는 도시의 거리를 지나면서 건물과 그 주변을 해석하는 작가의 문장을 얹어보았다. 『공간이 만든 공간』에서는 한결 친숙해진 시선으로 건축물을 바라보았던 기억이 있다.
『유현준의 인문 건축 기행』은 20명의 건축가가 기획한 30개의 건축물을 소개하는 책이다. 몇몇 건축물은 작가의 전작에서 소개된 건축이라 익숙한 모습에 반가움이 앞선다. 그가 이 책에 수록할 건축물을 선택한 기준은 명확하다. 창의성이 담겨있는지 여부이다. 작가는 새로운 생각을 보여주는 건축물에 커다란 감동을 받는다. 유현준의 관점을 따라 그와 시선을 일치시키고 소개된 건축물을 바라본다. 도슨트의 안내를 받아 미술관의 작품을 관람하듯 건축물에 담긴 창작자의 향기를 보다 깊이 들이마신다.
창작물에는 의도가 담겨있기에 창작물을 통해 인간을 알 수 있다. 마야 유적을 보며 고대인들의 문화를 가늠하듯 인공물은 창작자와 그가 담고자 하는 인간을 대변한다. 건축물은 건축가의 의도를 만나 유일한 정체성을 지닌 대상으로 탄생한다. 인간을 감싸 안는 공간에서 살아 숨 쉬는 인간은 건축물과 공명하며 삶을 이어간다.
무심코 지나치던 건축물들을 떠올린다. 건축에 담긴 예술성이 이제야 조금씩 보인다. 책 안에 소개된 건축물들은 여행의 이유로 삼아도 될 만큼 흥미롭다. <인문 건축 기행>이라는 책 제목에 걸맞게 책의 구성은 여행 맞춤형이다. 건축물을 테마로 하는 여행안내서의 역할을 충분히 해내리라 여기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첫째, 건축물이 세워진 장소별로 구성된 목차이다. 작가는 유럽, 북아메리카, 아시아 등 크게 세 군데의 대륙으로 구분하여 해당 건축물을 소개한다. 둘째, 여행지를 소개하듯 대륙별 지도에 각 건축물의 위치를 표시한다. 전체적인 여행 코스를 계획하기 편하게 만들어 준다. 셋째, 각 장의 마지막 부분에 건축 연도, 건축가, 위치, 주소, 운영 시간, 휴관일 등 개관을 소개하여 세부적인 시간 계획의 수립을 돕는다. 넷째, 각 장의 도입 부분에 그려진 건축물 일러스트와 중간중간의 평면도, 단면도, 조감도 등 도면으로 건축물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우리 집의 평면도를 그리는 과제를 했던 적이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방학 숙제였던 '탐구 생활'이라는 책자 안에 있던 과제다. 창문, 미닫이문, 여닫이문 등 간단한 건축 기호가 나오는 내용이었다. 대문 열고 들어가면 주택 오른쪽에는 주인집이 살았다. 우리 집은 주택 왼쪽에 있는 방 하나, 그 옆에 붙은 부엌이 전부였다. 당시 나는 매우 간단하다며 웃는다. 날 일(日)자를 닮은 네모 하나만 그리면 되었으니까.
씻는 곳은 부엌문 옆에 있는 야외였으니 그리지 않는다. 수도꼭지 한 개는 초등학교 건축 기호에 없었다. 방에는 미닫이문과 창문 하나, 부엌에는 앞뒤로 여닫이문을 그려 넣는다. 부엌 뒷문을 열고 몇 걸음 걸어가면 화장실이 있다. 여기서 살짝 주춤한다. 주인집과 공용인데 이걸 넣어야 하나. 잠시 갈등하던 초딩. 우리도 사용하니까 퍼즐 판에서 튕겨져 나간 조각인 양 조금 떨어진 거리에 쪼끄만 네모와 여닫이문 하나를 그려 넣는다.
이사 다녔던 많은 집은 꽤 오랜 기간 내가 그렸던 평면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집은 그저 비바람이나 눈보라, 추위 등 자연 현상을 피하기 위해 존재하는 구조물 이상은 아니었다. 선사 시대의 움집이나 식물을 재배하는 비닐하우스처럼. 생존을 위한 목적에 예술이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내 삶 가까이에 머물던 건물은 예술과는 거리가 멀었다. 결혼 이후 살던 집은 모두 아파트이고 직장 역시 학교이니 말이다. 평수가 비슷하면 우리 집이나 남의 집이나 구조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학교 건물도 규모만 다르지 네모네모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네모난 집에서 네모난 직장으로 양방향 화살표를 따라 살아온 셈이다. 이런 이유로 유현준 작가가 소개한 건축물들이 더욱 인상적으로 다가온 걸까. 정형화된 모양에서 벗어난 다각형과 비정형화된 곡선의 향연은 홀로그램을 보는 듯 몽환적이었다.
그런 데서 삶이 가능할까. 마음 한구석 의구심을 품고 건축물을 들여다본다. 주변 환경과 어우러지면서 건축물의 필요성을 동시에 충족하도록 건축 자재를 변형한다는 건 얼마나 세밀한 작업일까. 더군다나 모래로 만드는 두꺼비집처럼 공간을 비워야 하는 작업이니 말이다. 손을 쑥 빼도 허물어지지 않도록 이리저리 무게 중심을 맞춘다는 건 정교한 기술력을 필요로 하니 만만치 않은 일이리라.
상상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이를 현실 세계에 구현하는 건 어나더 레벨의 차원이다. 모형으로 시뮬레이션한다고 해도 거대한 건축물을 지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변수는 무한에 가깝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도한다는 건 얼마나 과감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인가. 세상에 없던 공간을 만드는 일이니 작가의 말처럼 건축가는 발명가가 맞다.
새로운 공간이 사람들의 생각에 영향을 주고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작가의 생각에 공감한다. 세 가지 사회적 실험이 등장하는 인터넷 영상이 생각난다. '소셜 컨트롤'이라는 제목으로, 공간에 변형을 주어 사람들의 행동이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일정 속도로 운전하면 노래가 흘러나오는 도로를 만들어 과속을 줄이고, 식욕을 억제하는 파란색으로 우아한 분위기의 식당을 꾸며 과식을 억제한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비트박스 계단이다. 계단 양 끝에 센서를 달아 비트박스 소리가 나게 만든 결과, 계단 옆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는 횟수가 현저히 줄어든다. 기존의 피아노 계단은 여럿이 이용하면 음이 섞여 오히려 소음으로 변모하기 십상이다. 비트박스 계단은 여럿이 이용해도 주변 사람들까지 즐겁게 만들어 주며 자발적으로 여러 번 오르내리게 되니 건강과 즐거움을 모두 만족시키는 발상이다.
비슷한 맥락이리라. 본연의 목적에 충실하면서 동시에 사람의 마음에 영향을 주는 건축물이 결국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는 것도. 눈으로 사진을 찍으며 때로는 감탄하고, 뭉클한 마음으로 새로운 시도의 결과물을 구경했다.
건축 재료의 변화로 디자인의 변화를 시도하거나 재료 자체의 성질을 이용한 건축, 중력을 이겨야 한다는 건축의 본질을 보여준 건축, 기하학을 잘 사용한 건축, 권위를 깨는 비대칭 공간으로 사람을 자연스럽게 품어주는 성당, 주변 환경과 빛을 잘 이용한 종교 건축, 화목하게 어우러져 살 수 있는 복층 세대, 정치 이념을 구조로 보여준 국회의사당, 자연과 협업하며 대화의 상대로 이용한 건축, 파격적인 상상을 현재 기술을 이용해 실현하는 방법을 개척한 건축, 고정 관념을 깬 미술관, 제약으로 발생한 문제 해결의 답을 디자인으로 바꾼 건축, 땅의 특징에 적합한 맞춤형 건축, 주변의 좋지 않은 에너지까지 전환하는 건축 등이 빛처럼 눈부시게 쏟아져 들어왔다.
수많은 건축물을 보면서 나를 품었던 공간을 떠올린다. 몇몇 집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house와 home을 번갈아 가며 들락거리던 기억이 난다. house와 home의 차이점을 들어보았는가. 전자는 물리적인 구조물을 의미한다. 후자는 보다 더 확장된 개념으로 감정적인 요소까지 포함한다고 한다.
단칸방에 살던 시절, 여름과 겨울을 고스란히 받아냈지만 종종 떠올리면 그리움이 묻은 미소가 지어지는 걸 보면 그때의 공간은 home이었다. 결혼 후, 방이 세 칸이나 되었어도 무거운 심장으로 오갔던 시간들이 머문 공간은 house였으리라.
주어진 상황에서 공간을 바꾸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물건 버리기와 정리하기.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 오면서 서서히 물건을 버리기 시작했다. 정리를 시도하니 마음이 많이 편안해졌다. 이 글을 쓰는 스터디 카페에서 집을 떠올리면 마음에 안정감이 드는 걸 보면 나는 분명 home에 거주하는 자다.
집을 소유한다는 건 집이 감싸고 있는 공간에 대한 사용권을 얻는 것과 다름 아니다. 어느 공간이든 마음대로 마음을 누일 수 있는 장소에 나의 시간을 누이고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나만의 공간을 조금씩 변화시키면서 세상을 바라보려 한다.
예술이 깃든 건축의 관점에서 세상을 알아간다는 것은 참 멋진 일이다. 전문가로서 소신을 가지고 스스로의 관점으로 세상을 해석해 나가는 저자의 방식이 마음에 든다.
언젠가 공간의 아름다움이 뿜어내는 빛을 눈으로 받아들이는 날이 올까. 작가 유현준의 시선에 빙의해서 건축물을 바라보다 나만의 시각으로 공간과 건축물의 조화를 해석하는 어느 일상이. 그런 날을 기록하는 나의 글은 입체 카드인 양 생생한 건축물을 닮아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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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87, 주석 5번: 직사각형이 고 → ~이고
p488, 3째 줄: 계 단 → 계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