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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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같은 소설이 있다. 불꽃처럼 화려하게 춤추지 않고 묵묵히 흘러가는 물과 나란히 가는 서사가 담긴 작품 말이다. 작가는 그 안에 빙하를 띄워 놓는다. 뜨거운 듯 차가운 얼음은 양면성을 보여준다. 활활 타는 불을 접하는 경험 못지 않다. 냉철한 이성으로 삶의 단면을 예리하게 파고 든다.

가까이 간 이들만이 물속에 잠긴 거대한 몸체를 본다. 작가가 뜨거운 열정을 쏟아붓는 건 소설이 완성될 때까지. 세상에 드러나는 순간까지다. 지혜로운 작가는 굳이 많은 것을 말하지 않는다. 그의 역할은 단 하나, 독자를 빙하 가까이로 끌어당기는 것. 이후의 일은 독자의 몫이다.

물속을 들여다보고 잠수를 하는 것도, 빙그르르 돌아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길을 가는 것도 책장을 넘기는 이가 할 일이다. 누구도 뭐라고 하거나 그를 비난하지 않는다. 상관없는 이에게 상응하는 책임은 없다. 대다수 사람들은 자신의 삶의 여집합에 무덤덤하니까.

지금 감당하는 삶만으로 충분히 버겁지 않은가. 나도 어쩌면 당신도. 빙하의 나머지 부분을 왜 들여다보지 않느냐고 비난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물에 비친 마음을 바라보는 자신이리라.

클레어 키건의 작품 『이처럼 사소한 것들 』은 물을 닮은 소설이다. 저자는 아일랜드의 모자 보호소와 막달레나 세탁소에서 고통 받으며 노동력을 착취 당하던 여자들과 아이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만든다. 평범한 삶을 살아가던 주인공에게 핀 조명을 비춘다. 사건을 인지하고 따라가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심리적인 갈등을 디테일하게 보여준다. 물에 비친 마음의 일렁임을 냉철하게 묘사하며 독자에게 묵직한 메시지를 건넨다.


 '뭔가 작지만 단단한 것이 목구멍에 맺히는' 느낌을 인지하는 섬세함, '애를 써도 그것을 말로 꺼낼 수도 삼킬 수도 없는' 영혼의 투명한 갈등, 스스로도 흔들리고 위태로우면서 또 다른 존재를 포용하고자 결심하기까지 내면이 변화하는 과정이 촘촘하게 서술된다.

미혼모에게서 태어난 주인공 빌 펄롱에게 미시즈 윌슨은 모자를 포용해준 은인이다. 그녀 덕분에 빌은 어린 시절을 무난하게 보낸다. 그는 석탄 등 땔감을 취급하면서 배달하는 일을 하며 살아간다. 그를 둘러싼 일상의 풍경은 자잘한 걱정거리의 허들을 넘어가는 평범한 모습이다. 다섯 명의 딸들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을 아내와 고민하고 의논하거나,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가족들과 만들며 소소한 기쁨을 누리기도 한다. 커가는 아이들을 흐믓하게 바라보는 부부는 서로의 덕이라며 상대에게 공을 넘긴다. 따스한 정이 두 사람 사이에 흐른다.

평범한 일상을 보내지만 그의 내면에는 거대한 공허가 자리한다. '모든 걸 다 잃는 일이 너무나 쉽게 일어난다'는 사실을 인지한다. '어딘가로 가고 있는 것 같지도, 뭔가 발전하는 것 같지도 않는 나날'을 중년의 나이에 마주한다. 그는 삶의 의미를 향해 물음표를 붙인다.  '멈춰서 생각하고 돌아볼 시간이 있다면 삶이 어떨까. 달라질까, 마찬가지일까, 엉망진창 흐트러지고 말까.' 

중년의 한 가운데 있는 나는 시간이 두렵다. 후다닥 빨리 날아가는 것도 아니고 느릿느릿 굼뜨지도 않는 그 시간이. 매순간 같은 속도로 움직이며 1초의 멈춤도 허용하지 않는 완벽을 느낀다. 융통성이라고는 조금도 없이 그저 나아가는 묵묵함을 서늘하게 안는다.


주인공의 일상이 묘사되는 소설 초반에서는 톨스토이의 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가 떠오른다. 이야기 중간 중간에 눈에 띄는 삶의 철학이 깊어서이다. 이야기는 지루하지 않을 정도의 빠르기로 전개된다. 잠언이나 편안한 에세이 정도의 무게감으로 이 책을 대한다. 작은 여자 아이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쉬지 않는 초침처럼 움직이던 펄롱의 눈앞에 멈칫하게 되는 장면이 놓인다. 처음에는 수녀원에서 강제 노역을 하리라 짐작되는 아이들을 발견한다. 그 이야기를 집에서 들은 아내의 반응은 일반적이다. 그런 일은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첫 번째 균열이다.

그는 또 석탄 배달을 하러 갔다가 수녀원 건물의 석탄 광에 갇혀있는 맨발의 여자 아이를 발견한다. 작은 아이 한 명이 등장할 뿐인데 평온하게 흘러가는 듯 보이던 그의 삶에 생긴 균열은 더욱 커다래진다. 아이의 존재감이 연약한 가시인 듯 심장에 박힌다.

그의 심장이 껄끄러워진다. '여기 오지 않았더라면 좋았겠다, 그냥 모른 척하고 집으로 가버리고 싶다.' 까슬까슬한 감촉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가시를 그냥 빼버리면 그만이다. 가시는 연약하므로. 내면에서 자기 보호 본능과 용기가 치열하게 싸운다.

최종 선택의 문 고리는 자신의 마음 안에 있다. 사람을 움직이는 것도, 움직이지 않게 만드는 것도 가시 만큼의 존재감이다.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평생을 단 한 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치열한 싸움은 결국 용기의 승리로 돌아간다. 그는 아이의 손을 잡는다.


그렇다면, 해피 엔딩? 삶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 겨우 지났을 뿐이다. 하지 않은 일,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일, 평생을 지고 살아야 했을 일을 넘겼을 뿐이다. 아이를 데리고 나온 주인공의 행동이 결과적으로 잘한 일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삶은 늘 그렇듯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선의가 지닌 힘을 믿는다. 소설에서도 현실에서도 세상은 아직 살만하다는 걸 믿고 싶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말하는 작가가 존재하고, '이처럼 사소한 것들'에 담긴 의미를 발견하는 독자가 있으며, '이처럼 사소한 것들'로 인해 박동이 빨라지는 당신과 나의 심장이 있기에 믿음의 이유는 충분하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대부분의 일들은 발등을 철썩이는 파도 정도의 존재감을 지닌다. 어느 날 다가와서 발등을 툭 건드리곤 작은 포말로 부스러진다. 인간의 입장에서 물방울은 사소하게 보이지만 거대한 쓰나미의 시작도 결국 물방울 하나였을 터이다. 물방울을 이루는 수소나 산소 원자에 입장이라는 게 있다면 하나의 물방울은 온 우주가 되지 않는가. 이런 이유로 세상에 사소한 대상은 없다. 사소해 보이는 대상만 있을 뿐이다. 클레어 키건이 독자에게 말하고 싶었던 책의 제목을 의역하면 '이처럼 사소해 보이는 것들'이리라.   

사소해 보이는 차이는 우주 만큼의 의미를 품는다. 생각과 행동, 관심과 외면, 작가와 독자, 당신과 나의 차이 모두. 우주의 시간도 사소해 보이는 1초에서 시작되니까. 1초가 모며 1분이 되고, 1분은 1시간을 만들고, 그렇게 하루가 완성되며 촘촘히 쌓이는 하루는 계절을 지나 결국 우주의 시간으로 확장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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