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작품
윤고은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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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심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고민한다. 그냥 책장을 덮어버릴까, 투비컨티뉴드할까. 야심차게 책 표지를 넘긴지 근 일주일이 되어가건만 하루 십여쪽을 넘기기가 여간 힘겨운 게 아니다. 목구멍이 부어서 음식을 넘기기 힘든 인간이라도 된 거 마냥 시퍼렇게 눈을 부라려도 글자들을 눈으로 집어넣기가 어찌나 힘이 드는지. 꾸역꾸역 집어 넣었다가도 되돌아가서 다시 읽기를 반복한다. 소설에서 이러기가 쉽지 않은데, . "왜 이 책을 추천하셨어요!" 독서 모임 도서로 추천한 이를 원망조차 할 수 없다. 그게 바로 나라서.

추천의 이유는 그럴싸했다. 불을 연상시키며 강렬하게 시선을 사로잡는 빨간 표지, 미술이라는 장르가 주는 신비감, 흥미진진한 뒤표지의 추천 글, '벌어질 모든 우연에 덫을 설치'했다니! '상상력의 빈곤을 자책하게 만드는 기묘한 설정,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놀라운 이야기'라니! 표지에 그려진 푸른 액자 틀이 블랙홀의 중심이라도 되는 양, 그 안에 바탕과 같은 빛깔로 쓰인 제목 '불타는 작품'은 일단 나의 호기심을 강한 인력으로 끌어당긴다.

 

문제는 끌어 당겨져서 입장까지는 했으나 이후로는 이정표 없는 광장에 내던져진 듯 많은 날들을 방황했다는 거다. 고갱님, 마이 당황하셨쎄요? 작가의 목소리가 음성 지원된다. 소설 분량의 절반이 넘어가도록 작품 제작조차 이루어지지 않는다니! 작품이 불타야 하잖아! 설마 마지막에 '그리고 작품은 불태워졌다, '은 아니겠지? 슬슬 불안해진다. 읽다가 그만 두면 의문의 1패를 한 듯 찜찜할 듯하다.

일단 도전하지만 줄거리를 요약하기조차 난감한 소설이다. 배달 알바를 뛰는 생계형 화가인 주인공 안이지가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로버트 예술 재단의 후원을 받아 작품을 제작할 기회를 얻는다. 재단의 후원 조건은 하나, 완성작 중 하나를 전시 마지막 날에 소각한다는 거다. 그녀는 작품 열 점을 완성하지만 소각될 작품에 대한 애정을 버리지 못하고 모조작을 만들어 이를 빼돌리게 된다. 여기까지는 평범해 보이지만, 재단 이사장인 로버트가 ''이고 개와의 대화가 이루어지며 소각할 작품을 고르는 주체가 바로 개라는 사실에서 나의 동공은 흔들린다.

 

내용의 분배는 더 당황스럽다. 어떤 소설이든 읽기 전에 대략 전개될 내용을 상상한다. 주인공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다하리라 짐작한다. 불타는 작품을 고르기 위한 예술가의 고뇌가 주제일지도 모르지. 대략 이렇게 생각한다.

분량의 1/3 정도인 101페이지에 이르러 주인공은 재단에 도착한다. 불에 탈 작품은 언급조차 없고 캘리포니아 도시만 불에 타는 중이다. 반복된 어긋남, 소통의 부재를 포함한 상황이 몹시 답답하여 내 마음도 열을 받아 불에 탈 지경이다. 다시 1/3 정도를 지나 240페이지에 도달하니 드디어 '오늘의 개' 연작이라는 작품 주제가 얼굴을 드러낸다. 이제 마지막까지는 100페이지 가량밖에 남지 않았는데 말이다.

한데 주제가 발표된 다음부터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막판 스퍼트가 시작된 로켓 발사가 이루어지듯 내용 전개는 점차 스피드를 높인다. 발화점에 도달하기라도 하듯 이야기가 휘몰아친다. 느릿한 전개를 불평하던 시간이 무색하게도 후다닥 마지막에 도달할 만큼 몰입한다.

 

물리학자 김상욱이 추천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나 역시 소설의 전개를 따라가며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떠올린다. 여왕처럼 군림하는 듯하는 개 '로버트', 말하는 토끼처럼 여왕과 앨리스를 이어주는 통역사들, 카드가 펼쳐지는 이상한 나라같은 도시 Q, 주인공이 무심코 던진 말을 고지식할 정도로 구현하는 그 안의 사람들. 여기저기 튀어나오는 판타지적 요소가 독자를 오묘한 세상으로 데려간다.

어느 방향으로 흘러갈지 도무지 짐작되지 않는 전개와 미스터리한 복선들에 쓸데없는 걱정이 생기기 시작한다. 로버트가 처음의 그 로버트가 맞을까? 로버트는 학대를 당하고 있었나? 로버트가 던진 두 작품 중 주인공이 집어든 건 과연 진품이었을까? 공항에서 샘 옆에 있던 건 로버트였을까? , , 이 많은 물음표를 어찌 다 수습하시려고 하시나요, 작가님? 결국 나는 윤고은 작가의 결론 앞에서 한 방 얻어맞는다. 수습은 내가 해야 하는 거였다. 훌훌 떨어진 로켓의 잔해들을 주워 나의 상상력으로 나머지 퍼즐을 완성해야 했던 거다.

 

로켓 발사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문장으로 구현한다면 딱 이 소설로 비유할 수 있으리라. 거대한 몸체에서 정작 우주 공간으로 날아가는 건 맨 꼭대기에 있는 작은 덩이인 것처럼, 작가는 마지막에 인상적인 메시지 하나 만을 강렬하게 남긴다. 질척이며 덕지덕지 붙는 듯한 그동안의 전개는 발사를 위한 준비 과정이었던 걸까. 마지막에는 과감할 정도로 나머지 과정을 훌훌 털어낸다. 지구 중력을 이겨내고 우주로 날아가려는 발사체인 양.

지구 대기권과 우주의 경계선을 일컫는 용어 '카르마라인'이 마음에 남는다. 매일 아침 '오늘의 날씨' 카드를 받는 주인공과는 달리 로버트는 '우주의 날씨' 소식을 받아본다며 카르마라인을 언급한다. 서로의 영역이 다르다면서 말이다. 주인공 안이지는 자신에게서 출발한 말들이 로켓처럼 쏘아올려져 카르마라인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것을 덜어내야 하는지 생각한다. 나는 이 부분이 작가 윤고은의 고민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고민했고, 결과는 적어도 나라는 독자에게는 성공적이었다.

 

지구 대기는 위로 올라갈수록 희박해지므로 우주로 돌입하는 명확한 경계막이 존재하는 건 아니다. 항공 관련 국제기구마다 우주의 시작으로 보는 기준이 다르다. 유럽국제항공우주연맹은 100km, 미국항공우주국은 80km 너머를 우주로 정의한다. 때문에 고도 106km를 다녀온 제프 베이조스는 우주 여행을 한 것으로, 고도 85km까지 다녀온 리처드 브랜슨은 영국인이기에 유럽의 기준에 따라 우주에 다녀온 사실을 인정받지 못한다.

이 책에서 작가가 설정한 카르마라인은 6장부터라고 판단된다. 물론 나만의 기준이다. 6장 이후로 고도를 높이면 드디어 작가가 설정한 우주 공간으로 돌입한다. 거기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올라가는 건 독자의 몫이다.

무엇이 진짜일 수 있는가. 어떤 것을 진짜라고 말할 수 있는가. 미술품 뿐 아니라 문학 작품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주제를 작가는 독자의 우주를 향해 쏘아 올린다. 나머지 이야기들은 로켓이 벗어던진 옷인 양 우수수 물음표 모양으로 떨어진다.

 

멕시코의 미술품 수집가가 143억원의 가치를 지닌 프리다 칼로의 그림을 불태웠다는 뉴스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림을 대체 불가 토큰인 NFT형태로 팔기 위해 칵테일 잔에 그림을 고정하고 불태우는 장면을 유튜브 영상으로 공개했다고 한다. 다만 소실된 작품이 원본인지 모조품인지 논란이 일고 있다는 기사다.

작가의 말에도 역시 원본의 기준을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그녀는 한 권의 책이 원본의 정체성을 가지는 시점을 명확하게 정의한다. 중력을 이겨내고 독자의 마음으로 넘어가 독자의 마음을 흔들 때, 하나뿐인 진짜가 된다고 말한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과도 일맥상통하는 생각이다. '불타는 작품만이 진짜라고. 불타고 있을 때, 그 순간의 화력만이 사람의 영혼을 움직인다고. 그런 의미에서 화염을 피해 밖으로 나온 건 진짜일 수가 없다고.'

불타는 작품은 확실히 미괄식이다. 마지막 문장에서 그동안의 전개는 다만 거들었다는 사실을 한순간에 깨닫게 만드는 작품이다. 블랙홀로 들어갔다 화이트홀로 빠져나온다면 이런 기분이 들까.

 

이정표 없는 공간을 걸어가던 초입, 책을 쉽게 던져버릴 수 없던 이유 중 하나는 작가의 뛰어난 표현력이다. 뭔 내용이 이 따위야! 라며 후지다고 치부하기에는 문장의 표현력이 너무 고퀄리티를 뿜어냈기 때문이다. 내용 파악은 되지 않았건만, 좋았던 표현을 한 가득 메모한다.

'별을 보는 사람들이 잠의 입구로 기울고 해를 보는 사람들이 잠의 출구를 찾기 전, 디지털 시계의 숫자들이 한순간 증발해 버린다면 이 바늘 달린 시계들은 그대로 남아 숨이 멎은 시간을 보여준다, 얼핏 보기엔 내 마당에서 개가 뛰노는 것이나 개 마당에서 내가 뛰노는 것이나 비슷해, 작가가 사랑하는 작품을 로버트가 선택하는 게 아니라 로버트가 선택한 작품을 작가가 사랑하게 되는 구조, 그의 그림자가 돌돌 말아두었던 우산을 펼치듯이 커지고 나는 우산에서 톡톡 털어낸 물방울처럼 작고 하찮게 쪼그라든다, 어떤 사람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를 고치면서 매일을 살아간다' 는 문장들에서는 대조적인 표현이 두드러진다.

 

기발한 발상에 감탄을 한 부분도 많다. 주인공이 움직이는 경로가 어떤 이동 수단을 사용하든 동그랗고 파란 점으로 요약된다든지, 두 다리가 한 장의 포스트잇처럼 나풀거린다든지, 산책할 개를 고르는 것조차 귀찮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오늘의 개' 서비스가 인스턴트 반려 욕구를 극단적으로 보여준다든지.

작가의 말에 나오는 '우리도 책처럼 저마다 원본인데' 라는 문장 앞에서는 보는 순간 찡해진다. 한동안 그 문장이 심장 곁을 맴돈다. 그래, 나의 원본은 바로 나인데 말이지. 예술품으로 말하면 진품인데도 종종 휘말리고 흔들리면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잊고 살지 않았던가.

주인공의 상황에 몰입하며 작가라는 직업에 올인하기에는 생계를 유지하기 힘든 현실을 절감한다. 정여울이 해석에서 언급한 것처럼, 작가로서 어떤 작품을 창작해야 하는 건지, 창작자와 관객은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는 모든 창작자들이 고민하는 문제이리라.

 

똑같은 계단을 올라가면서도 저마다 다른 생각을 한다. 물리학자는 계단의 높이와 몸무게를 이용해서 한 일의 양을 계산한다. 화가는 계단에 비치는 빛과 그림자를 인지하고 입체적인 굴곡으로 표현한다. 음악가는 계단을 밟는 경쾌한 발소리를 듣고 통통 튀는 리듬을 음에 담는다. 추리 소설 작가는 계단 끝에서 이제 곧 발생할 미스터리 사건을 상상할 지도 모른다. 수많은 이들이 자신이 몸 담고 있는 분야의 관점에서 주변 상황을 수용하고 해석한다. 같은 공간을 살면서도 다른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이유는 관점의 차이 때문이리라.

"사람이 어떻게 보고 싶은 거만 보니?" 주변인의 말에, "굳이 취향이 아닌 걸 볼 필요가 있나?" 당당하게 답해왔다. 현실도 충분히 복잡하므로 선택할 수 있는 문화 생활 만큼은 좋아하는 요소들을 누리고 싶어서이다. 이런 생각을 책에서 만큼은 예외로 적용해야 할 듯하다. 고정 관념의 중력에서 벗어나 카르마라인을 넘어서면, 거기, 상상도 하지 못했던 새로운 우주를 보게 될 테니까. 다른 세상이 궁금하다면, 다른 세상을 살고 싶다면.

 

p87, 3째줄: 있냐느고 있느냐고

p260, 중간: 배변욕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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