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은 원샷, 매일이 맑음 - 시각장애인 유튜버 원샷한솔의 유쾌한 반전 라이프
김한솔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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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나 어둠을 덜어내는 방법이 있다. 글이나 그림 혹은 음악 등 예술로 표현하는 거다. 대상을 꺼내어 눈앞에 놓는다는 건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일이다. 너무 가까이에 있어 보이지 않던 빛이 거리 사이로 스민다. 계속 빛을 쪼이면 어느 순간 발화점에 도달하여 사그라들지도 모를 일이다.

타인의 이야기가 위로로 다가오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나의 어둠과 비슷한 색채를 발견하면 물끄러미 시선이 간다. 응시하다 보면 내 심장을 꺼내어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조금의 거리두기만 이루어져도 그 틈으로 살랑거리는 바람이 스며든다. 마음을 다독인다.

슬픔은 원샷, 매일이 맑음은 시각장애인 유튜버 원샷한솔의 유쾌한 반전 라이프 에세이다. 후천적인 시각장애인이 된 이야기, 빛을 잃어 달라진 세상에서 새로운 빛을 품을 때까지의 여정이 김한솔만의 빛깔로 담긴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본 사람이다. 너무 유쾌하고 밝은 모습이 작은 충격으로 다가온다. 결국 그의 채널을 구독한 나의 눈앞에 이 책이 있다. 띠지에 보이는 햇살 닮은 웃음이 청량하다. “우리는 분명 좋은 날을 향해 나아가고 있어라는 문장과 겹친다.

 

멀쩡한 눈을 가졌으니 나는 객관적으로 그보다 낫다. 스스로 묻는다. 과연 나은 상황인가. 자신하기 어렵다. 무슨 생각이 그의 심장에 담겨있길래 사진 속에서 저리 그늘 없는 웃음이 배어 나올까. 슬픔을 원샷하기까지, 매일 맑은 날을 만들기까지 작가가 건너온 시간의 색채가 궁금해진다.

슬픔에 빠져 있던 시절엔 / 누구라도 내게 / 말을 걸어주길 기다렸다. // 누군가 나의 슬픔을 먼저 / 알아봐준다면, // 누가 그 문을 살짝만 열어준다면 / 반갑게 나가서 이야기할 텐데. // 그런 내게 어느 날 문득 말을 걸어온 건 / 어둠. // 긴긴 어둠의 / 터널을 지나 // 빛으로 한 걸음, / 한 걸음 걸어 나오며 / 나는 알았다. // 그 시간이 / 내게 가르쳐준 것들이 / 무엇인지, // 우리에게 주어진 / 당연하지 않은 선물이 얼마나 많은지. // 이 책은 / 그 긴 이야기의 시작이다. // 이젠 내 삶에 / 어떤 일이 닥쳐도 좋다. //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 / 두렵기보다 오히려 기대된다. // 또 어떤 나쁜 일이 일어난다 해도 / 엔딩은 내가 바꿀 거니까

군더더기 없는 한 편의 시를 보는 듯하다. 뭉클한 마음이 정갈해진다. 적절한 그림과 함께 지나니 거대하고 서늘한 숲속으로 들어온 듯하다. 벽을 숨 쉬는 나무로 만드는 사람이구나.

 

그의 문장을 빈 종이에 수시로 옮겨 적는다. 눈으로 문장을 좇으며 나에게 말을 건네듯 마음속으로 천천히 따라 읽는다. 계속 걸어가는 사람, 삶이 늘 어둡지만은 않으며 늘 밝지만도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임을 느낀다.

시력 검사용 판에서 가장 큰 글자도 안 보이던 시절이 떠오른다. 30대의 라식 수술로 이후 10여 년은 선명한 세상에서 지낸다. 갱년기를 건너는 요즘 근시 증상이 급격하게 찾아와 진행 중이다. 흐릿하고 갑갑해지는 시야처럼 마음도 덩달아 흐릿해지던 차이다.

여전히 가진 게 많다는 사람, 남은 감각이 네 개나 있다는 사람이다. 그는 목소리와 향기와 발소리 등 가능한 한 모든 감각을 동원해 상대방을 파악한다. 더는 가지지 않은 것에 집중하지 않는다. 그의 말에 나의 삶을 반성한다.

이제껏 나는 어떤 감각으로 타인을 파악해왔던가. 눈만 뜨고 있으면 빛이 알아서 들어오니 너무도 쉽게 한 가지 감각에만 의존하지 않았던가. 당연하듯 보이는 장면을 마땅한 권리라도 되는 것처럼 누리고 얼마나 감사함을 품어야 하는지 모른 채 지나온 삶이 떠오른다.

 

하고 싶은 일을 계속 찾아가는 열정을 본다. 덩달아 마음이 들썩여 하고 싶은 일을 찾아보고 싶어진다. 하고 싶은 게 많았던 때가 언제더라. 시간은 흐르고 스스로 선택의 폭을 점점 좁히면서 내가 만든 테두리 안에서만 서성이며 살아온 건 아닐까.

장애는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는 사람이다. 갑자기 변화된 세상에 빨려 들어간 그는 이유가 아닌 방법을 찾는다. 매일 적응하며 더 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배려가 부족한 세상에 개선이 필요함을 당당하게 외친다. 무관심하게 지나치던 거리의 점자 블록이 새삼 눈에 들어온다.

점자 수업 선생님이 된 이야기를 읽다 책장을 넘기자 뜬금없이 밤하늘에 벚꽃잎인 양 흩날리는 별 사진이 등장한다. 별들이 점자처럼 보인다. 희망처럼 빛나는 별을 보다 점자를 처음 만든 이가 궁금해진다. 이름 모를 그는 자신이 만든 점자가 장애인의 눈이 되어 별처럼 반짝이기를 바랐으리라.

겉표지 왼쪽에 세로로 나열된 각기 다른 점들을 왼쪽 검지로 느리게 훑는다. 무슨 글자인지 읽고 싶다. 언어 감각도 없을뿐더러 외국어라면 도무지 외워지지 않는 학습 부진 학생의 퀄리티를 보유했음에도 불구하고 불현듯 점자를 배우고 싶다.

 

감각 기관은 세상을 받아들이는 입구이다. 우리에게는 그 입구가 다섯 군데나 있음을 언제부터 잊고 살아왔을까. 세상과 타인을 인지하는 방법이 이리도 다양한 것을. 하나의 입구만이 막힌 그는 나머지 네 개의 문을 열어 환한 세상을 받아들인다. 삶에 지쳐가는 요즘 유튜브에서 그의 영상을 종종 찾아본다. 마음에 스며든 어둠을 지우개인 듯 지워나간다.

인생에서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사람과 무얼 하든 함께하고 싶어 하는 그는 계속 사람들에게 다가간다. 무심하게 휘두르는 섬세한 칼날에 이제는 상처받지 않을 만큼 단단해진 듯하다. 책 중간중간에 꾹꾹 눌러쓴 한솔의 글씨처럼 삶을 향해 꾹꾹 내딛어왔을 발걸음에 박수를 보낸다. 미래를 선물로 받아들이는 긍정적인 태도에 덩달아 따스한 위로를 받는다.

마지막 사진이 잔상으로 남는다. 강아지풀을 향해 오른손을 뻗은 한솔씨가 환히 웃고 있다. 손으로는 털의 까슬까슬한 감촉을 느끼고, 코로는 초록의 냄새를 맡으며, 피부로는 부드러운 햇살을 느끼고, 귀로는 살랑살랑 바람 소리를 들었을 그는 네 가지 감각으로 풍성한 세상을 보고 있었으리라. 빛이 없는 세상에서 스스로 빛을 보는 방법을 찾은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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