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황보름 지음 / 클레이하우스 / 2022년 1월
평점 :
품절


종이 냄새는 나무 냄새를 닮아서 좋다. e북보다는 만질 수 있는 종이책을 좋아하는 이유다. 닿을 수 없는 우주인 듯 까마득한 디지털 말고 손끝으로 느껴지는 나무의 감촉을 좋아한다. 편안하게 책을 둘러볼 수 있는 서점이라는 공간이 이래서 좋다. 서점에서 책과 책 사이를 거닐면 숲에 들어와 있는 듯하다. 편안하다. 서점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하나둘씩 사라지더니 이제는 동네에 하나 찾아보기 힘들다.

처음부터 완성된 건축물로 둘러싸인 공간은 없다. 기초공사를 하고 기둥을 세우고 자재와 자재를 연결하는 과정이 반복되어야 비로소 물리적인 공간이 만들어진다. 건축자재가 만드는 공간이 물리적이라면, 공간이 담고 있는 정서는 화학적이다. ‘몸이 긍정하는 공간, 나 자신으로 존재하는 공간,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드는 공간’. 내게 이런 공간이 있던가. 황보름 작가는 이런 공간을 소설에 담는다. 상상만으로도 숨이 탁 트인다.

공간의 정체성은 물리적인 요소와 화학적인 요소와의 시너지로 결정되는 듯하다. 드나드는 사람들 사이의 케미가 조화로운 공간은 따뜻하면서도 향긋하다. 책에 소개된 킨(Keane)의 앨범 <호프스 앤드 피어스>를 찾아 들어본다. 산책하듯 책 속을 걸어간다. 나무 냄새가 나는 공간으로 둘러싸인 상상을 한다. 첫 장을 넘겼을 뿐인데 마음이 느른해진다. 시선도 마음도 모든 감각이 이완된다.

 

소설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는 작가가 꿈꾸는 화학적 공간에 관한 이야기이다. 공간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그린 책이다. 서점을 매개로 등장인물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개개인의 삶에 담긴 마음의 공간이 변화하면서 그들 사이의 관계로 채워지는 공간을 완성한다.

일에 지친 주인공 영주가 하던 일을 그만두고 휴남동 서점을 만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무언가에 지친 사람들이다. 사람에 지치고, 관계에 지치고, 사회에 지치고, 삶에 지쳐있다. 이들은 말없이 기다려주고 지켜봐 주면서 마주 선 존재 그대로를 긍정해준다. 작가는 이들 사이의 대화와 심리변화를 통해 일과 글과 삶의 본질에 접근한다.

좋은 책에 대한 소설 속 정의가 마음에 남는다. ‘삶을 이해한 작가가 쓴 책, 작가의 깊은 이해가 독자의 마음을 건드린다면, 그 건드림이 독자가 삶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면’ 좋은 책이라고. 작가가 엄청난 내공으로 삶을 이해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어느 누가 삶의 모든 면모를 이해하겠는가. 100년 가까이 오랜 시간을 걸어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흘러가는 광대한 우주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이 책은 좋은 책이라고 말하려 한다. 적어도 글쓰기와 일하기와 인간관계에 대하여 깊이 고민하여 애틋하기까지 한 작가의 마음이 묻어나오기 때문이다. 그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되어 나의 심장을 뛰게 하였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을 때면 힘 하나 들이지 않고 다른 세계로 여행을 온 것 같아 마냥 신이 난다는, 자신만의 정서에서 벗어나 타인의 정서에 다가가게 해줘서 소설이 좋다는 주인공을 보며, 소설의 매력을 생각한다. 예전의 나는 소설이란 장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현실감이 없어서, 잡을 수 없는 허상을 향해 시선을 준다는 점에서 거부감이 있었다.

소설은 허구다. 한데 소설이 그 어떤 다큐멘터리보다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때를 종종 만났다. 소설 속 이야기가 다가와 내 삶의 변화가 이루어지는 경우이다. 그 순간 종이에 새겨져 있던 평면적인 문장은 생명력을 얻는다. 꿈틀거리는 현실이 되어 나를 통해 살아난다. 소설을 현실로 구현하는 건 이런 면에서 독자에게 달려있는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관점이 서서히 달라졌다.

이야기 속 이야기.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처럼 책 안에 담긴 책들에 대한 소개가 자연스레 소설 속 등장인물의 서사와 연결되어서 좋았다. 소설과 책 소개.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은 기분이다. 점점 이야기가 좋아진다. 결국 세상은 이야기로 가득한 게 아닐까. 나의 이야기이거나 당신의 이야기이거나 혹은 나와 당신의 사이에 있는 이야기이거나.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는 관심이 없다. 아이러니한 건 그러면서도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좋아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이야기의 색채가 자신과 얼마나 닮아있는가에 따라 저마다 공명하는 걸까.

 

거울 보듯 나를 자꾸 들여다보게 하는 책이다. 나의 일과 나의 글, 주변인들과의 관계, 현재와 미래를 자꾸 들여다보게 되었다. 즐겨보던 프로그램이 끝나면 마음이 리셋되는 것 같다는 주인공의 생각에서 내가 드라마를 좋아하는 이유를 발견한다. 계속 삶을 리셋하고 싶은 욕구가 표출된 걸까.

스펙을 쌓는 과정을 단추에 비유한 내용에 마음이 아프다. 단추는 있는데 끼울 구멍이 없다는 말에 깊은 공감이 가 고개를 끄덕인다. 포기를 한 것이 아니라 그 길을 벗어나겠다는 선택을 한 것 뿐이라는 말이 멋지다. 무기력이 느껴지지 않아서, 주체적인 삶을 향한 굳은 심지가 보여서이다.

통제 가능한 시간 안에서만 과거, 현재, 미래를 따질 것, 지금 이 순간에 완전히 존재할 것, 누군가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사는 삶보다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사는 게 더 맞다는 내용에서 힘을 얻는다. 짐이 무거우면 잠시 내려놓거나 덜어내면 된다. 감당할 만큼의 짐만 들고 걸어가면 되는 거다. 감당하지 못할 짐을 아등바등 움켜쥐고 있는 건 욕심이 아닐까.

희망을 얘기하는 작가의 시선이 좋다. 단춧구멍이 없는 옷에 대한 해답을 이렇게 제시할 줄 몰랐다. ‘옷을 바꿔 입었지. 그런데 그 옷에는 구멍이 먼저 뚫려 있더라. 구멍에 맞게 단추를 만들었더니 잘 꿰졌어.’ 순간 코끝이 찡했다. 모두가 같은 옷을 입거나 똑같은 단추를 지니고 있을 필요는 없다. 나에게 이쁜 단추를 나만의 스타일로 달고 다니면 그만이다.

 

마음이 가까워지는 과정을 이리도 담백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야하지 않으면서 설레는 느낌이 뭉클하다. 두 주인공 사이에 흐르는 공기가 부드럽게 다가온다. 풍수지리에 의하면 무의식은 본능적으로 내게 좋은 기와 안 좋은 기를 구별한다고 한다. 간혹 까닭 모를 느낌이 오가는 걸 보면 맞을 때도 있는 듯하다.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을 만나면 둘 사이에는 바람이 흐른다. 마음의 결이 일치하면 투명한 흐름이 만들어져 기분 좋게 출렁인다. 그 순간 두 사람의 삶에는 마법이 걸린다. 넘기 어렵던 산이 후 불면 날아가는 먼지처럼 순식간에 쪼그라든다. 향긋한 비눗방울 안에 들어간 듯 둥둥 마음이 가벼워진다.

책 읽는 것 같아요. 지금 이 시간이요. 우리가 책 속을 걷는 거 같아요.” 출장 후 잠시 들른 초록의 산책길에서 함께 걷던 동료가 봄 햇살을 닮은 표정으로 말한다. 좋은 사람이 주변에 많은 삶이 성공한 삶이라는 책 속의 문장이 고리처럼 연결된다.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일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봐주는 사람, 나의 에너지와 공명을 일으켜 삶의 불꽃을 활기차게 되살려주는 사람,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도록 시간과 공간을 따스하게 데워주는 사람. 좋은 사람으로 둘러싸인 공간은 상상만 해도 행복감을 준다. 열심히 살고 싶다. 그런 사람을 만나기 위해, 스스로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집 안에 있는 물건의 70%가 불필요한 물건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요즘 나는 정리 삼매경에 빠져있다. 아름다운 쓰레기를 조금씩 정리하는 중이다. 지금은 쓰지 않지만, 내일도 쓰지 않겠지만, 언젠가는 쓸 것 같아 자리를 차지하던 물건이 의외로 많다. 지금 쓰지 않고 내일도 쓰지 않을 거면, 그 언젠가도 쓰지 않으리라는 걸 깨닫는다.

잘 산다는 건 잘 정리하면서 사는 거라는 걸. 두려워서, 눈치 보여서, 후회할까 봐 정리하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가 얼마나 많아.’ 소설 속 대화를 떠올리며 물건을 정리한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 속성이 있는 듯하다. 사람이 물건은 아니지만, 전화번호 주소록을 정리하면서 비슷한 속성을 본다.

오늘 연락하지 않겠지만, 언젠가는 연락할 것 같아 남겨두었던 사람들의 전화번호를 삭제했다. 오늘 연락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내일은 연락하고 싶을까. 아마도 나의 삶은 전화번호를 삭제하기 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으리라. 한결 가뿐해진다.

가족과 함께 할 때 불행하다면, 한 번 가족이라고 해서 계속 가족일 필요는 없다는 문장이 후련하다. 삐걱거리는 가족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의무감과 사회적인 시선에 묶여 스트레스를 받던 지인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러므로 지금 할 일은 오늘 연락하고 싶은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것,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사람을 무심코 흘려보내지 않는 것.

 

해를 바라보며 퇴근하는 것이 소원이던 나날이 있었다. 주섬주섬 퇴근 후까지 일이 이어지던 시절이다. 꾸역꾸역 모여들던 일에 질식해버릴 듯했다. 일에 깔려 소진되는 듯하여 종종 절망감을 느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일을 그리 열심히 했던 걸까.

나만 힘들면 된다는 생각이 잘못이었다. ‘일하는 재미는 적당한 일의 양에 달려있다는 것, 일이 사람을 소진시키면 안된다는 것, 남을 위해 일하는 순간에도 나 자신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 ‘일은 밥 같은 거였어요. 매일 먹는 밥. 이제 소박한 밥을 정성스레 먹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나를 위해서요.’ 누구보다 힘들면 안 되는 대상의 1순위, 의미 있는 일의 기준점은 나여야만 했다.

퇴근 후의 시간으로 하루의 무게중심을 바꾼 지 얼마 되지 않는다. 나의 낮은 밤을 위해 존재한다. 집에까지 일을 가져오고 일이 남으면 잠이 오지 않았건만. 요즘은 퇴근 후에는 학교 일을 내려놓으려고 노력한다. 처음에는 어색하더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나만의 시간이 좋아서,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좋아서 낮의 시간은 견딜 만한 것이 되었다.

만조는 하루 중에서 해수면이 가장 높아지는 때이다. 나의 만조는 퇴근 후 커피숍에 앉아있는 시간이다. 하루 중 이 시간만 확보하면 그런대로 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라는 문장에 맞장구를 친다. 온전히 나 자신으로 존재하는 시간이라는 말에도 공감하며.

 

자주 가는 커피숍의 아르바이트생으로부터 쪽지와 두부 과자 선물을 받은 적이 있다. 나의 모습을 보고 많은 걸 배웠다고, 나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멋있으시다고. 그저 나를 위한 시간을 보냈을 뿐인데, 퇴근 후 이른 저녁을 먹고 나와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고 시를 쓰고 교재 연구를 했을 뿐인데.

나의 행동과 일상이 누군가에게 바라볼 수 있는 무언가를 줄 수도 있다니 기분이 묘했다. 비언어의 효과는 언어보다 영향이 크다는 생각이 든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정직한 파도로 직진해선 바라보는 사람의 심장에 닿는 듯하다.

어떤 대상에 관심을 기울이다 보면 결국은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게 된다는 문장에 공감한다. 나에게 쪽지를 건네었던 학생도 결국 나의 모습을 통해 스스로 삶을 들여다본 셈이 아닌가. 서로 다른 종교라도 최상의 경지에서는 하나로 이어지는 것처럼, 관심을 기울이는 대상에 대해서도 비슷한 속성이 적용되나. 계속 대상을 향해 걸어가다 마주치게 되는 사람은 자기 자신, 한 사람이니까.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음악을 하든, 예술을 하는 궁극적인 목적도 나를 바라보기 위함이 아닐까.

책 속에 나오는 꽤 많은 문장을 따라 적었다. 등장인물을 통해 작가가 독자에게 하는 말을 그냥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옮겨 적은 글씨를 바라보며 다시 나에게 말을 걸었다. 책은 기억이 아니라 몸에 남는다던가. 나의 몸 어딘가에 남아있을 문장이 마음의 외투가 된 듯 든든하다.

 

문장은 글로 만든 화살이다. 다른 이의 심장을 향하는 화살은 정확한 과녁을 가리켰을 때 비로소 시위가 당겨져 날아간다. 그리곤 찌르르 심장을 울린다. 이 책의 많은 문장이 나에게 그러했듯이. 내 생각과 같은 문장을 여러 번 마주쳤을 때 뜻이 맞는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웠다.

작가님과 작가님의 글은 얼마나 닮았나요?’ 문장을 보는 순간 찔끔한다. 나의 글은 얼마나 나와 싱크로율을 보이는가. ‘작가의 목소리라는 여섯 글자도 며칠 동안 마음 언저리를 맴돈다. 좋은 문장이 목소리를 분명하게 드러내 준다는 문장에 공감한다. 나의 글에는 나의 목소리가 담겼는가. 다른 이의 목소리를 따라 하는 재미없는 앵무새가 되는 순간은 없는가. 매 순간 경계하며 문장을 쓰리라 다시금 마음을 다진다.

주인공 영주는 유럽의 독립서점을 둘러보고 와서 책방의 정체성을 정립한다. 모든 책방이 개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 개성은 책방을 운영하는 주인에게서 나온다는 점, 개성을 만드는 데 필요한 건 용기라는 점, 주인의 용기가 손님에게 가닿기 위해 필요한 건 진심이라는 점.

글에도 적용해본다. 글에도 자신만의 색채가 필요하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색채를 만드는 건 진심을 담은 올곧은 용기이리라. 이런 문장을 만들고 싶다. 나만이 쓸 수 있는 창조적인 글을 이 세상에 꺼내 보이고 싶다. 나의 문장을 주도적으로 끌고 나가는 모습을 상상하니 설렌다.

 

대형 유명 출판사에서 출간된 책이면 서툰 문장이어도 실제보다 괜찮은 책으로 보이는 경우가 있다. 이 책은 정반대에 속한다. 발행인과 편집자가 동일인이다. 독립서점인 휴남동 서점처럼 독립출판사 느낌이다. 추천 글도 없고 이 출판사에서 출간한 다른 책 광고도 없다. 이런 유형의 책이 좋다. 겉표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온전하게 작가의 문장으로만 채워진 책 말이다.

읽고 싶은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에 살짝 소름이 돋는다. 보고 싶은 문장들이 눈앞에 마술 글씨처럼 나타나서 이리도 공감이 갔던가. 나도 내가 읽고 싶은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출발선에서 대기하는 달리기 선수처럼 가슴이 뛰었다.

작가라는 직업에 대한 물음에 결론을 내지 못했던 답을 발견한다. 진심을 담아 쓴 글이 누군가의 심장을 울린다면 그게 바로 작가라는 것을. ‘솔직하고 정성스럽게’. 제대로 잘 쓴 글을 정의하는 황보름 작가를 보며 글을 쓰는 마음을 정돈한다.

산들바람 부는 대청마루에 앉아 담백하고도 정성스레 차린 밥상을 받은 기분이다. 상추, 풋고추, 된장찌개, 쌈장, 오이와 밥공기에 묻은 밥풀까지 긁어먹은 다음 누룽지에 숭늉까지 마신 듯 개운하다. 작가가 만든 공간을 지나오니 멋진 화살을 만들고 싶어진다. 나만의 문장으로 만든 화살을 들고 나 자신으로 존재하는 공간을 둘러보는 상상을 한다. 홀가분하면서 뭉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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