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까기


늦은 밤 단칸방에 달을 깎는 어머니

포대 자루 안에는 알알이 가을 풍년

손 안에 말간 달덩이 주렁주렁 열리네

 

까칠한 껍질 닮아 갈라지는 손끝 따라

갈색 옷 훌훌 벗어 매끈한 달 뜨는데

땀방울 흘러내려도 겨울인양 손이 트니

 

휘어진 허리만큼 둥근 달이 쌓일수록

입 벌리는 아기 제비 눈동자는 빛나는데

달 하나 건네지 못해 저린 칼끝 아리네


*******


가족사진


빙하인 듯 흐르던 연탄재 밟고 가면

골목 끝 여섯 식구 복닥복닥 사진관

그믐달 몸을 부비며 밤의 문을 닫았지

 

걸레 꽁꽁 방바닥 뜨끈뜨끈 아랫목에

웃음소리 모락모락 옹기종기 시린 발끝

겨울밤 한 이불 위엔 가족사진 쏟아져

 

스무 계절 넘어와 사진관은 닫혔지만

온기 품은 사진들은 선명하게 떠올라

앨범을 들출 때마다 꽃잎인 듯 날리네



*2021.10.  I 시조공모전, 우수상(글제: 가을,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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