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까기
늦은 밤 단칸방에 달을 깎는 어머니
포대 자루 안에는 알알이 가을 풍년
손 안에 말간 달덩이 주렁주렁 열리네
까칠한 껍질 닮아 갈라지는 손끝 따라
갈색 옷 훌훌 벗어 매끈한 달 뜨는데
땀방울 흘러내려도 겨울인양 손이 트니
휘어진 허리만큼 둥근 달이 쌓일수록
입 벌리는 아기 제비 눈동자는 빛나는데
달 하나 건네지 못해 저린 칼끝 아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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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사진
빙하인 듯 흐르던 연탄재 밟고 가면
골목 끝 여섯 식구 복닥복닥 사진관
그믐달 몸을 부비며 밤의 문을 닫았지
걸레 꽁꽁 방바닥 뜨끈뜨끈 아랫목에
웃음소리 모락모락 옹기종기 시린 발끝
겨울밤 한 이불 위엔 가족사진 쏟아져
스무 계절 넘어와 사진관은 닫혔지만
온기 품은 사진들은 선명하게 떠올라
앨범을 들출 때마다 꽃잎인 듯 날리네
*2021.10. I 시조공모전, 우수상(글제: 가을, 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