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를 사서 친정에 가니
주섬주섬 분주해진 손길로
인스턴트 볶음밥을 들려주신다
요즘 밥하기 싫으면 이거 먹는다
한번 먹어봐라 너무 편하다
한 장씩 재운 향긋한 파래김을
작은 조개 닮은 새하얀 송편을
코 틀어막던 누런 메줏덩이를
무지개를 품은 고소한 김밥을
추억의 상자에 담아주신 당신
인스턴트의 시간처럼 휘리릭
여든 너머도 후다닥 흘러갈까
돌아오는 차 안에서 느릿느릿
가슴 속 상자를 꺼내어 보다
포도알처럼 톡 물기가 맺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