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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
조지 오웰 지음, 도정일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평점 :
우리는 종종 잊고 산다. 나를 둘러싼 많은 것들이 처음부터 존재해온 것이 아님을. 세상에 당연한 것이 있을까. 당연한 듯 마시는 공기도 당연히 내리쬐는 햇살도 초록을 흩뿌리며 서 있는 저 나무도 처음부터 당연한 존재는 아니었을 터이다. 까마득한 시공을 거슬러 올라가면 분명 우연처럼 일어난 시작이 있었으리라.
유형의 것뿐 아니라 무형의 것도 마찬가지이다. 문화나 정치, 경제, 사회 체제도 말이다. 정치는 먼 나라의 일이었다. 국가나 사회는 처음부터 나를 둘러싼 테두리였다. 그 당연함이 이 책을 읽으면서 무너졌다. 이 글은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다 여기며 살아온 한 사람의 짧은 반성문이자 역사와 정치에 무지몽매했던 평범한 인간의 부끄러운 고백이다.
작가 조지 오웰의 대표작은 예전부터 툭 치면 입에서 술술 흘러나왔다. 『1984』와 『동물농장』이 책장에 꽂힌 건 한참 전의 일이다. 자리만 잡았을 뿐 선뜻 손이 가지는 않았지만. 고전을 읽어야겠어. 더워지기 시작하던 몇 달 전, 지적 허영을 채우려는 마음으로 꺼내 들기는 했다. 오~ 배우형일세. 표지에 나온 작가의 얼굴만 구경하다 웽웽거리는 모기 한 마리 때려잡고 책꽂이로 컴백했다.
왜 이제야 만났을까. 『동물농장』이 이런 내용이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원제도 ‘Animal Farm’이고 두께로 짐작했을 때 그저 동물들에 얽힌 에피소드 정도려니 했다. 뭐, 틀린 말은 아니다. 동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이에 얽힌 소설이니까. 하지만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고 나면 오소소 소름이 돋는다. 아니! 이렇게 깊은 뜻이!
처음 몇 장은 나의 짐작대로 이야기가 전개되었다. 동물들이 전투를 하고, 풍차를 건설하고, 일곱 계명을 발표했다. 판타지스러운 동화 정도인가. 돼지를 시작으로 말, 개, 염소, 고양이, 당나귀, 까마귀, 양, 닭, 오리 등 소나기처럼 후두둑 쏟아지는 동물들에 이름과 캐릭터가 부여되었다. 몇 페이지 읽다 되돌아갔다. 빈 종이를 펼쳐놓고 동물의 종류-이름-캐릭터를 짝지어 메모하면서 읽어내려갔다.
부제도 없고 1번에서 10번까지 번호만 붙은 채 비교적 빽빽하게 이어진 내용에 이토록 몰입하게 될 줄이야! 동화 속 상황에 이렇게 답답하고 화가 치밀 일인가. 이 소설이 어린이용 동화가 아님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치밀한 내러티브를 지닌 저격용 이야기였다. 소설의 배경을 모르는 사람이 읽어도 한 국가의 체제를 겨냥하고 이에 대하여 깊이 사유케 하는 날카로움이 담긴 책이었다.
인간이 경영하는 농장에서 노예처럼 시달리던 동물들이 반란을 일으킨다. 인간을 몰아내는 데 성공한 동물들은 수퇘지를 필두로 자신들만의 <동물농장>을 만든다. 처음에는 유토피아인 듯 이상적인 사회가 유지되지만 머지않아 그들 사이에는 지배와 피지배로 분리된 계층이 형성된다. 나중에는 반란 전과 다를 바 없는, 도리어 동족으로부터 대놓고 사기를 당하듯 상황이 악화된다. 돼지들은 반대 세력을 권모술수로 차례로 제거하고 지배 계급으로 부상한다. 이들과 사람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음을 풍자하는 마지막 장면이 압권이다. 독자에게 물음표를 던지는 깔끔한 결말이다. 이런 체제,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 라고.
작품 해설을 보고 스탈린 체제를 희화화한 작품이라는 사실에 전율이 일었다. 정치 상식이 없어도 체제가 돌아가는 전 과정을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점차 변질되어버리는 순수한 의도, 지도자의 자질, 알지 못함으로 이용당할 수밖에 없는 대중들, 다수임에도 불구하고 답답하리만큼 순응하게 되는 체제의 묘한 테두리, 지배와 피지배의 연결고리로 작용하는 존재의 간사함, 체제와 관계없이 묵묵히 살다 희생되는 존재들을 생각했다.
비판받는 체제가 만들어지는 건 나쁜 지도자 한 사람의 영향만은 아님을 깨닫는다.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바닷물에 잠긴 빙하처럼 거대한 배경으로 자리하는 것이다. 그들 모두는 100% 선함과 악함으로 구분할 수 없는 애매한 지점에 놓인다. 동물이 주인공인 이 소설은 어느 순간 동물의 탈을 쓴 인간의 일로 인식된다. ‘스탈린 체제’라는 다섯 글자를 초고속카메라로 촬영하여 한 올 한 올 살랑거리는 털끝까지 관찰하고 난 느낌이다.
저자는 영리한 사람이다. 우화의 형식으로 주제를 표현한 점은 탁월한 선택이다. 체제가 지닌 맹점과 그것이 만들어져가는 처음과 끝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인간을 주인공으로 했더라면 보지 못했을 요소들이다.
한 편의 문학 작품은 당대를 대변하는 목소리로 가치가 매겨진다고 생각한다. 코로나로 둘러싸인 요즘에 포스트 코로나를 말하는 작품이 많은 공감대를 끌어낼 수 있는 것처럼. 어떤 작가가 코로나와 관련된 작품을 썼다면 100년 후의 독자에게도 공감을 끌어낼 수 있을까. 고전으로 이어지느냐 반짝스타로 묻히느냐는 여기에 있다. 특정 사회의 이슈로부터 보편적인 요소를 발견하여 표현하는 능력이 작가의 역량이며 작품의 수명을 결정한다고 본다. 정치와 체제에 기본 상식조차 없는 나에게 시대를 아우르는 공감을 끌어냈다는 건, 조지 오웰의 작품이 75년을 건너와서도 여전히 고전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내용을 아는 사람은 많아도 의외로 읽어본 사람은 적다는 고전 분야. 학창 시절에는 시험공부로 활용되는 의무감으로 꾸역꾸역 머리에 집어넣기 바빴다. 그 맛을 제대로 알지 못한 건 당연한 결과였다. 중년이 되어서야 고전이라 불리는 책을 한두 권씩 펼쳐본다. 경험의 폭이 넓어지고 인생의 산에 조금은 높이 올라가 있는 지금, 예전에 읽었더라면 보지 못했을 것들이 보인다. 천천히 음미하며 나의 삶과 주변을 돌아보는 이 시간이 좋다. 잔잔했던 내 삶에 당연히 여겨왔던 것들이 바람처럼 스며들어와 나를 흔드는 이 느낌이 생소하면서도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