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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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런 소설이 다 있나 싶다가, 분명 한글인데 도무지 의미가 들어오지 않는 글자 배열에 당황하다가, 한 번에 이해가 안 되는 문장들 앞에서 몇 번이나 도돌이표를 찍는 게 나만의 문제인가 소심해지다가, 주춤주춤 생소한 용어들을 일일이 어학 사전에서 찾는 시간에는 살짝 화도 나다가, 어느 순간 몰입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던 책. 드라마틱한 독서 과정을 지나온 책이었다.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심사위원들이 선호하는 목소리가 있다. 뻔하지 않은 분위기와 질감으로 뻔하지 않은 울림을 나타내는, 세상에 없던 목소리이다. 소설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철수나 영희도 할 수 있는 이야기라면 굳이 나여야만 하는 이유는 없는 거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의 작가 테드 창은 독보적이었다. ‘이기에 설 수 있는 우주 좌표계에서 세상과 인간을 바라보며 오로지 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로 과거와 미래를 종횡무진하며 현재에 머무는 나의 머릿속을 헝클어뜨렸다.

 

은 표제작 <>을 포함하여 9편의 단편 소설로 이루어진 소설집이다. 주제도 다르고 등장인물도 다르지만, 각각의 소설들이 가리키는 방향은 묘하게 닮아있다. 옴니버스식 이야기들을 보는 느낌이랄까. 작품들에서 내가 찾은 공통점은 과거, 미래 등의 시간, 그 안에서의 인간의 선택과 기억, 그 선택을 하는 자유의지이다.

선택이란 단어가 많이 등장한다. 선택해야 할 상황도, 그 결과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도 담담하게 서술되어 있다. 작가의 문장을 따라 이야기 속 인물을 좇아가며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무엇이 현실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당신이 무엇을 믿느냐(p95, <우리가 해야 할 일>)’라는 문장은 SF 소설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시사한다. ‘당신이 저를 위해 그것을 선택해주었기 때문이 아니라, 제가 저 스스로 그것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p393, <옴팔로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의 나를 바꾼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한 기억이 있다. 한데 막상 이런 일이 현실의 내게 가능해진다면? 많이 방황할 듯하다. 나는 무엇을 바꾸고 싶을까. 그것을 바꾼다고 현재의 내가 얼마나 달라질까. 수많은 선택지 앞에서 욕심을 부리며 어디에도 선뜻 발을 내딛지 못할 수도 있겠다.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은 타임슬립에 관한 이야기이다. 소설 속 인물들은 우주선을 타고 가는 대신 드라마 <도깨비>에 나오는 문처럼 커다란 원형의 문을 들락거리며 과거와 미래의 자신을 만난다. 특이한 점은 시점이 다른 자아들의 공존이다. 20년 뒤의 나이 든 내가 젊은 나를 만나 대화를 나눈다. 그게 과학적으로 가능한가 가능하지 않은가는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이 소설에서 끌어올려야 하는 것은 자신의 의지로 한 선택의 결과를 직시하고 똑바로 자신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과거와 미래는 같은 것이다. 우리는 그 어느 쪽도 바꿀 수 없고, 단지 더 잘 알 수 있을 뿐이다.(p56)’, ‘그 무엇도 과거를 지울 수는 없습니다. 다만 회개가 있고, 속죄가 있고, 용서가 있습니다. 단지 그뿐이지만, 그것으로 충분합니다.(p58)’

 

8년 전쯤이었나. ‘5천만 년 후의 인간이라는 제목의 일러스트레이션을 인터넷에서 본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거대한 두뇌, 감각기, 생식기를 제외한 나머지 기관은 쇠퇴하여 공상과학영화 <ET> 주인공의 응용 버전처럼 생긴 모양새였다. 자신의 뇌를 해부하여 들여다보는 해부학자, 주기적으로 교체하여 장착하는 허파가 등장하는 <>. 도무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미래 인간의 모습이다.

나는 안이 밖으로 나온 인간이었다.(p73)’ 현미경으로 해부한 자신의 뇌를 들여다보는 디테일한 묘사, 기억의 원천을 탐구하려는 과학자로서의 집념이 묘사된 문장은 현실감이 넘친다. 머릿속으로 그려가면서도 내가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 걸까 자신은 없었지만, 상상력의 극치를 보는 기분에 감탄이 나왔다.

어떻게 생명력과 공기를 접목할 생각을 했을까. ‘공기는 사실상 우리의 사고가 각인되는 바로 그 매체였다.(p75)’,‘생명의 실제 원천은 기압 차이이다.(p78)’ 기압 차이로 바람이 불 듯 숨을 쉴 때 우리의 몸으로 들락거리는 공기 역시 기압 차이로 움직인다. 결국, 숨을 쉬며 생명이 유지되니 생각해보면 맞는 말이다. 내용이 다소 난해하여 작가가 의도한 주제에 얼마나 가까이 접근했을지 자신은 없다. 다만 신기한 점은 <>을 읽고 나서부터 숨 쉬는 패턴을 문득문득 의식하게 되었다는 거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존재일까.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은 진실과 기억에 관한 소설이다. 완벽하게 과거의 기억을 불러오는 검색 툴이 등장하면서 주인공들의 혼란은 시작된다. 진실이라고 믿고 있던 기억 속 이야기가 사실은 진실이 아니었던 거다. ‘한편으로는 사실에 입각한 진실, 다른 편으로는 작가의 감정에 입각한 진실이 존재한다. 이 두 가지의 진실이 일치하는 지점은 그 어떤 외부의 권위에 의해서도 미리 결정될 수 없다.(p299~300)’

명절에 가족들과 모여서 과거에 겪었던 이야기를 하다 보면 간혹 놀랄 때가 있다. 분명 같은 경험이었는데 구성원마다 전혀 다른 이야기로 기억하고 있음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수많은 이야기로 이루어진 존재이다. 기억이란 우리가 살아온 모든 순간들을 공평하게 축적해놓은 결과가 아니라, 우리가 애써 선별한 순간들을 조합해 만들어낸 서사이다.(p301)’ 무의식적으로 과거의 기억이 자신을 중심으로 각색되는 소설 속 장면은 진실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1996년에 출시되어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켰던 다마고치라는 휴대용 디지털 애완동물이 있다. 휴대폰에서도 비슷한 메뉴가 등장하여 화면 속 강아지에게 밥을 주고, 재워주고, 놀아주고 했던 적도 있다.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디지언트라 불리는 미래의 디지털 애완동물에 관한 이야기이다. 숨을 쉬는 진짜 애완동물에서 노인과 같이 놀아주는 로봇 동물의 등장까지는 우리의 현실 버전인데 소설을 읽다 보면 조만간 미래에 일어날 일인 듯 공감 가는 상황이 펼쳐진다.

무언가를 창조한다는 것은 그에 따른 책임을 동반한다. 인공지능 관련 얘기가 오갈 때도 항상 마침표는 윤리적 판단이었다. 생명 복제가 한창 이슈로 떠오를 때도 기술적인 문제와 함께 복제동물의 정체성 문제가 못지않은 존재감으로 드러났듯 과학의 마침표는 윤리 문제로 찍혀야 옳다. 그게 곧 기계와 인간의 차별점이고 인간 존재의 이유가 될 테니까.

그들이 원하는 것은 인간처럼 반응하지만 인간을 대할 때와 같은 책임은 질 필요가 없는 존재이며(p234)’라는 문장에서는 인간의 이기적인 심리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마르코를 존중하고 싶다면 그를 인간처럼 대해야 할까, 아니면 그가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할까?(p241)’ 나는 존재 자체를 그대로 인정하는 후자 쪽에 마음이 간다. 하지만 무엇이 옳은 걸까 판단하기는 어렵다.

 

나와 똑같은 내가 다른 세상에 존재한다면?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은 평행세계에 존재하는 평행자아에 관한 이야기이다. 평행세계에 존재하는 다수의 자아들은 프리즘이라는 장치를 통하여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던 결과로 살아가는 또 다른 자아의 모습을 거울 보듯 바라보며 대화를 나눈다.

소설에서 인상 깊었던 내용이 있다. 히틀러의 집권을 저지하려면 어린 히틀러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그가 수태되기 한 달 전으로 돌아가 산소 분자 하나만 교란시키면 된다고. 그러면 수정되는 생식 세포 자체가 달라질테니 전혀 다른 생명체가 태어날 터이다. 나비 효과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했다. 작은 변화가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선택을 주제로 예전에 나왔던 예능 프로그램도 생각난다. 오른쪽을 선택했을 때 펼쳐질 결과와 왼쪽을 선택했을 때 펼쳐질 결과를 각각 보여주는 방식이다. 힘겨운 일에 부닥칠 때면 가끔 생각했다. 내가 다른 선택을 내렸더라면 나의 삶이 달라졌을까. 소설 속에는 무엇을 선택했든 삶이 별반 달라지지 않는 사람이 등장한다

비슷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판단하려면 그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를 면밀히 관찰하면 된다고. ‘선택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내리는 모든 결정은 당신 성격의 일부가 되고, 당신이라는 사람을 형성하니까요.(p476)’ 나는 어떤 선택을 내리며 살아왔던 걸까.

 

생각지도 않은 이야기와 마주쳤을 때 느껴지는 생경함이 있다. 오늘 산 이불을 덮고 자는 기분이랄까. 피부에 맞닿는 낯선 감촉, 다른 세상의 냄새로 인해 처음 몇 분간은 겉도는 김치찌개를 떠먹는 듯 도무지 적응되지 않는다. 나의 체온과 이불의 온도가 같아질 만큼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내 세상은 이불을 품으며 그 부피만큼 확장이 된다. 도무지 적응될 것 같지 않던 책이 천천히 읽는 시간을 지나오면서 익숙한 온도가 되었나. 그만큼 상상의 폭도 넓어진 기분이다.

과거에 내가 했던 수많은 선택을 돌아보며 나를 중심으로 재배치되던 기억의 이기심을 반성하고 미래에 내가 할 많은 선택을 상상했다. 나무보다는 숲을 보게 만들어준 책이다. 책 속에서 무더기로 방출된 과학 지식의 빅뱅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중요한 건 빠르게 확장되어가는 시간의 흐름에 내 삶을 실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 선택을 하는 것이었다. 내 삶은 나의 자유의지가 끊임없이 무언가를 선택하며 만들어낸 결과물이었고 그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은 지식의 책이 아니라 지혜의 책이었다. 

 

 

p106, 밑에서 6째줄: 에니매이터들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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