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하는 시간 - "삶이 힘드냐고 일상이 물었다."
김혜련 지음 / 서울셀렉션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밥 대신 먹는 알약이 있었으면 좋겠어. 한 알만 먹으면 종일 아무 것도 먹지 않아도 되면 얼마나 좋을까. 책속에 언급된 내용을 보며 웃었다. ! 나만 이런 생각을 했던 건 아니었구나.

나만을 위해 정성껏 밥을 지은 적이 있던가. ‘한 끼의 밥이란 제목의 프롤로그에서 스스로를 위해 정성 들여 지은 따뜻한 밥 한 그릇(p9)’이란 문구를 보며 곰곰 생각한다. ‘오예~ 부양가족 없는 보기 드문 기회일세! 내일 아침밥은 안 해도 되겠군! 크크!’ 좋아라했는데 이 문장이 나를 주춤거리게 만들었다. 갑자기 혼자가 된 그날 밤, 다음 날 아침을 고민하게 되었다.

밥을 먹는 것은 과정이었다. 오롯이 밥이 목적이 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내게 있어 밥 먹기는 방전된 배터리를 충전하듯 어쩔 수 없이 플러그를 꽂는 과정이었으니까. 책제목에서부터 거부감을 느낀 건 이런 이유에서였다. ‘밥 하는 시간이라니!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해서 책에 손이 가지 않았다. 한동안 내팽개치다 겨우 첫 장을 펼쳤다.

 

이 책은 일상 속에서 특별함을 찾아가는 과정에 대한 기록이다. 집과 몸과 밥에 대한 작가의 경험담이다. ‘평생 밥을 먹었지만 이 없었고, 평생 몸을 지니고 살았지만 이 없었고, 평생 집에서 살았지만 이 없었다.(p313)’ 개인적인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공감을 일으키며 영혼을 울린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그게 나의 이야기로 들어앉는 신기한 경험을 한다.

처음에는 삐딱한 시선으로 출발한 책을 매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집에 관해 서술된 1장과 2장의 앞부분을 읽을 때까지는 문체까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잔가지가 많았다. 비유와 묘사로 둘러싸인 뛰어난 표현력은 인정할만했지만 내 취향은 역시 헤밍웨이였다. 책을 덮어버리고 싶었다.

이질감은 2장의 중반을 지나 3장에 들어서면서 말끔히 사라졌다. 몸을 돌보고 읽는 시간에 관한 3장의 문장들은 자연스럽게 술술 쏟아졌다. 실컷 운동하고 난 몸에서 땀과 더운 기운이 절로 훅훅 끼얹어지는 것처럼. 체험한 그대로의 이야기들이 생생하게 와 닿았다. 이후의 내용들은 <저자의 말>에 이르기까지 내내 좋았다. 참 괜찮은 책을 읽었다는 개운한 느낌으로 마무리를 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1장과 2장을 읽어보았다. 전체적인 맥락을 알고 접하니 거부감이 사라졌다.

 

친구의 집에 놀러간 적이 있다. 온통 헝클어지고 겹겹이 쌓여있는 물건들. 내내 우울해하던 친구의 마음속에 들어온 듯 씁쓸했다. 그녀를 담고 있는 공간은 그녀를 닮아있었다. ‘집을 청소하는 일이 나를 맑게 하는 일이고, 집의 고요가 나의 고요이며, 집을 아름답게 하는 일이 나를 아름답게 하는 일임을 경험으로 체득한다.(p19)’ 집을 정리하거나 청소를 하는 날이면 속이 후련해진다. 이 문장을 보니 그때의 공간이 떠오른다.

마음대로 컨트롤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 집이 가져다주는 의미를 생각한다. ‘시간은 금이다.’ 란 말도 있지만, 집을 소유하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대가를 생각한다면 공간은 돈이다.’ 란 말도 할 수 있겠다. 세상 속에서 한 두 겹씩 썼던 가면을 훌훌 벗고 꾸미지 않은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는 공간. 집 같은 사람 한 명쯤 내 가까이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 내려놓고 널브러져 있어도 존재 자체로 나를 따뜻하게 지켜볼 수 있는 존재. 상상만 해도 뭉클한 느낌이 스민다.

스스로의 장소를 마련하는 일(p72)’이라는 문장에 꽂힌다. 전후맥락 무시하고 자체의 의미로 다가오는 문장이다. 울프의 자기만의 방이 생각난다. 하루 가운데 나만의 시간과 공간에 온전히 존재하는 순간은 얼마나 될까.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 나만의 장소를 마련하는 일이 시간을 마련하는 일만큼이나 중요함을 깨닫는다.

 

늘 특별한 순간을 꿈꾸어왔던 것 같다. 드라마틱한 사람과의 만남을 꿈꾸고 삶의 어느 순간에 굉장한 사건이 찾아오기를 바랐다. 하지만 오십여 년을 돌아보면 그런 순간은 없었다. 간혹 특별한 의미를 지녔던 대상이 있기는 하였으나 그 시작은 평범했다. 평범함이 점점 특별하게 변화하는 거지 처음부터 반짝이는 특별함은 없었다. 지금까지처럼 평범한 나날들은 앞으로도 죽 이어지리라. ‘밋밋한 행위에서 빛을 느끼지 못한다면 삶에 빛이 어렵다. 삶의 90퍼센트는 그런 밋밋한, 보이지 않는 것들이 지층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p118)’

악기는 오래될수록 깊어지는 음색을 지닌다. 악기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점점 깊어지는 삶의 울림으로 살아가고 싶다. ‘스스로 깊어지는 악기 같은 몸이 되고 싶다.(p121)’는 작가처럼. ‘몸으로 살아낸 만큼 시간은 내 안에 쌓인다.(p267)’라는 문장을 보며 쌓이는 시간을 상상한다. 손가락 사이로 스르르 빠져나가는 모래알 같은 시간 말고 차곡차곡 쌓이는 시간을 간직한 사람이 되고 싶다. 차곡차곡 쌓이는 시간이란 빛나는 일상을 의미하겠지. 백년도 더 된 집을 가꾸어 정성껏 밥을 하며 살아가게 된 사람의 일상을 엿보다보니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의 이미지가 그려졌다.

 

결국 그 다음 날 아침에는 잡곡밥을 해서 먹었다. 책을 읽고 나니 자꾸만 정성껏 밥을 하고 싶어졌다. 밥을 오래 씹고도 싶어졌다. 요즘은 밥과 반찬 하나하나를 정성껏 음미하며 먹는다. ‘쌀 알갱이가 톡 터지며 씹힐 때 입 안 가득 빛이 도는 듯 환한 느낌(p10)’을 느끼고 싶어서 정성껏 씹어 먹는다. 먹는 데 정성을 다하는 것만으로도 내 몸이 소중해지는 듯 울컥해진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 다음에 뭐를 할까 막연한 생각이 찾아올 때가 잦아졌다. 눈도 침침해지고 점점 기력이 쇠해질 텐데 언제까지 글을 쓰며 살 수 있을까 하고. 작가의 이야기를 읽으며 많은 위안을 받았다. ‘몸을 돌보는 과정 자체가 삶의 오롯한 의미가 될 때 삶은 깊은 차원에서 존재에 가까워지겠구나.(p113)’ 무언가를 할 필요가 없을 지도 모른다. 그저 마음 편하게 존재하는 것으로 의미를 지닌다면 얼마나 든든하면서 따뜻한 삶이 될까.

밀가루 반죽이 된 마음을 끌어안은 기분이다. ‘나는 비로소 일상을 즐기고 일상을 통해 삶을 가꾸어가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 따뜻하고 부드럽고 가볍고 유쾌한 몸으로 회복되어가고 있다. 내가 전환한 삶의 핵심에 이 있다.(p116)’ 푸석거리는 가루 같던 마음이 질척이며 겉도는 시간을 지나 몰랑한 느낌의 부드러운 반죽이 된 듯했다. 따뜻하고 부드러워졌다, 익반죽의 덩어리처럼. 가벼워졌다, 그 반죽에서 만들어진 크루아상처럼. 오븐에서 갓 구워 나온 빵을 한 입 베어 문 듯 유쾌해졌다.

 

 

p226, 마지막 줄 : 마침표 없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