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마카롱 에디션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홍성광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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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가 된 기분이었다. 차라투스트라님은 산에서 내려왔다 동굴로 왔다갔다 500여 페이지를 지나오시는 동안 끊임없이 말하셨건만 내 귀에 캔디도 아니고 내 귀에 경 읽기였던가. 그대 앞에서 나는 왜 이토록 작아졌는지. 첫 페이지를 넘기면서 깨달았다. 메타포의 향연이구나. 망했구나. 광활한 뷔페식당에 무모하게 발을 들여놓았구나.

입구에서 갈등했다. 그냥 돌아갈까. 계속 들어가 볼까. 두께에 망설이고, 무려 니체에 망설이고, 무엇보다 초라한 나의 그릇에 망설였다. 간장 종지에 한 솥 끓여낸 곰국을 쏟아 붓는 격 아닌가. 선뜻 표지를 넘기기 어려웠던 건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호흡 크게 하고 첫 장을 펼친 건 부끄럽게도 지적인 허영심 때문이었다. 제목을 들어본 사람은 많아도 정작 끝까지 완독한 사람은 드문 책. 차라투스트라님! 대체 무슨 말씀을 하셨나요?

 

몇 걸음 더 걸어갈 수 있도록 용기를 준 첫 문장은 바다에 관한 것이었다. ‘더럽혀진 강물을 받아들이면서도 오염이 되지 않으려면 바다가 되어야 한다.(p18)’ 가슴이 한껏 넓어지는 듯했다. 문장이 은유하는 의미가 어렴풋이 다가왔다. 신영복 선생님의 바다가 떠올랐다. 강물이 바다를 만나면 바다가 된다는 내용 말이다. 그래, 끝까지 가보자. 일단 나에게 익숙한 요리를 골라먹는 것으로 만족하자. 마음을 울린 문장들을 메모하면서 읽어 내려갔다.

삶과 자신에 대한 고찰이 담긴 문장들이 와 닿았다. 핵심이 되는 한 단어를 말하라면 자기 자신의 주인을 의미하는 위버멘쉬를 꼽고 싶다. 삶의 여정을 동물에 비유한 문장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개념이다. ‘무거운 짐을 지고 총총히 사막으로 들어가는 낙타처럼, 정신은 자신의 사막으로 총총히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쓸쓸하기 짝이 없는 사막에서 두 번째 변화가 일어난다. 이곳에서 정신은 사자가 되고, 자유를 쟁취하여 사막의 주인이 되려고 한다.(p36)’ 사막의 주인을 위버멘쉬라 한다면 나의 삶은 어느 즈음 왔을까. 낙타와 사자의 중간정도일까.

 

적절한 비유들에 소름이 돋았다. ‘가장 높은 것은 가장 깊은 데서 나와 그 높이에 도달한다.(p212)’라는 문장은 지적인 사유의 깊이를 의미한다. 히말라야 산맥을 상상했다. 산맥의 꼭대기에서는 조개 화석이 발견된다. 과거 바다 밑에서 생성된 두터운 퇴적층이 융기하여 만들어진 거대 산맥이기 때문이다. ‘나무가 크게 자라려면 단단한 바위를 뚫고 단단한 뿌리를 내려야 한다!(p236)’라는 문장은 물질세계의 속성으로 정신세계를 설명한다. 가시적인 세계가 모델 역할을 하는 것이다.

양초가 연소하면 물과 이산화탄소가 생성된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물질로 바뀌는 화학 변화이다. ‘창조자가 되어야 하는 자는 언제나 파괴해야 한다.(p83)’라든지, ‘먼저 재가 되지 않고 어떻게 거듭나려고 하는가?(p90)’와 같은 문장들은 화학 변화를 연상케 한다. 원자 자체는 변하지 않지만 원자가 해체되었다 재배열되는 과정이 필요한 것처럼 우리 자신에게도 비슷한 맥락의 파괴가 일어나야 거듭날 수 있다. ‘나는 언제나 자기 자신을 극복해야만 하는 그 무엇이다.(p159)’ 불을 붙이는 도화선처럼 극복을 위해 필요한 건 용기일 터이다. 결국 철학이란 보이는 세계로 보이지 않는 세계를 설명하는 학문이 아닐까.

 

인문고전의 의미를 톺아보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음식들이 차려진 뷔페식당의 풍경을 상상했다. 거대한 공간에 들어서는 수많은 사람들을, 저마다의 그릇에 담긴 서로 다른 음식들의 조합을. 당신과 나는 이토록 다르다. 한 사람마저도 상황에 따라 매번 덜어가는 음식의 종류와 양이 다르다. 평소의 취향만으로 선택하면 결코 새로운 맛을 알기 어렵다. 원숭이 골처럼 도무지 그 맛을 상상할 수 없는 음식을 맛보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삶도, 독서도 이와 같다. 인문고전이란 뷔페식당에서의 새하얀 접시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들고 있지만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그 공통된 삶의 본질이 고유성을 거슬러 몇 백 년 이어지는 인문고전의 힘이 되어 나오는 것이리라.

 

종교적사회적철학적 배경 지식의 내공이 있어야 제대로 소화할 수 있는 책이다. 니힐리즘을 넘어 세계의 본성, 위버멘쉬나 초인, 진리의 본질에 대한 대략적인 냄새는 맡았지만 전체적인 아우트라인을 그리기에는 아직 무리이다. 다른 이들에게 명확히 설명할 자신이 없으니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피아노를 배우기 위해 일단 엄지에서 새끼손가락까지 최대한 찢어본 셈이다. 고통스럽지만 아직 유려한 연주까지는 하지 못하는 초보자처럼.

손가락을 한껏 벌려보았다는 시도 자체로 의의를 찾고 싶다. 어쨌든 이 식당의 출구를 빠져나왔으니. 과장된 어투나 상황에서 종종 이질감이 느껴졌지만 차라투스트라가 이렇게 말했던내용 중 입맛에 맞는 몇몇 문장들을 단편적으로 소화시켰다. 화려한 중화 요리 식당에 가서 짜장면 한 그릇만 먹고 온 셈이다.

매년 이 책을 읽어보려 한다. 무심코 지나쳐왔던 메뉴들을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주고 싶다. 점차 업그레이드되면서 내년에는 탕수육을, 이후에는 반월침강까지 도전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니.

 

500여 페이지를 지나오면서 결론으로 남는 한 문장은 인간이란 결국 자기 자신만을 체험할 뿐이다.(p209~210)’이다. 삶의 의미를 천천히 정리해본다. 안도감이 드는 것은 이미 지나온 삶은 바뀌지 않는다는 점이다. 의미가 달라지는 것은 다만 이에 대한 해석의 차이일 뿐이다. 두렵지만 설레는 것은 다가올 삶은 온전히 내 의지의 몫이라는 점이다.

변한 건 아직 없다. 여전히 나의 삶은 혼란으로 가득하고 미래에는 아마도 무수히 많은 갈등의 고비들이 넘어야할 허들로 놓일 것이다. 그래도, 가보려 한다. 깨뜨려야 변화할 수 있으니. 나의 삶을 나의 것으로 만들 때까지 나만의 걸음을 떼어보려 한다. 차라투스트라가 한 말을 따라와 보니 나는 이렇게 말하게 되었다.

 

 

* 2019. 8.-9. 2019년 I 독후감 대회, 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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