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무해한 사람 (리커버)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6월
평점 :
품절


강아지풀을 천천히 만져본 적이 있다. 디지털카메라를 사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접사를 찍을 무렵이었다. 촘촘히 그어진 연두 빛 결을 반대 방향으로 훑어 내렸을 때 손끝으로 까슬까슬한 느낌이 전해졌다. 마냥 부드러우리라는 예상과 달랐다. 묘하고도 생경한 감촉은 뜬금없는 순간에 종종 생각이 났다. 마음이 따끔따끔해지면서 심장에 눈물방울이 몽글몽글 맺힐 때면 세상을 향해 희미한 웃음을 짓던 나는 강아지풀을 떠올렸다. 부드러움과 까슬까슬함을 품은 채 흔들리는 가뿐함. 그 푸르스름한 먹먹함에 나를 겹쳤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은 아치디이다. 대조되는 상황의 주인공들은 이곳에서 마주쳐 삶에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조각들을 덤덤히 꺼내어놓는다. 이야기에 몰입할수록 책에서 튀어나온 감정들이 가까이 다가와 나를 건드렸다. 따끔거렸다. 미세한 칼날에 베어 아린 듯 중간 중간 걸음을 멈추었다. 소설 속 상황 때문인지 그 속에서 발견한 내 모습 때문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여주인공 하민에게서 학창 시절의 나를 본다. 하지 말라는 일은 하지 않았고 가지 말라는 길은 가지 않았던 나는 대학 다니면서 주말과 휴일이 가장 싫었다. 하기 싫은 일을 해야만 하는 이틀 동안 과외를 두세 탕씩 뛰면서 학비를 충당하고 집에 돈을 보탰다. 의욕이 없는 대상을 가르치는 일은 삐거덕거리는 나사를 돌리는 행위 같다. 아무리 힘을 주고 돌려봐도 헛돌면서 손끝만 아릿하다. 채도의 차이만 있을 뿐 매번 지쳤다. 제대로 이해는 하는지 의심스러운 그들의 나른함이 지겨웠다. 치열하게 살지 않아도 되는 부유함을 한편으로는 부러워하면서 치열한 4년을 보냈다.

 나는 살다라는 동사에 열심히라는 부사가 붙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hard’는 보통 부정적인 느낌으로 쓰이는 말 아닌가. ‘hardworking’이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사는 게 일하는 건 아니니까.(p265)’ 남주인공 랄도가 하민을 바라보며 하는 생각이다. 마지막 부분이 눈에 밟혀 마음에 고인 채 맴돌았다. 사는 게 일하는 건 아니니까, 일하는 건 아니니까. 하루하루를 일하듯 살아오던 나의 모습이 생각났다. 매캐한 공기가 가슴으로 훅 끼얹어졌다.

 

하민과 대조되는 인물인 랄도에게 주변인들은 질문을 던진다. 너 왜 여기 있어?(p240, 259, 260, 261, 289, 290)’  이 책을 통틀어 가장 많이 등장하는 문장이다. 불교에서의 화두처럼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여기라는 낱말은 물리적인 공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너는 왜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어?’ 내지는 삶의 과정에서 이 장소에 네가 있는 이유가 무엇이지?’라는 의미가 짙다.

대마초를 하면서 피폐한 삶을 살았던 랄도는 집밖의 삶을 간절히 원했지만 한 달 가까이 방에서 나가지 않기도 한다. 진심을 말하는 것보다는 뻔뻔하고 게으른 사람이 되는 편이 쉬웠다.(p261)’는 사람. 너 왜 여기 있어?’라는 질문에 대한 그의 답은 나갈 수가 없었으니까. 그러고 싶었는데도 그럴 수가 없었으니까. 그랬으니까(p261)’ 이였다.

첫 번째 과외 집에서 두 번째 과외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종종 생각했다. 나는 왜 여기 있지? 있고 싶지 않은 공간에 있을 수밖에 없던 어쩔 수 없음이 생각났다. 30여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선명한 스냅 사진들이 부레처럼 떠올랐다. 불현듯 코끝이 찡해졌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나는 직장에 들어갔다. 타고난 완벽주의로 인해 어느 정도 능력을 인정받는 편이었다. 못 다한 일은 집으로 싸들고 와서 했다. 1순위는 직장 일이었다. 로봇처럼 일하는 간호사였던 하민의 모습에서 또 나를 보았다. 아치디에 와서 그녀가 기르던 여덟 마리의 말들 중 게으른 녀석과 나이가 제일 많은 녀석을 좋아한다는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일종의 부러움이리라. 게으른 사람이고자해도 천성적으로 그게 잘 안 되는 사람이 있다. 내가 그 부류다. 부지런해서 좋은 것이 아니다. 계속 채찍질 당하는 말처럼 마음 불편하게 달리는 것이다. 나를 돌아볼 시간도 갖지 못한 채 마냥 달리기만 하는, 그래서 너 왜 여기 있어?’라는 물음조차 해보지 못하는.

스스로를 멈출 수 없었다. 멈춰보아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일에 매달려 13여년을 관성으로 달려왔다. 조금씩 속도가 느려진 건 10년 정도 책을 읽고 독서모임에 참여하면서부터였다. 브레이크가 걸린 것은 4년 전 즈음이다. 퇴근 후 나는 커피숍을 다니기 시작했다.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고 시를 지었다. 직장일과 집안일을 숙제처럼 마치고 커피숍으로 향하는 길은 고단한 기쁨이었다. 퇴근하기 위해 출근을 했다. 글을 쓰고 나만의 시간을 가졌다. 잠수했다가 물 밖으로 나온 사람처럼 비로소 나는 숨을 쉰다는 느낌을 받았다.

 

늘 배려하는 아이, 양보하는 아이, 욕심 없는 아이였다. 월급을 집안에 보태면서 언니의 결혼자금에도 큰 힘이 되었다. 내가 결혼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친정아버지께서 다니시던 직장을 그만 두신 이후로 수입에 비해 다소 많은 돈을 부쳐드렸다. 너도 살아야지 친정에 이렇게 갖다 주면 어떻게 하니. 친정어머니께서는 매번 미안해하셨다. 번듯한 호강은 못시켜드리더라도 돈에 구애받지 않고 소소한 일상을 누리시는 기쁨을 드리고 싶었다. 부모님에 대해서 이다음에 잘해드릴 기회는 없을 테니까. 결혼 후에도 여전히 나는 착한 아이였다. 별명처럼 따라다니던 이 말에 착한 웃음을 지으면서도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시선이 점점 글 쓰는 삶을 향한다. 글을 쓰는 동안은 고통스러우면서도 자유롭다. 앞으로의 삶은 글을 쓰며 글로 채우고 싶다. 연금이 나올 때까지만 직장을 다닐까. 올해로 28년째면 많이 한 거지. 4년 더 일하다 과연 그만둘 수 있을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과속방지턱처럼 매번 걸리는 이유가 있다. 부모님께 착한 아이가 되고 싶은 마음이다. 돈이라도 벌어야 용돈을 마음 편하게 드릴 수 있을 테니까. 착하게 말고 자유롭게 살아.(p282)’  이 문장이 나를 흔들었다. 고민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이 책을 읽고 새삼 깨달은 사실은 나의 직업이 본성과는 맞지 않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어릴 때부터 아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던 내가, 아이가 지닌 막무가내의 잔인함에 거부감을 자주 느꼈던 내가, 의욕이 없는 대상을 가르치는 일을 그토록 지겨워했던 내가 중학교 과학교사다. 예전부터 어떤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다른 현상과의 공통점을 찾아내어 썩 기발한 방법으로 비유를 하곤 했다. 그래서 잘 가르치는 것이라 착각을 해왔던 거다. 돌이켜보면 단지 표현력이 좋았을 뿐인데. 문과와 이과 성향이 반반이라면 좋아하는 분야와 나의 성향을 조금만 더 진지하게 고민했어야 옳았다.

교사의 첫 번째 조건은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말 잘 듣고 수업 잘 듣고 공부 잘하고 성실한 아이가 예뻐 보이는 것은 누구에게든 마찬가지일터이다. 결핍된 아픈 손가락을 보듬는 마음은 가르치는 기술보다 우선이어야 한다. 나에게 과연 그런 마음이 있을까. 요즘은 자신이 없다. 한때 교실에서 제일 행복했던 내가 며칠 전에는 아이들을 만나러가는 복도를 지나면서 가뭄에 말라비틀어지는 나뭇가지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무심코 던져진 몇 마디 말로 쉽게 상처받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분명한 것은 아이들과 마주보는 시간들이 무거워지는 만큼 즐거움으로 채워지는 가뿐한 순간들이 줄어든다는 사실이다. 밀려드는 의기소침은 현재진행형이다. 28년 동안 켜켜이 쌓인 더께로 인해 낡아버린 걸까. 처음부터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이었던 걸까.

 

너 왜 여기 있어? 며칠 동안 마음을 붙들었던 문장이 지금까지 맴돈다. 나는 후각과 같은 삶을 살아왔던 걸까. 자극이 계속되면 순응하여 더 이상 그 냄새를 못 맡는 것처럼 그저 습관처럼 만들어진 결에 맞추어 살아왔던 건 아닐까. <아치디에서>는 나에게 다가온 다른 종류의 냄새였다. 자극적이지도 과격하지도 않은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자주 움찔했다. 작가의 문장들이 거울인 듯 관성의 결을 거슬러 나를 향해 걸어 들어왔다. 넌 네 삶을 살 거야.(p298)’ 스스로에게 이 말을 던져본다. 나는 내 삶을 살 수 있을까. 강아지풀처럼 얼핏 부드러워 보이는 문장들이 마음의 작은 솜털들을 건드린다. 나는 내 삶의 결을 잘 찾아갈 수 있을까. 까슬까슬한 감각에 심장이 간질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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