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밍 업 - 문장과 소설과 인생에 대하여
서머싯 몸 지음, 이종인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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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이 있었다. 무려 ‘1938의 작품인데다 ‘64외국작가가 쓴 책이라니! 유행지난 옷처럼 식상하지 않을까. 고루하지 않을까. 외국인과 정서가 어긋나지 않을까. 나는 이 책에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까. 403페이지의 두께감도 부담을 더했다.

일단 겉표지를 넘겼다. 군더더기 없는 문장이다. 소설도 아닌 글이 다음 내용을 궁금하게 만든다. 작가의 문장과 생각들이 날렵하게 스며들었다. 미사여구 없이 문장이라는 주제를 향하는 직진성이 마음에 든다. 80여 년 전을 살던 작가의 생각에 이리 공감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서머싯 몸이라는 작가의 매력에 점점 빠져들었다. ‘내 문장은 분명함, 단순함, 좋은 소리를 지향해야 한다(p45)’ 그의 문장은 작가의 의도대로 펼쳐지고 있었다. 원문을 읽지 못해 좋은 소리를 지향 했는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분명하고 단순한 문장을 구사한다는 점은 번역된 내용으로도 충분히 감지되었다.

 

서밍 업은 문장과 연극과 소설과 인생에 대한 서머싯 몸의 문학적 자서전이다. 요즘 문장에 대한 고민이 점점 커지기에 문장론이 담긴 첫 번째 부분이 가장 마음에 와 닿았다.

좋은 문장은 노력의 흔적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 종이에 써 놓은 것은 그냥 자연스럽게 써진 것처럼 보여야 한다.(p60)’ 어미를 바꾸어보아도 자연스러운 문장이다. ‘좋은 문장은 노력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그냥 자연스럽게 써진 것처럼 보인다.’하고. 뛰어난 시인의 작품을 볼 때마다 느끼는 사실은 한붓그리기를 한 듯 술술 써진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막상 시를 써보면 절감한다. 그리 만만치 않은 과정이라는 것을. 그건 생밤을 깎는 과정과 흡사하다. 갈색의 두꺼운 겉껍질과 까슬까슬한 속껍질을 지나면 섬세한 칼질과의 싸움이다. 깎아지른 밤이 탄생하기 위해 얼마나 디테일한 각도의 보정이 필요한지 깎아본 사람은 안다.

 

오히려 아무 것도 모를 때가 쉽게 써졌다. 2006년부터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기 시작했으니 올해로 14년째다. 어떤 내용으로 쓸지 구상만 떠오르면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데 어찌 된 게 그만큼 써댔으면 걸리는 시간이 짧아져야 하는데 점점 늦어지고 있다. 뼈대를 구성하는 시간은 비슷한데 퇴고 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이다. 일단 쓰고 나면 나의 문장들은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메뚜기가 된다. 전체적인 흐름에 어긋난다 싶으면 문단 전체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일부분이 다시 부활하기도 한다. 고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전체의 3분의 2정도는 되는 듯하다.

걸어온 시간만큼 더 가면 나아질까. 지금으로서는 가망이 없어 보인다. 이제는 낱말 하나, 조사 하나도 떼었다 붙였다 바꾸며 목에 걸린 생선 가시처럼 껄끄러워지는 중이니까. 됐어! 이 정도면 음하하! 뿌듯하게 부르짖으며 서재블로그에 떠억 올리고 싶단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쩜쩜쩜. 뭔가 조금은 더 나올 것 같은데 어정쩡한 상태로 끊게 되는 응가처럼 매번 찜찜하다. 단 한 번도 깔끔하게 쾌변한 기억이 없다, .

 

나의 글을 돌아보게 된다. ‘내 영혼 속에서 너무 오랫동안 표류하여 불편하게 여겨온 생각들을 해방하기 위하여 이 책을 쓴다.(p22)’ 서머싯 몸의 생각에 동의한다. 써야하니까 쓰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품고 있기 어려워지면 생각이 밖으로 빠져나온다. 생각들을 정면으로 응시해야 하므로 고통스럽지만 글로 마주한 생각은 묘한 희열을 가져온다. 그래, ‘해방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다만 나의 글이 혼자만을 위한 감정의 배설이나 넋두리가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서재블로그에 처음으로 올렸던 글을 찾아 읽어본다. 정혜윤의 삶을 바꾸는 책 읽기를 읽고 쓴 내 삶의 주인으로라는 제목의 글이다. 내 리뷰의 시작이 담겨있다. 7년 전에 비하면 지금은 다소 나아진 듯하다. 시간과 경험은 내적 성숙을 가져다주고 글은 써본 만큼 느니까. 첫 글을 냉철하게 분석하니 좀 장황하다. 떡집 가래떡 나오듯 주저리주저리 뽑아지는 문장들이 지루하다. 혼자 말하고 혼자만 웃는 인간처럼 갇혀있는 느낌이다.

 

장황한 글은 매력이 없다. 이건 길이의 문제가 아니다. 길어도 속도감이 있는 글은 독자를 마지막으로 순간 이동시켜주니까. 중요한 것은 내용이다. 어디서 들은 내용 같거나 비슷한 내용이 반복되면 하품이 나온다. 내가 아니어도 쓸 수 있는 글은 재미가 없다.

과감한 버리기와 팔딱거리는 표현이 절실했다. 그래서 시를 썼다. 시는 배추 겉잎 다 떼어내고 고갱이만 남기는 과정이니까. 문학적인 기초도 없이 무모하게 달려들었다. 초라한 시들이 적립금처럼 블로그에 차곡차곡 쌓였다. 버릴 것이냐 남길 것이냐 매번 그것이 문제였다. 힘들게 길어 올린 문구들이 아까웠지만 내버려두면 지루했다. 현명한 버리기가 필요했다.

시 쓰기는 청소하기와 비슷했다. 청소의 시작은 비우기이다. 새 물건이어도 쓰지 않으면 내게는 쓰레기나 마찬가지이다. 주제와 상관없는 문장은 화려한 모양새를 갖춘 쓰레기와 같다. 이런 생각을 갖자 버리기가 수월해졌다. 시의 각 연에 비슷한 무게감을 주듯 독후감의 문단들도 균형 잡힌 틀을 갖추기 시작했다.

 

<문장의 소리 팟캐스트>에서 이강산 소설가의 나비의 방편을 들었다. 작가가 설명하는 작품 속 인물은 실존 인물이면서도 가공인물이었다. 소설이 현실 같고 현실이 소설 같은 세상이다. 소설가는 주제에 맞게 등장인물들을 변형시켰던 것이다. 서머싯 몸의 말이 떠올랐다. ‘소설은 예술가이고, 예술가는 삶을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삶을 자기 목적에 맞게 수정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p279)’ 많은 소설이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수정된 인물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가공인물들은 현실에서도 존재하는 듯 작가의 생각을 전달하는 아바타가 된다.

정상에 대한 서머싯 몸의 생각도 소설에 적용된다. ‘정상은 당신이 발견하려고 애쓰지만 별로 발견하지 못하는 그런 것이다. 정상은 이상(理想)이다.(p91)’ 의대에 다녔던 사촌 언니가 시체 해부에 대해 해주었던 말이 생각난다. “해부학 책에 나온 것처럼 사람의 장기가 그 자리에 있으면 얼마나 좋겠니? 제대로 있는 경우가 없어. 심장이 왼쪽에만 있는 줄 알았지?” 정형화된 틀은 없는 걸까. 우리 몸 뿐 아니라 정상적인 사람들도, 어쩌면 정상적인 삶도.

 

얼마 전, 기도의 목적이 진정으로 타인을 위한 것인지 회의적인 생각이 든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이와 연관된 문장이 있어 화들짝 놀랐다. ‘인간은 오로지 자기 쾌락만을 추구하는데, 그가 남들을 위해 희생하는 경우는 그 자신의 만족을 추구하기 위해 이런 희생을 한다는 환상에 사로잡힌 것이다.(p320)’ 누군가 말했다. 이타적인 사람도 이기적인 사람이라 여겨질 수 있다고. 남을 위하는 행위가 결국 자신의 기쁨을 위한 것이니. 다소 극단적인 뾰족함이 담긴 생각이지만 한 때 내가 했던 생각을 과거의 누군가 했다고 생각하니 묘했다.

위안을 얻기도 했다. ‘노년에는 그 나름의 즐거움이 있고, 비록 종류가 다르지만 청춘의 즐거움 못지않다.(중략) 노인은 시간이 더 많다.(p366)’시간이 더 많다는 문장에 웃었다. 너무 공감이 가서. 큰 아이는 타 지역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둘째 아이는 고3이라 밤 1030분 넘어서 집에 오니 퇴근 후 시간을 활용할 수가 있다. 다만 이에 상응하는 체력이 뒷받침되지 못해 날아갈 듯 자유를 만끽하지 못하지만 예전에 비하면 시간이 많아졌다. 그 나름의 즐거움이라. 희망적이다. 인디언 추장의 현명한 말처럼 64세의 노작가가 했던 말이니 어느 정도 믿어보고 싶어진다.

 

초고에 썼던 첫 문장이 최종판의 첫 문장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 이 독후감의 첫 문장은 책을 읽을 때마다 독후감을 썼다.’였다. 제목 없이 글을 쓰다 일단 저장하면 첫 문장이 저장된다. 그래서 이토록 민망한 첫 문장을 알아버렸다. 짐작하셨겠지만 버려졌다. 처음에 생각했던 이 독후감의 제목은 뭐였더라. 생각도 나지 않는다. 제목은 글을 쓰면서 수시로 바뀐다. 내용 역시 처음부터 끝까지 이렇게 써야겠다며 구상하지 않는다. 필이 꽂히는 내용이 떠오르면 무조건 노트북을 연다. 한데 쓸수록 글이 나를 당겨 손가락을 끌고 간다. 계속 생각이 흘러나온다. 받아쓰기를 하듯 손가락이 바쁘게 움직인다.

글과 문장을 통해 인생을 말하는 작가를 따라갔다. 77장으로 요약된 작가의 글을 따라 나의 문장과 삶을 더듬었다. 분명 작가 자신에 대하여 쓴 글인데도 나를 바라보게 하는 책이다. 글의 매력이다. 작가가 쓴 글은 나의 생각을 끌어내어 글을 쓰게 하고, 내가 쓴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아마도 당신의 생각을 끌어냈을 것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도미노처럼 바로 그 순간 글의 매력은 마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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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2 06: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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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2 16: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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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2 16: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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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2 17: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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