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사생활 - 나를 치유하는 일상의 99가지 사물
이민우 글, 정세영 사진 / 이숲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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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칵! 호흡을 멈추고 셔터를 눌렀다. 새끼손톱보다 작은, 발목보다 낮은 키로 가만가만 흔들리던 하얀 봄이 렌즈 안으로 쏙 들어왔다.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봄이 아름다워지기 시작한 것은. 디지털카메라의 붐이 일었을 때, 접사 기능으로 눈동자 한가득 작은 꽃들을 담아가면서 꽃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유달리 작은 꽃이 많은 계절이다. 무심코 지나칠 때에는 몰랐던 생명들이다. 작은 봄꽃들은 미세한 바람에도 흔들렸다. 바람이 불지 않는다고 생각한 순간에도 나지막하게 바람의 존재감을 알려준 다음, 향기를 잘게 쪼개서 바람에 흘려보냈다. 봄을 떠올릴 때 간질거리는 느낌이 드는 이유는 꽃 때문일 거다. 그런 꽃을 품은 봄을 덩달아 사랑하게 되었다.

사람은 의미를 품은 사물을 사랑하게 되는 걸까. 의미로 다가오는 대상은 다양하다. 생명체에서 무생물에 이르기까지 딱히 정해진 기준은 없어 보인다. 동화였던어린왕자가 심오한 소설로 인식되었을 때, 소설 속 왕자에게 의미 있는 대상은 장미와 여우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막도, 밀밭도, 석양도, 별까지도. 주인공을 둘러싼 수많은 사물들이 의미를 지닌 채 빛을 냈다.

 

사물의 사생활99가지 사물의 의미를 카피라이터인 작가 고유의 시각으로 바라보며 해석한 책이다. 카피라이터가 쓴 글을 좋아한다. 직업의 특성상 그들은 대체적으로 본질을 꿰뚫는 예리한 시각을 지닌다. 그들의 글은 시와 흡사해 보일 때가 많다. 단 몇 줄은 탱탱 볼인 양 상큼하다.

현미경으로 대상을 관찰하는 느낌으로 따라가 보니 나를 치유하는 일상의 99가지 사물이라는 부제처럼 마음이 치유되는 듯했다. 여행을 가서 새로운 풍경이 드넓게 펼쳐졌을 때 느껴지는 후련함과 비슷했다. 그런 느낌이 가뿐한 바람으로 불어와 마음에 쌓여있던 먼지를 훌훌 털어냈다. 마음의 무게가 조금 가벼워졌다.

같이 실린 사진도 글 못지않은 존재감을 발한다. 전달하는 메시지가 많다.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은 렌즈의 초점이 오롯이 대상에만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사물이 주인공인 글이니 당연하지만 사진을 넘길수록 사물을 올곧게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강하게 감지된다. 대상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담대함과 가까이에서 본질을 담아내려는 사진들이 진한 느낌표로 찍힌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선뜻 내미는 손이 그리울 때가 있다. 외로움에 지쳐가다 그냥이란 포장지를 이용한다. 위로받고 싶을 때 가끔 카카오 톡을 보낸다. 도로 삼키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농담 몇 마디에 기대어서라도 시린 가슴을 덮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냥. 두 글자를 보낸다. ‘사랑은 의미가 아니라 존재 자체에 대한 경이로움이다. “, 날 사랑해?” “그냥.”(p154)’ 불현 듯 누군가에게 그냥이 되고 싶어진다.

네가 오전이면 시계도 오전이고, 네가 오후면 시계도 오후다.(<시계>, p123)’ 많은 의미를 품은 문장이다. 나의 생각대로 의미가 생긴다는 말이다. 무서운 말이기도 하다. 보아도 보이지 않는 사물이 생길 수 있다는 말 아닌가. 그런 사물은 의미를 잃고 투명해진다. ‘사람의 눈은 자신의 기분과 심리적 상태, 처한 상황, 날씨에 따라 오목렌즈와 볼록렌즈로 대상을 부분적으로 확대하고 축소한다.(<안경>, p189)’ 관점이 비슷하면 사물을 비슷한 크기로 바라볼 터이다. 그가 누구든 오랜 동안 나란히 걸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따뜻한 행운이 될까.

무인도에 가져간다고 가정하니 내 삶의 세 가지 사물은 무엇일까?(<프리스비>, p50)’에 대한 답변이 떠오른다. 글을 쓸 수 있는 종이, 파란색 제트스트림 1.0 볼펜, . 책은 읽을 때마다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어린왕자>와 같은 책이면 적당하겠다. 욕심을 조금 더 부린다면 음악이 담긴 플레이어 정도를 추가해도 좋겠다.

 

이 책을 읽으며 나의 삶을 돌아보고, 시선을 가로막는 편견의 포장지를 벗겨냈다. 사람을 생각하고, 세상을 둘러보고 시선 끝에 놓인 나를 바라보았다. 폐 속에 신선한 공기가 가득 들어차 삶이 확장되는 느낌이 들었다. 관점의 기발함에 감탄하면서 글을 읽었지만 앵무새처럼 작가가 부여한 의미를 따라가고 싶지는 않다.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나만의 의미를 찾아야 하니까. 우리는 사실 제각기 다른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지도 모른다. 저마다 다른 의미로 축소되고 확대되어 만들어진 세상 안에서. 객관적으로는 같은 시간과 같은 공간을 바탕으로 지문처럼 다른 세상을 살아간다고 상상하니 기분이 묘하다.

왜 하필 99가지의 사물을 정했을까. 그 이상도 가능할 것이고 많은 이들이 선호하는 100으로 마무리할 수도 있었을 텐데. 가만히 생각하다 퍼즐의 마지막 조각인 듯 끼워 넣을 수 있는 대상을 떠올린다. 바로 나! 사물이라 하기엔 억지스럽지만 굳이 하나를 남겨놓은 것은 끝으로 나를 바라보라는 의미가 아닐까. ‘나는 나에게, 타인에게, 세상에게, 신에게 무슨 사물일까.(p7)’ 존재론적 질문 앞에서 되묻는다. 나는 나에게 무슨 사물일까. 아직 당당하게 외칠만한 답을 얻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의미 없는 사물이 되고 싶지는 않다. 세상을 품고, 세상을 품은 나를 품고 싶어서 같은 질문을 계속 떠올리며 스스로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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