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기들의 도서관
김중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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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진 사람에게서는 분홍빛이, 살의를 띤 사람에게서는 노란빛이 보인다. 다른 이의 감정을 색채로 볼 수 있다는 여주인공이 등장하는 웹 소설이다. 공허함, 슬픔, 기쁨 같은 감정들이 보랏빛, 파란빛, 초록빛 등 각양각색의 빛을 낸다는 설정이다. 그녀는 선명하게 보이는 색채에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렌즈를 끼고 다닌다. 감추려하는 감정들을 볼 수 있다니 편하고 재미있을 법도 한데 가까운 이의 감정이 보인다고 상상하면 그녀의 행동에 공감이 된다. 작가는 어떻게 감정이 보인다는 발상을 했을까.

이 책을 읽다보니 그 웹 소설이 떠오른다.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것들이 한 줄로 연결되는 순간, 삶이 바뀐다.(p112)’ 는 문장에서 김중혁 소설의 정체성을 발견한다. 작가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것들을 한 줄로 연결하여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탁월한 사람이다. 소설집에 실린 8편의 소설들은 전혀 다른 색채를 띠며 독특한 개성으로 빛난다. 옴니버스 구성인 양 음악이라는 공통분모를 품고 있는 단편들이다.

 

그의 소설들을 읽다보면 감각 기관과 상응하는 자극의 개념이 파괴된다. 소리는 귀와, 빛은 눈과, 냄새는 코와, 감촉은 피부와, 맛은 혀와 연관된 자극이라는 고정상식이 연결고리를 풀고 다채로운 조합의 순서쌍으로 탄생한다. 소리에서 냄새가 나고, 빛에서 감촉이 느껴지는 듯 착각에 빠진다. 생각이 유연해진다. 세상에서 내게로 다가오는 자극들이 새삼 신선한 맛을 낸다.

앞뒤 맥락을 떠나 새로운 것은 어디에도 없다.(p104)’ 는 문장에 공감한다. 작가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평범한 요소들이 조합 방식에 따라 독특함으로 만들어진다. 악기와 도서관이라는 흔한 낱말이 결합되어 <악기들의 도서관>이라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 제목이 만들어진 것처럼. 소리와 나무가 결합되면 나뭇가지처럼 여러 갈래로 나뉘어서 소리의 열매를 빚어내고(p64)’ , 음악과 연기가 결합되면 세상의 어떤 음악이 나를 관통한 다음 연기처럼 사라져버린다.(p35)’

 

음악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깊다. 애착을 없었으면 나오지 않았으리라 여겨지는 내용과 사유들이 내내 마음속으로 흘러들었다. ‘왜 어떤 것은 소리이고 어떤 것은 음악일까.(p31)’ 같은 질문을 스스로 던져본다. 무엇이 소리와 음악을 구분 짓는가. 소리에도 높낮이가 있고, 세기가 있고, 음색이 있다. 대화 소리라면 가사도 있으니 이 둘의 결정적인 차이는 규칙적인 박자 정도 되겠다. 우리 몸에서도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심장 박동과 숨소리가 있음을 떠올린다. 그렇다면 생명과 닮은 소리를 음악이라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어떤 음악이 유난히 마음을 울릴 때가 있다. 평소 무심코 지나치던 음악이 어느 순간 확 다가오는 순간이 있다. 여러 날 똑같은 노래를 듣다가도 하나의 음이 마음에 느낌표를 찍기도 한다. 음악과 마주하는 순간의 마음에 따라 공감과 무감각의 낙차가 크다. 그 이유를 심장에서 찾는다. 감정에 따라 심장박동이 달라지면 음악과 공명을 일으키는 주파수가 달라지는 것이라고.

 

음악을 주제로 한 독특한 이야기들이 탄산수처럼 톡톡 튀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소설은 <엇박자 D>이다. 22명의 음치들이 부르는 노래들을 리믹스 시킨 음악이 흘러나오는 장면은 곁들여진 하나의 문장과 함께 심장과 공명을 했다. ‘목소리가 겹치지만 절대 서로의 소리를 해치지 않았다.(p281)’ 라는 문장이다. 음악이 들리는 듯, 장면이 보이는 듯, 다양한 감각들이 한꺼번에 자극되며 뭉클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음악이 담긴 도서관을 둘러본 기분이었다. 스릴러 넘치는 긴장감을 품고 고양이 발처럼 슬금슬금 다가오는 음악으로, 찡한 휴머니즘으로 따끈한 빵 냄새를 풍기는 음악으로, 정체성을 찾아가려는 의지가 대나무처럼 곧게 뻗어 나오는 음악으로, 순수한 열정으로 선명하게 붉은 음악으로, 담백한 두부 맛이 나는 음악으로 책을 읽는 순간순간이 BGM의 바다로 출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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