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김영민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음산한 기운이 주르르 흘러내릴 것 같은 으스스함. ‘죽음이란 글자는 매번 이런 분위기로 찜찜함을 전해주는 말이었다. 막연함이 불러오는 공포와 존재의 마침표라는 느낌이 주는 허무함이 뒤섞여 실체를 알 수 없는 가상의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죽음에서 풍기는 강렬한 두려움은 아침이 쏟아내는 환한 햇살을 가려 개기일식이라도 된 양 어둠을 건네었다.

자주 가는 독립서점의 주인장이 포스트잇에 메모해놓은 추천사가 없었더라면 손길조차 닿지 않을 책이다. 올해 읽은 책 중 가장 재미있었다는 그의 안목을 믿어보기로 했다. <프롤로그>를 읽으며 안도의 숨을 쉬었다. ! 읽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어.

 

내가 생각하는 좋은 책과 사람들이 좋다 말하는 책이 일치하지 않을 때가 있다. 나의 판단기준은 하나다. 생각을 얼마나 변화시키고 나아가 몸을 들썩이게 만드느냐는 거다. 어찌 생각하면 당연하다. ‘좋은이란 극히 주관적인 말이니. 사상의학에서 체질에 따라 어울리는 음식의 궁합이 존재하듯 마음의 양식이라는 책도 독자와의 궁합이 분명 존재하리라. ‘좋은 책이라는 말 앞에는 두 글자가 생략되어있다고 여긴다. (내게) 좋은 책이라는.

책을 읽고 나니 마음이 들썩였다. ‘우리가 시한부 인생이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좀 더 다르게 살게 되겠지. 그래, 근심을 버리고 해야 할 일을,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거다.(p6)’ 지금까지와 조금은 다르게 살고 싶어졌다.

 

특히 마음에 드는 점은 세 가지이다.

첫째, 관점이다. '설거지의 이론과 실천'(p39-42)에서는 설거지를 담당하는 이들의 심정을 이해하는 촌철살인의 문장에 통쾌했다. 독서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책이라는 걸 읽는 행위 자체가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자세잖아요.(p317-318)’ 글을 통해 전하는 소리 없는 말을 소리 없이 들어주는 독자를 상상하니 숙연함조차 느껴졌다.

둘째, 기발한 비유이다. ‘이 달걀은 암탉이 될 운명이었을까, 수탉이 될 운명이었을까.(p339)’ 몇 십 년 동안 달걀을 보고, 먹고, 사면서 단 한 번도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내가 하지 못했던 생각을 누군가는 세상 어딘가에서 하는 거다. 세상은 넓고 창의적인 인간들은 그보다 더 많구나. 겸허해져야겠다. ‘황사처럼 닥칠 식후의 피로(p339)’라든지, ‘복날 쉬는 삼계탕집처럼(p341)’이라든지, ‘임플란트를 거부하는 코끼리처럼(p341)’, ‘네덜란드를 떠난 풍차처럼 촌스러워서(p341)’, ‘목도리도마뱀이 목도리를 하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p342)’등의 표현이 쓰나미처럼 몰아닥쳤다. 스스로 생각해도 기발한 비유다 싶을 때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자만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 난 아직도 멀었구나. 고수의 세계를 접하며 그동안 너무 오만했음을 깨달았다.

셋째, 표현 방식이다. ‘저는 글에 리듬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p307)’라 말한 대로 그의 글은 리드미컬하게 내용을 전달하고 있었다. 유머가 섞인 글이 최고의 경지라고 생각한다. 마음이든 지식이든 글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언가를 전달하는 거라면, 받아들이는 이의 마음 깊숙이 침투할 수 있는 효율적인 방식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웃음은 심장을 몰랑몰랑하게 만든다. 쉽게 마음을 열도록 하는 힘이 있다.

그가 권하는,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라는 책도 읽고 싶어졌다. 나와 비슷한 코드를 지닌 사람이 추천하는 책이니 결코 실망하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생겼다. 기대하지 않고 펼쳤던 책이라 즐거움은 더욱 컸다. 웃음이 곁들여있으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음이 좋았다.

 

커피숍에서 글을 쓰다 보니 처음 듣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어머! 참 좋다! 기타 전주가 너무 좋아 노래를 검색해본다. Car Seat Headrest ‘High To Death’이란다. 우연일까. 자세한 가사는 당연히 모르지만, ‘죽음이란 단어가 들어가는 노래도 이런 느낌일 수 있구나 싶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죽음을 직면하고 죽음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잠시 후 모두 죽는다고 생각하면, 자신을 괴롭히던 정념으로부터 다소나마 풀려날 것이다.(p5)’ 이전보다 담담하게 죽음이란 삶의 사건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누구든 언젠가는 죽는다. 시기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소멸의 여부가 아니라 소멸의 방식이다.(p125)’ 오래 머무르게 되는 문장이다. 어찌할 수 없는 소멸 여부를 두고 두려웠던 건지도 모른다. 선택지가 있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은 채. 어떤 모습으로 삶의 마지막을 맞이할까.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아간다면, 조금은 다른 모습으로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까. 밋밋하게 사드라드는 불씨처럼 살고 싶지는 않다. 다른 이들에게 온기를 나누어주며 활활 타는 모닥불이거나 환하게 부스러져 밤하늘 같은 이들의 눈동자에 순간적이나마 작은 기쁨이라도 담아줄 수 있다면 그런 삶도 괜찮겠다.

 

 

p136, 1째줄: <<읽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잃어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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