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션 (스페셜 에디션, 양장) - 어느 괴짜 과학자의 화성판 어드벤처 생존기
앤디 위어 지음, 박아람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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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큰맘을 먹어야 했다. 기저귀, 분유통, 보온병, 물티슈, 여벌의 옷, 딸랑이, 분통, 가제수건, 아기 띠. 아이가 어렸을 때 어딘가로 이동한다는 것은 족히 아이의 두 배도 넘는 부피의 짐들을 감당해야함을 의미했다. 혹시 일어날지도 모를 상황들을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하며 커다란 기저귀 가방과 보조 가방 안에 바리바리 짐을 싸들고 집을 떠나는 일이었다. 결코 만만치 않았다. 아이를 돌보는 것은 하나부터 열까지 완벽하게 부모의 손을 필요로 했다.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 싸는 것까지 한시도 나의 손을 멈추면 안 되었다.

 

고작 바퀴라니! 수년 전 과학 뉴스를 검색하다 인류의 3대 발명품 중 하나가 바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세상에 기가 막힌 물건들이 얼마나 많이 쏟아지는데 무려 인류라는 타이틀이 붙은 내용에 바퀴라니요. 하지만 뒤따라온 설명을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우리가 사용하는 수많은 물건들의 시초였다. 너무나 오랜 세월 거슬러 내려왔기에 공기나 물처럼 처음부터 있었다고 여겨진 것. 당연하지 않은 것인데 당연하게 여겨졌던 것이었다.

잊고 있었다. 세상에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 얼마나 많았던가를. 아이와 함께 딸려가던 짐의 크기가 줄어들수록 그래서 결국 몸만 가뿐하게 나설 수 있던 순간으로부터 한참이 지난 지금까지 오면서.

 

나는 참 쉽게 살고 있었구나. 화성에 홀로 남겨진 과학자의 긴박한 생존기를 따라가면서 당연하게 여겼던 것을 하나 둘씩 떠올렸다. 숨 쉴 때마다 굳이 고마움을 표시하지 않는 산소부터 집안에서 수도꼭지만 틀면 콸콸 쏟아지는 물까지. 가까운 슈퍼나 인터넷으로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음식에서부터 살고 있는 공간, 사소한 종이와 펜, 공구들에 이르기까지.

수소와 산소를 이용해서 물을 만드는 과정에서, 방사선의 위험을 무릅쓰고 난방을 위한 열을 얻는 과정에서, 토양과 박테리아를 이용해서 감자를 재배하는 과정에서, 무선통신으로 지구와의 연결을 꾀하는 과정에서, 태양전지판을 이용하고 모래폭풍을 피하고 위성으로 방향을 알아내는 과정에서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이 새삼 만들어지는 모습들을 보면서 이제껏 잊고 있던 것들이 삶에 주는 의미를 생각했다.

 

신호 감지(p186)’라는 네 글자가 이토록 울컥할 일이더냐! 어느 순간 와트니의 시점에서 와트니에 빙의된 듯 황량한 화성을 걷고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는 나를 발견한다. 1970년대, 외계인을 향한 갖가지 메시지를 금속판에 실어 허공에 날려 보낸 인류의 염원을 떠올린다. 태초의 아담과 이브를 연상시키는 그림과 형이상학적 문양을 어떻게 알아차릴까 말도 안 된다 생각했더랬다. 외계인이 등장하는 책도 아니건만 이 책을 읽으니 어쩌면 먼 미래에는 소통에 대한 답변도 날아오지 않을까 꿈꾸게 된다. 우주여행 상품이 과학 뉴스에 등장하는 요즘이다. 소설 속 화성 유인탐사가 구현될 날이 머지않았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주인공이 죽는 법은 결코 없을 테지만, 돌발적인 상황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이 궁금했다. 감자를 심어 식량 문제를 해결했을 때 그것으로 식량에 대한 언급은 더 이상 되지 않으리라 예상했다. 하지만 식량이나 물이나 산소의 문제는 어느 것 하나 만만하게 해결되는 법이 없다. 수시로 뒤집어지면서 전개되는 상황이 아슬아슬하다. 이 책이 매력적인 건 툭툭 튀어나오는 황당한 사건 속에서도 결코 좌절하지 않고 상황을 극복해가는 주인공의 낙천적인 기지에 있다. 그는 무너진 환경을 베이스로 마지막까지 희망을 놓지 않는다. 실제로도 그렇게 될까 싶으면서도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언젠가는 실제로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게 한다. 어떤 내용으로 전개될지 어떤 결말이 나올지 궁금해서 틈이 나는 대로 책을 펼쳤다. 흡인력 있는 서술 덕분에 598쪽의 만만치 않은 두께의 책을 사흘 만에 덮었다.

 

주인공의 독백에는 작가의 인간관이 잘 드러난다. ‘모든 인간이 기본적으로 타인을 도우려는 본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p597)’ 그가 시도한 방법들이 과학적으로 얼마나 타당성이 있고 실제로도 가능한가를 조목조목 분석하고 싶지는 않다. 이 작품에서 가장 높이 평가할만한 요소는 과학성 너머에 있기 때문이다. 과학적인 방법이 소설의 주를 이루고 있지만 그건 수단일 뿐 작가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인간이라 생각한다. 극한상황에 처한 인간의 생존본능, 낙천적인 기질의 중요성, 버려야 할 것은 과감하게 버릴 줄 아는 순간적인 판단력, 주인공과 동료들과의 끈끈한 동료애를 통해 드러나는 인간이란 존재 말이다. 특히 화성으로 되돌아간 헤르메스에서 이들이 도킹하는 장면은 찡함과 더불어 생존본능을 넘어선 인간 사이의 신뢰를 생각하게 한다.

 

긍정적이고 유머러스한 서술이 긴박한 상황과 잘 버무려진 소설을 읽으면서 내내 유쾌하고 행복했다. 과학적인 요소가 묻어있는 행복 바이러스가 책장을 넘길 때마다 묻어나왔다. 이 책은 어느 순간부터 잊어버린 채 살아온 것들을 일깨워주었다. 존재가 살아간다는 것은 온 우주를 배경으로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당연하지 않은 수많은 요소들이 담긴 환경 속에서 이루어지는 경이로운 일이었다. 그래서 더욱 소중하게 여겨져야 하는 기쁨이라는 생각에 한동안 뭉클했다.

 

 

p522, 2째줄 : 로비 로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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