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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피아노 - 철학자 김진영의 애도 일기
김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10월
평점 :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다 보면 음악이 멈춰도 멜로디가 맴돌 때가 있다. 정지 버튼이 고장난 플레이어처럼 종일 반복 재생되는. 작가의 글이 그랬다. 묘한 것은 화려한 글귀가 나를 사로잡은 것이 아니라 설명하기 어려운 느낌이 심장 주변을 맴도는 느낌이 드는 거다. 톡 토독 툭 투둑. ‘CANON’의 선율처럼 가벼워 보이면서도 고요 속에 묵직하게 내려앉는 감정이 온통 나를 둘러쌌다. 괴테도 죽었고 헤세도 죽었는데 고전을 쓴 유명한 작가들 모두 이 세상에 없는데 왜 유독 이 글들이 맴도는 걸까. 죽음이 다가올 것을 알고 쓴 글 이어서일까. 그 절박함이 인상적인 선명함으로 마음에 머문다.
‘임종 3일 전 섬망이 오기 직전까지 병상에 앉아 메모장에 [아침의 피아노]의 글들을 쓰셨다.(p5)’ 내용을 읽기도 전에, 차례를 보기도 전에 ‘섬망’이란 말이 가시처럼 턱 걸려서 한참동안 페이지를 넘길 수 없었다.
생선 가시처럼 마음에 걸리는 자작시가 있다. 빙산의 90%인양 시어 아래에 잠긴 감정을 알기에 매번 목이 메는. 지난 5월, 매일 퇴근 후 친정아버지께서 입원하셨던 병원으로 향하는 마음을 '바퀴'라는 시에 담았다. http://blog.aladin.co.kr/nabijong/10126679 ‘공간의 바퀴가 돌면/ 집이었다 병원이었다/ 벽이었다 커튼이었다/ 햇살은 빗살이 되지만’. 생선 가시는 이 부분이다. ‘섬망’이란 단어를 그 때 처음 알았다. 병원인데 집이라 하시고, 병원 벽을 커튼으로 착각하시고, 햇살 쨍쨍하던 날 창밖을 바라보며 비오냐 하셨을 때, 늘 단단하던 바위 한 귀퉁이가 우르르 무너지는 듯했다. 친정어머니 걱정하실까 해서 ‘간호사에게 물어보니 일시적인 스트레스로 인한 증상이라더라.’ 아무렇지 않은 듯 안심시켜 드렸지만, 아찔하고 막막했던 느낌은 떠올릴 때마다 꽃차처럼 되살아난다.
겉표지만 보았을 때에는 가벼운 수필이려니 했다. ‘애도 일기, 슬픔’이란 말이 있었지만, ‘아침’과 ‘피아노’가 주는 이미지가 밝아서 이런 내용이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책날개의 저자 약력을 보고 ‘어? 올해 돌아가셨구나!’ 나이를 가늠해보면서도 짐작하지 못했다.
234편의 짤막한 글들이 음표처럼 날아들면서 삶을 연주했다. 너무 맑아 투명한 음들을 보며 코끝이 시큰했다. ‘음 하나를 더하면 기쁨이 되고 음 하나를 빼면 슬픔이 되는 것, 그게 인생이야.(p33)’ 그랬다. 일상에서 한 옥타브 정도의 변화는 드물었다. 그저 그런 하루들이 반복되는가 싶다가도 음 하나 정도의 차이로 희비가 교차되었다. 소소한 행복이라는 건 그 미묘한 변화를 감지하느냐 못하느냐의 차이인지 모른다.
‘하모니는 관계다. 관계는 모두가 음악이다.(p105)’ 매우 탁월한 은유이다. 조화로운 관계는 음악처럼 생동감이 넘치니 음악이 지닌 속성과 딱 들어맞지 않은가.
글에 대해 서술한 문장에서도 감탄한다. ‘글을 어떻게 쓰는 건지도 알겠다. 그건 백지 위에 의미의 수사를 채우는 일이 아니라 오선지 위에 마침표처럼 정확하게 음표를 찍는 일이다.(p53)’ 눈에 찍힌 발자국처럼 선명한 사유를 보면서 자주 울컥했다. 마지막을 향해 담담하게 걸어가는 작가를 보면서 삶의 소중함을 곱씹었다. 질척한 어둠은 존재하지 않았다. 말간 아침처럼, 피아노의 깨끗한 음처럼 문장 하나하나가 깊숙한 울림이 되어 스며들었다. 오선지 위에 애매한 음이란 없다. #이나 ♭이 붙더라도 모든 음은 오선지에 자신의 자리가 있는 법이다. 위대한 작가가 되는 길은 절대음감의 감성으로 얼마나 인간의 본성에 가깝게 삶을 그려내느냐에 달려있는 걸까.
지난 16일, 『밥보다 일기』를 읽고 날마다 일기를 쓰리라 결심하고 그날부터 당장 시작했지만 쓰면서도 주춤거리는 마음이 있었다. 극히 사적인 나의 이야기를 개방된 이 공간에 드러내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서. 나야 글쓰기 능력이 향상된다 치더라도 내 글을 읽는 이에게 시간 낭비가 된다면 얼마나 미안한 일인가. 글을 올릴 때마다 망설여졌다. 쓴다, 쓰지 않는다. 쓴다, 쓰지 않는다. 한 장 한 장 꽃잎을 떼며 사랑을 가늠하는 소녀처럼 망설임이 간당간당하던 무렵, 이 책을 만났다.
작가의 말에서 ‘나와 비슷하거나 또 다른 방식으로 존재의 위기에 처한 이들에 조금이나마 성찰과 위안의 독서가 될 수 있다면(p281~282)’이란 문장을 읽고 결심했다. 쓰자, 써야겠다. 혹시 아는가. 나의 고뇌와 외로움과 지질함과 소심함을 읽은 누군가 ‘이렇게 사는 인간도 있는데, 나는 그나마 낫지 않나’ 위안을 얻거나 ‘어? 나만 그런 게 아니었네?’하며 동지애를 느끼게 될지. 일기를 쓰는 손가락에 힘을 실어준 김진영 선생님의 책에 기대어 내가 쓰는 일기를 위한 변명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