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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의 무게 ㅣ 휴먼어린이 고학년 문고 1
이현 지음, 오윤화 그림 / 휴먼어린이 / 2014년 10월
평점 :
그만 놓아줘요. 보낼 때는 보내줘야지. 출근하자마자 화분에 물부터 주는 나를 보고 짝꿍 샘이 말씀하신다. 힝~ 아니에요. 저 밑바닥에서는 아직 살아있을 지도 몰라요.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마음으로 물을 준지 일주일째다. 내일 아침이라도 연두 빛 이파리가 고개를 내밀 것만 같단 말이다.
처음부터 물을 준 것은 아니다. 스승의 날 즈음이었나. 누군가 졸업한 제자에게서 받으신 듯 보이는 화분이 교무실 창가에 놓였다. 쪽파처럼 생긴 초록 잎이 무성하게 심어져있었다. 내가 받은 것도 아니기에 무관심했다. 얼마간을 무심코 지나쳤다.
그 문구가 눈에 띈 것은 우연이었다. 기분이 우울하던 6월의 어느 날, 싱크대에서 손을 씻고 고개를 돌리는데 화분이 보인다. 하얀 플라스틱 바탕에 박힌 검은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I LOVE YOU SO MUCH! 화분 안에 담긴 식물이 격하게 나를 사랑한다고 말을 거는 것 같아 피식 웃음이 나온다. 조금 옅어진 이파리 사이로 갈색 잎이 삐죽삐죽 섞여있는 것을 보는 순간 방치되고 있음을 알았다. 흠뻑 젖을 만큼 물을 주었다. NOBBY. 화분에 붙어있는 스티커를 보고 이름을 붙여주었다. 너에게 이름을 지어주겠어! 자~ 이제부터 너는 노비야!
악당이라는 이름을 붙인 유기견과 아이와의 이야기. 요즘 동화는 왜 이리 뭉클한 작품들이 많은지. 웬만한 소설을 읽을 때보다 더 가슴이 먹먹해진다. ‘탕!(p161)’ 한 글자가 나오는 순간, 책 속에서 총알처럼 불쑥 튀어나온 글자가 눈가를 스치기라도 한 듯 눈물이 핑 돈다. 주인공 수용이가 쓰러진 악당을 품에 안는 장면이 이어지자 제목이 지닌 묵직한 존재감이 다가온다. 『악당의 무게』. ‘무게’가 이런 의미였구나. 현실에서도 이런 저런 이유로 스러져가는 생명들을 생각하니 책을 읽기 전에는 평범하게 지나치던 제목이 뜨거워진다.
언젠가 라디오 방송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작은 새 한 마리의 무게만큼 자신의 살점을 떼어주기로 약속한 이. 아무리 살을 도려내어 올려놓아도 저울은 새가 놓인 쪽으로만 기운다. 저울의 균형은 그가 저울 위에 올라서는 순간 비로소 맞는다. 생명의 가치는 동일하다는 깨달음을 주는 일화이다. ‘사람은 이유 없이 개를 괴롭혀도 되고, 개는 사람한테 절대 대들면 안 되는 거야?(p99)’ 맑은 시선으로 생명을 바라보는 아이의 항변은 동화 밖에서 행해지는 어른들의 부당함을 향한 고귀한 외침이다.
동물을 키워본 경험이 거의 없다. 아이가 어렸을 때 유치원 숙제로 같이 키우던 누에와 달팽이가 경험의 전부이다. 며칠 지나지 않아 죽어버린 생명들을 버리며 씁쓸했던 기억이 있다. ‘나쁜 사람들이 개를 버리는 게 아니야. 개를 책임질 수 없는 상황이 되면, 나쁜 짓을 하게 되는 거지.(p79)’ 책임질 수 없는 상황이라.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말이다.
타고난 성향으로 보았을 때 내게는 동물보다는 식물이 더 맞는다. 선인장도 말려 죽이는 경이로운 손의 소유자였지만 재작년 여름 이후로 달라진다. 나의 손에서 식물이 살아나기 시작한 거다. 방학식을 하던 날, 교무실 창가에 있던 화분을 가져왔다. 그즈음 나는 교무실에서 매일 화분에 물을 주며 점점 피어나는 분홍색 꽃을 보는 재미에 빠져있었다. 방학이 가까워지자 혹시나 말라죽을까 염려되었다. 집으로 가져왔다.
앞 베란다에 놓고 열심히 물을 주었다. 그러다 무지하게 더웠던 며칠, 바쁘게 왔다 갔다 하다가 화분의 존재를 잊어버리고 만다. 방치된 화분은 태양의 열기에 타버린 듯 갈색으로 변해있었다. 갈색 잎을 하나하나 떼어냈다. 아래쪽 구석에 코딱지만 한 초록 잎 두어 장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얘네들이라도 살려보자. 미안한 마음으로 정성껏 물을 주었다. 며칠이 지난 뒤 나는 질긴 생명의 힘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니다.(p178)’ 어린이 독서 모임을 진행하며 아이들에게 물었다. 사람 이외의 존재를 생각나는 대로 열 가지만 말해보라고. 동물과 식물 이름이 술술 쏟아져 나온다. 열 가지 정도 이름대기는 까짓것 일도 아니다. 이런 생명들이 먹이사슬로 얽히면서 서로가 서로를 살리는 거야. 우린 모두 한 때는 살아있던 것들을 먹으며 살아가지. 오늘 아침과 점심 때 먹었던 음식들을 생각해봐. 어느 것 하나 생명이 아닌 것이 없지 않니? 샘~ 빵은요? 그건 살아있던 밀로 만들지. 밥은요? 살아있던 쌀로 만들잖아. 어? 정말 그러네요.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또 다른 생명을 먹을 수밖에 없지만 그들에게 늘 고마움을 잊지 말아야 해. 순진한 눈망울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주방 창가에는 4개의 작은 화분이 있다. 가끔 식물들이 살아 숨 쉬는 모습을 상상한다. 이 공간에 가족 이외에 숨을 쉬는 존재들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생명력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모든 생명이 타고나는 힘일까, 햇살과 바람과 흙과 물이 지닌 신비로운 기운이 합쳐져 생명을 지켜내는 걸까. 2년 전의 그 화분은 눈곱만 한 연두 잎이 서서히 영역을 넓혀가더니 되살아났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지금까지 주방 창가에서 풍성하게 잘 크고 있다. 새끼손톱만한 꽃이 번갈아 피어나며 여섯 장의 꽃잎을 흔든다.
정성껏 물을 주며 시든 잎을 떼어내건만 어쩐지 노비는 점점 생기를 잃어간다. 급기야 몸 전체가 연한 황토색으로 변했다. 가위로 이발을 해주었다. 아랫부분까지 메말라있었다. 그렇게 해놓으니까 봉분 같애. 그만 포기해요. 이미 죽었어. 물을 주는 나를 보며 짝꿍 샘이 다시 말씀하신다. 일주일만 더 키워 보려고요. 키운다는 표현이 무색하게 정지 화면처럼 미동도 않는 노비를 보면서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요즘 매일 아침 나의 눈은 현미경이 되어 노비를 구석구석 살핀다. 초록의 흔적을 한 점이라도 볼 수 있을까 숨을 죽이고 관찰한다. 질긴 생명의 힘을 엿본 경험이 노비를 보내지 못하는 마음으로 작용하는 걸까. 노비에게 물을 준 한 달여 넘는 시간이 압축되어 버티고 있는 뿌리 끝에 이슬 방울만한 생명으로 매달려있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