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의 독서 두번째 이야기 - 길을 안다는 것, 길을 간다는 것 여행자의 독서 2
이희인 지음 / 북노마드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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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나왔던 여행자의 독서도 읽었다. 책에 대해서 크게 기억에 남는 것은 없었고, 그저 그 책 덕분에 몇 권의 책을 알게 되었고, 읽고 싶어졌고, 읽었더니 정말 재미있었다. 두 번째 이야기가 나왔다기에 또 읽었다. 그리고 이 두 권의 책에 대해 정리가 되었다. 이 책은 자신의 존재 이유에 충실한 책이라는 것.

 

  이 책을 읽고 나서 다시 여행을 꿈꾸게 되었다.

여행의 아우라가 사라져 버린 시대에 살고 있다는 말 공감이 된다. 처음 TV로 본 남미 볼리비아의 유유니 사막은 정말 천상의 장소와 같았다. 그러나 여러 프로그램에서 몇 번 비슷한 장면을 보고 나니, 내가 볼리비아에 가게 되더라도 굳이 그 곳에 들르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주변에 여행가는 사람들도 많다 보니, 이야기만 듣고도 프랑스와 터키를 다녀 온 것만 같다. ‘내가 여기여기 가봤는데, 한국에 요즘 없는 게 뭐가 있어? 우리나라가 최고야. 집 떠나면 개고생이지.’하는 어설픈 체험담들을 듣노라면 어느새 여행은 괜한 고생이 되고, 길을 떠나고 싶은 꿈은 흐릿해지고, 내 일상의 온갖 그럴 듯한 이유들 때문에 여행은 잊혀 진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면 다시 여행을 떠나고 싶어진다. 비록 내가 간 그 장소가 내게 실망을 안겨 주더라도 여행은 어떤 곳을 향해 떠나는 것이 아니라 익숙해진 것으로부터 떠나는 용기임을 기억나게 한다. 더 좋은 곳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낯선 나를 만나러 가는 일임을 기억나게 한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새로운 책들을 읽고 싶어 좀이 쑤신다. 아룬다티 로이의 작은 것들의 신, 로빈턴 미스트리의 적절한 균형, 이오누에 야스시의 둔황, 요네하라 마리의 프라하의 소녀시대,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 스테판 츠바이크의 체스, 하인리히 뵐 카타리나 볼룸의 잃어버린 명예, 서머싯 몸의 , 존 맥스월 쿠체의 추락.

 

  이중에서도 당장 보고 싶은 책은 처음 나열한 두 권 인도의 책들이다. 첫 번째 여행자의 독서에서 알게 된 최고의 책은 파이 이야기, 슬럼독 밀리어네어였다. 둘 다 영화화되었는데 그 이유는 분명 탄탄한 이야기때문이었으리라. 이후 인도의 소설에 대해 궁금하던 터였다.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은 제목이 무척이나 직설적이다. 책 속에 부분 인용된 구절만으로도 책을 읽기가 두렵다. 그래도 제목을 읽는 순간 꼭 봐야할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취향에 따라서만 책을 골라 읽다보면 어떤 틀 속에서 맴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아는 작가의 책, 혹은 좋아하는 출판사의 시리즈를 찾아 읽다가는 어쩐지 다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뭔가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 한 단계 나아가려면 좋은 책 친구가 필요한데, 이 책이 그 역할을 한다.

 

  『여행자의 독서 두번째 이야기를 읽고 다시 여행과 독서를 열망하게 되었으니, 이 책은 그 존재 이유가 충분한 책인 셈이다.

 

  여행이나 독서의 즐거움은 가르칠 수가 없다. 둘 다 지금까지의 삶과는 조금쯤 다른 삶을 꿈꾸게 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닮았다. 가장 쓸모없는 일이기 때문에 가장 자유로울 수 있는 일이라는 점에서 닮았다. 또 게으른 자가 가장 부지런히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점에서도 닮았다.

 

  이번 여름, 여행 계획은 없지만 익숙한 것과 결별하고 새로운 나를 만나는 일은 어디서든 가능하다고 믿어 본다. 무더운 여름, 방학하는 두 아이들에게 세 끼의 밥을 해주면서도, 아무 짝에도 쓸 데 없는 논문을 쓰면서도.... 재미있는 책 몇 권이 옆에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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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스퍼 존스가 문제다
크레이그 실비 지음, 문세원 옮김 / 양철북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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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공간적 배경은 오스트리아의 작은 탄광 도시, 시대는 베트남에 파병을 하던 1960년대, 그리고 주요 인물은 열 다섯 살 제스퍼 존스, 그리고 이 소설의 화자인 열 네 살 찰리 벅틴, 찰리의 친구 제프리 루, 그리고 화자가 좋아하는 여자 아이 일라이저이다. 요약하자면 10대들의 성장소설이 되겠다.

 

  근데 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이 결코 만만치가 않다. 시작부터 충격적이다. 이야기는 일라이저의 언니 로라의 시체로 시작된다. 얼굴은 맞아서 부어 있고, 곳곳에 멍이 든 채로 나무에 목매달려 죽어 있다. 도대체 누가 로라를 죽였는지 그 진실에 한 발자국씩 다가가면서 어둡고, 거칠고 황량한 삶이 드러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자란다.

 

  아이들에게는 모두 결함이 있다. 제스퍼 존스는 원주민과 백인의 혼혈아이며, 알콜 중독자 아버지는 아들을 전혀 돌보지 않는다. 마을에 무슨 나쁜 일만 생기면 어른들은 제스퍼 존스를 의심한다. 찰리의 친구 제프리 루는 베트남 부모를 둔 아이이다. 게다고 몸집마저 작다. 제프리와 제프리네 가족은 마을에서 무시당하고, 때로는 폭행을 당하기까지 한다. 운동으로 모든 사회적 위치가 결정되는 학교 분위기에서 찰리는 운동을 못하고, 학점마저 좋아 걸핏하면 애들의 미움을 받는다. 일라이저의 아버지는 주지사이다. 그러나 언니 로라는 의문의 죽음을 당했고, 일라이저는 아무에게도 털어 놓을 수 없는 끔직한 비밀로 괴로워한다.

 

  열 네댓살의 이 아이들에게 사는 일은 그들이 즐겨하는 가설 놀이와 다를 것이 없다. 아이들끼리 빈둥대면서 죽을 때까지 똑같은 팬티를 계속 입을지, 아니면 일주일에 한번씩 개구리를 물어 뜯을지를 선택하는 멍청하고 웃긴 놀이가 가설 놀이인데, 이 아이들은 이 가설 놀이보다 더 멍청하고 웃긴 삶의 한 가운데서 결국 뭔가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제스퍼는 누명을 쓰든가 사랑했던 아이의 시체를 숨겨야만 하고, 일라이저는 아버지의 비밀을 폭로하든가 평생 자책감 속에 괴로워야 한다. 찰리는 친구의 부당한 따돌림과 폭력을 보고만 있든가 스스로 따돌림 당해야 한다. 이 아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가설 놀이보다 훨씬 더 어처구니없고 암담하다.

 

  아름다운 미봉책으로 이야기가 끝나지는 않는다. 진실은 밝혀지고, 매듭이 한두 개 풀리기는 하지만, 앞에 남아 있는 어둠은 깊다. 그래도 아이들은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진실과 대면할 용기임을 배운다. 어른들의 두려움과 비겁함을 알면서도 이 아이들에게 끝까지 멍청한 장난을 치고, 시시덕대며 농담할 수 있는 힘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이 아이들에게는 낯선 것을 두려워하고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다가가 들여다보는 호기심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좋은 성장 소설은 청소년 소설이 아니다. 성장은 청소년들만의 것이 아니며, 성장은 정해 놓은 틀 안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성장 소설이라는 공식 안에서 공산품처럼 만들어진 청소년들의 이야기가 아니어서 참 좋았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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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결혼했다 - 우크라이나어로 쓴 트랙터의 짧은 역사
마리나 레비츠카 지음, 노진선 옮김 / 을유문화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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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값은 어떻게 정해지는 것일까? 아빠가 결혼했다를 읽고 뒤편의 가격을 보니, 10,000. 내친 김에 최근에 읽은 소설들을 살펴보니, 하드커버에 큼직한 글씨에 여백의 미가 살아 있는 193쪽 짜리 소설도 10,000. 비슷한 판형의 280쪽 짜리 소설도 10,000. 최근의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 있는 주목받는 작가의 신간은 496쪽14500. 사용된 종이의 양에 비례하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책 값이 어떻게 정해지는 건지 갑자기 궁금했다.

  솔직히 어떤 책은 너무 쉽고 너무 빨리 읽혀 본전 생각이 날 때가 있다. 특히 소설이 그런데,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중고서점을 들락거리게 되었다. 소설가들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위해서라면 내 영혼을 조금쯤 팔 수도 있지 않을까 할 만큼 난 이야기를 좋아하지만, 내 스스로 한 줄의 이야기도 만들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그래도 한 삼 십년 넘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찾아 헤매다보면, 나름대로 눈은 높아지게 마련이다.

 

  서두가 길었다. 결론은 아빠가 결혼했다는 재미있는 책이었다. 10,000원은 너무 싼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좋은 책이었다. 제목이 좀 워랄까 시선을 끌려고는 했지만 비슷한 다른 제목의 책들 때문에 식상하다는 느낌을 준다.(책을 다 읽고, 이 책의 원제는 우크라이나어로 쓴 트랙터의 짧은 역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만약 그대로 번역을 했다면 내가 읽게 되었을까 의문이 들긴 했다.) 하지만 막상 읽어가면서 내가 어떻게 아무 정보도 없이 도서관의 그 많은 책들 가운데 이렇게 좋은 책을 골랐을까 스스로 대견해 했다.

 

  나데즈다는 어느 날 여든 네 살 된 아버지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그 내용은 아버지가 서른 여섯 살 난 여자와 결혼하겠다는 것.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2년밖에 지나지 않은 기간. 나데즈다 자신보다도 더 어린 여자와 결혼하겠다는 아버지의 전화 한통으로 다데즈다 집안의 온갖 묵은 귀신들이 폭탄을 맞고 파편처럼 터져 나온다.

 

  아버지의 상대는 우크라이나에서 관광비자로 영국에 들어온 발렌티나. 아버지도 발렌티나가 결혼하려는 이유가 여권, 비자, 취업허가증, 그리고 돈 때문일 거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아버지는 흡사 로켓발사대와 같이 큰 가슴을 지닌 발렌티나의 매력에 푹 빠져 버렸다. (푸핫, 로켓발사대라니...)

 

  겉으로 흘러가는 이야기는 뭐 그렇고 그렇다. 나데즈다와 언니 베라의 반대에도 아버지는 결혼을 감행하고, 돈을 요구하는 발렌티나 때문에 아버지는 궁지에 몰리고, 두 딸은 아버지를 위해 뭉친다. 결국 발렌티나는 첫번째 남편, 아들과 함께 우크라이나로 돌아간다.

 

  하지만 이 콩가루 집안의 정신 나간 여든 네 살 아버지의 결혼으로 러시아의 내전과 2차 세계대전 중의 우크라이나인들의 슬픈 역사가 생생히 살아나고, 나데즈다는 늘 정신 나간 듯이 말하고 행동하는 아버지, 죽은 어머니, 그리고 속물적으로 보이기만 하는 언니를 이해하게 된다. 라데즈다는 자신이 이런 가족들의 보호 속에서 현재의 삶을 누리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라데즈다는 이해가 깊어짐에 따라 아버지를 못살게 굴고, 욕을 퍼붓고, 심지어 때리기까지 했던 발렌티나의 뻔뻔함과 절박함조차도 이해하게 된다.

 

  물론 이 책의 미덕은 그 이해의 깊이 뿐만은 아니다. 시종일관 웃긴다. 라데즈다의 아버지는 어쩌면 천재일지도 모르는 엔지니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에 대해 의뭉스럽게 말을 돌려버리고, 침묵으로 일관하는가하면, 끊임없이 항공술과 비행기엔진, 트렉터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를 늘어놓고, 엉뚱한 고집을 부린다. 또 끊임없이 벨렌티나의 가슴에 집착하고, 발렌티나에게 키스와 심지어는 섹스마저도 요구한다. 아버지는 발렌티나가 누군지 모를 남자와 낳은 아이를 자신의 아이라고 우기기도 한다. 그 상황에 대처하는 가족들의 행동과 말이 정말 웃긴다.

 

  그런데 라데즈다와 언니 베라는 아버지가 미친 게 틀림없다고 함께 욕하면서도, 오랜 불화와 미움을 잊지 않았으면서도, 그들이 한 가족임을 잊지는 않는다.

 

  그러고 보면, 가족을 이루기는 참 쉬운데, 진짜 가족이 되기는 정말 어려운 일인 듯하다. 어쩔 때는 불가능한 일을 바라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곁에 있는 가족을 이해하는 게 힘든다. 그래도 포기하지는 말아야지. 이해하기를 포기하는 순간 더 이상은 가족이 아니니까 말이다.

 

  따뜻하고 유쾌한 이야기, 너무 쉽게 읽히는 소설 때문에 본전 생각을 했던 속물들에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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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먼 바닷가 어스시 전집 3
어슐러 K. 르 귄 지음, 이지연, 최준영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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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틱낫한 스님의 반야심경과 어슐러 르 귄의 어스시 시리즈 중 머나먼 바닷가를 읽고

 

  다시 뭔가 써보려고 한다. 뭔가를 열심히 쓰면 나는 달라질까? 알 수 없다. 그저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매일 매일 뭔가 써보려고 한다. (이런 결심을 어디 한두 번 했겠는가?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내년 2월까지 약 아홉 달 동안이다.)

 

  최근 아들에게 어슐러 르 귄의 어스시 시리즈를 읽어주게 되었다. 아들은 내게 영어책의 한 장을 읽어주고, 나는 그 대가로 아들에게 이야기책을 읽어 주기로 털컥 약속했다. 아들이 집어온 책이 어스시 시리즈였다.(!)

예전에도 어스시 시리즈를 읽으면서 작가가 동양 사상에 관심이 많은가 보다 생각은 했었다. 그런데 최근 틱낫한 스님의 반야심경을 읽고 머나먼 바닷가를 다시 보니, 어술러 르 귄이 반야심경을 소설로 풀어 놓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두 책이 같은 이야기로 읽혔다.

 

  어스시 시리즈의 주인공 게드는 1, 2권의 위업을 통해 로크 마법학교의 대현자가 되어 있었다. 어느 날 위대한 마법사이자 왕이었던 모레드의 후손이며, 인라드의 왕자인 아렌이 대현자를 찾아 온다. 아렌의 말에 따르면 최근 인라드 근방 북원해 섬들에서 마법이 사라져가고 있다고 했다. 마법사들은 더 이상 주문을 외우지 못했고, 마법의 말이 잊혀졌다고 했다.

 

  대현자는 아렌의 말을 심각한 일로 받아들이고 그 이유를 찾고자 아렌과 함께 긴 여행을 떠난다. 아렌과 대현자는 여러 곳의 섬에서 마법이 힘을 잃어버리고, 마법사들이 사라져버렸음을 확인하게 된다. 마법만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장인과 기술자들은 자신의 힘을 잃어버리고, 사람들은 더 이상 삶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사람들은 혼란에 빠지고 무기력해져 있으며, 질서는 사라져 버렸다. 대현자와 아렌이 이런 불길한 징조의 원인을 찾아 헤매는 동안 더없이 강력한 마법을 지닌 로크의 대마법사들도 혼란에 빠진다. 로크의 선생들이 주문을 외우지 못하고, 학생들은 마법을 불신한다.

 

  이 모든 불길한 징조의 근원에는 사람들의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강력한 힘을 지닌 마법사 거미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열어 스스로 영원히 죽지 않는 자가 되어 산자와 죽은 자의 왕으로 자처하고 있었다. 두려움을 이용하여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대가로 내어주고, 스스로 죽지 않는 삶을 열망하도록 충동질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두려움에 굴복하는 순간, 마법사는 마법을 잃게 되고, 사람들은 삶의 생기와 즐거움을 잃어버렸던 것이다.

 

  어리고 미숙했던 아렌은 거미를 찾아 다니는 중에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에 떨며 대현자에게 묻는다.

  “삶을 사랑한다면, 그 삶이 끝나는 건 싫지 않을까요? 어째서 불멸을 욕망해선 안 되나요?”

이 질문은 아렌만의 질문이 아니다. 살아 있는 모든 사람들의 질문이다. 우리는 삶을 사랑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 삶이 끝나는 것이 두렵다. 우리는 왜 죽어야 하는가? 죽음을 멈출 수는 없는가? 혹은 죽음을 늦출 수는 없는가?

 

  게드는 말한다.

  “둘이 하나를 이룬다. 세계와 명계, 빛과 어둠, 바로 균형의 두 기둥이지. 삶은 죽음으로부터 솟아오르고, 죽음은 삶에서 솟아난다. 서로 상극이면서 서로 열망하고, 상생하며 영원히 환생한단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모든 것이 환생하지, 사과나무에 핀 꽃이며 별들의 빛이……. 삶 속에 죽음이 있고 죽음 속에 다시 태어남이 있다. 그러면 죽음이 없는 삶이란 무엇이겠느냐? 변화 없는 삶, 영영 지속되는, 끝없는 삶이란? 그게 죽음이 아니고 뭐겠느냐? 영원한 죽음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삶을 사랑하고 열망하는자, 죽음도 사랑하고 열망하라!

 

  『반야심경은 말한다.

  “()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색과 다르지 않으니 색이 곧 공이고 공이 곧 색이니라. (), (), (), () 또한 이와 같느니라. 모든 법이 공()으로 표시되니 그들은 생겨나거나 파괴되니 않느니라. 불결하거나 성스럽지 않으며, 늘지도 줄지도 않느니라.”

 

  틱닛한 스님은 말한다.

  “하늘을 유유히 거닐던 구름은 마침내 비가 되어, 떨어져 내리면서 노래하고, 미시시피 강의 일부가 되거나 아마존 강의 일부가 되며, 채소 위로 내리거나 우리 몸의 일부가 되기도 하는데, 이러한 모험이 그에게는 매우 즐거운 일일 것입니다. 또한 구름은 자신이 비가 되어 대지 위로 떨어져 내리면 바닷물의 일부가 될 수도 있을 거라는 사실을 알기에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직 인간만이 두려워할 뿐입니다.”

 

  『반야심경에서는 그래서 결국 고통이 없고, 고통의 원인도 없고, 고통의 멸함이 없고, 멸하는 길도 없고, 이해도 없고, 얻을 것도 없느니라.”고 선언한다.

 

  소설 속 주인공 위대한 현자 게드는 반야심경의 진리를 이미 깨닫고 있다. 반드시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에 순응하고, 죽음을 피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게드의 힘은 거미의 힘을 넘어선다. 게드는 거미를 죽음으로 돌려보내고, 자신이 가진 모든 마법의 힘을 쏟아 부어 삶과 죽음 사이에 벌어진 구멍을 닫은 후 기진하여 쓰러진다. 게드의 곁을 지키던 아렌의 충직함이 게드과 아렌 자신을 죽음으로부터 구해낸다.

  세상은 다시 균형을 찾았다. 모든 힘을 다 쓰고 마법을 잃은 게드는 위대한 용 칼리신을 타고 고향 마을 곤트로 돌아간다.

 

  대현자의 위대한 마법도 삶과 죽음을 바꿀 수 없다. 남의 죽음은 물론 제 스스로의 죽음을 막을 수 없다.

  그러나 어스시의 세상에서 마법은 한 존재를 온전하게 드러나게 하는 힘이다. 존재의 진짜 이름을 불러 준다는 것은 존재를 온전히 보고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 그럴 때에야 그 존재에게 마법은 행해진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수없이 많은 이름을 부르고 말을 하지만, 온전히 그 존재의 참모습을 보고, 그에 딱 맞는 진짜 이름을 부를 수 있을 때에만 우리의 말은 존재에게 힘을 발휘한다.

 

  틱닛한 스님은 말한다.

  “통찰은 그저 밖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참되게 이해하기를 바란다면 단지 서서 바라보기만 할 것이 아니라,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 그들과 하나가 되어야만 합니다. 누군가를 이해하기를 원한다면, 그들이 느끼는 대로 느끼고 고통도 함께 겪고 기쁨도 함께 즐길 수 있어야만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도 마법이 가능함을 이야기한다. 대상을 통찰하고,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을 때 나의 말은 그 대상에게로 가서 꽃이 되어 피어난다. 이것이 마법이 아니고 무엇일까? 죽음을 두려워 말라, 사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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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조건 - 하버드대학교. 인간성장보고서, 그들은 어떻게 오래도록 행복했을까?
조지 E. 베일런트 지음, 이덕남 옮김, 이시형 감수 / 프런티어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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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 읽고, 뭔가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생각에 책꽂이에 꽂아 두지 못한 책이다. 웬만하면 이러다가도 슬그머니 다른 책의 재미로 옮아가곤 했었는데....  
  

  마음에 걸리는 점 두 가지

  우선 제목. 처음 이 책을 친한 사람에게 권유받았기에 망설임 없이 읽었지 그냥 제목만 봐서는 들추지 않았을 책이다. 너무 노골적인 제목? 새로운 게 없을 듯한 느낌? 그렇고 그런 자기 계발서가 아닐까하는 의심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책을 두 번 읽은 지금, 이 제목 말고 뭐가 또 있을까 싶기도 하다.

  다음으로 전향적 연구(prospective study)라는 단어. 이 단어가 이해가 안 되어 고민을 좀 했다.
  이 책에서 ‘전향적 연구’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 책에서 이런 점을 여러 번 강조하고 있다. 내가 짐작하기에 이 단어는 매우 다양한 의미로 쓰이고 있는데, 20대에서 부터 60년에 걸쳐 오랜 기간 정기적인 연구, 설문, 건강진단, 직접 면담, 그리고 전문가들의 실증적인 관찰, 주변 사람들과의 면담 게다가 전문가들의 선입견을 배제하기 위해 과거의 관찰이나 면담에 참여했던 사람의 기록을 전혀 보지 않고 다른 전문가의 투입 등등을 모두 포괄하고 있다.
  그런데 국어 사전에 ‘전향적’이란 단어의 뜻은 <어떤 대상에 대한 태도가 긍정적인. 또는 그런 것. ‘앞서 감’, ‘적극적’, ‘진취적’으로 순화>라고 나와 있다. 순화를 권유하고 있는 단어로 굳이 번역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스러웠다. ‘적극적 연구’로 번역하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었다.  
   

  내용면에서는 참 많은 생각거리를 준 책이다.
  주어진 운명이라는 게 있더라도 그럼에도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인가? 폭력적이거나 무관심한 부모, 비참한 환경, 평균에 한참 못 미치는 지능 등 개인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조건에도 불구하고 개인은 행복해질 수 있는가?
  연구의 결과에서 추측할 수 있는 결론이 ‘그렇다’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물론 그 반대의 조건일 때 건강하고 풍요로운 노년을 맞을 가능성이 더 높은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 또한 가능성일뿐 그 어떤 조건도 행복한 노년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흰머리카락에 깜짝깜짝 놀라는 40대에게 추천하다.  행복하게 늙어 가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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