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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스퍼 존스가 문제다
크레이그 실비 지음, 문세원 옮김 / 양철북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공간적 배경은 오스트리아의 작은 탄광 도시, 시대는 베트남에 파병을 하던 1960년대, 그리고 주요 인물은 열 다섯 살 제스퍼 존스, 그리고 이 소설의 화자인 열 네 살 찰리 벅틴, 찰리의 친구 제프리 루, 그리고 화자가 좋아하는 여자 아이 일라이저이다. 요약하자면 10대들의 성장소설이 되겠다.
근데 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이 결코 만만치가 않다. 시작부터 충격적이다. 이야기는 일라이저의 언니 로라의 시체로 시작된다. 얼굴은 맞아서 부어 있고, 곳곳에 멍이 든 채로 나무에 목매달려 죽어 있다. 도대체 누가 로라를 죽였는지 그 진실에 한 발자국씩 다가가면서 어둡고, 거칠고 황량한 삶이 드러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자란다.
아이들에게는 모두 결함이 있다. 제스퍼 존스는 원주민과 백인의 혼혈아이며, 알콜 중독자 아버지는 아들을 전혀 돌보지 않는다. 마을에 무슨 나쁜 일만 생기면 어른들은 제스퍼 존스를 의심한다. 찰리의 친구 제프리 루는 베트남 부모를 둔 아이이다. 게다고 몸집마저 작다. 제프리와 제프리네 가족은 마을에서 무시당하고, 때로는 폭행을 당하기까지 한다. 운동으로 모든 사회적 위치가 결정되는 학교 분위기에서 찰리는 운동을 못하고, 학점마저 좋아 걸핏하면 애들의 미움을 받는다. 일라이저의 아버지는 주지사이다. 그러나 언니 로라는 의문의 죽음을 당했고, 일라이저는 아무에게도 털어 놓을 수 없는 끔직한 비밀로 괴로워한다.
열 네댓살의 이 아이들에게 사는 일은 그들이 즐겨하는 ‘가설 놀이’와 다를 것이 없다. 아이들끼리 빈둥대면서 ‘죽을 때까지 똑같은 팬티를 계속 입을지, 아니면 일주일에 한번씩 개구리를 물어 뜯을지’를 선택하는 멍청하고 웃긴 놀이가 ‘가설 놀이’인데, 이 아이들은 이 ‘가설 놀이’보다 더 멍청하고 웃긴 삶의 한 가운데서 결국 뭔가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제스퍼는 누명을 쓰든가 사랑했던 아이의 시체를 숨겨야만 하고, 일라이저는 아버지의 비밀을 폭로하든가 평생 자책감 속에 괴로워야 한다. 찰리는 친구의 부당한 따돌림과 폭력을 보고만 있든가 스스로 따돌림 당해야 한다. 이 아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가설 놀이’보다 훨씬 더 어처구니없고 암담하다.
아름다운 미봉책으로 이야기가 끝나지는 않는다. 진실은 밝혀지고, 매듭이 한두 개 풀리기는 하지만, 앞에 남아 있는 어둠은 깊다. 그래도 아이들은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진실과 대면할 ‘용기’임을 배운다. 어른들의 두려움과 비겁함을 알면서도 이 아이들에게 끝까지 멍청한 장난을 치고, 시시덕대며 농담할 수 있는 힘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이 아이들에게는 낯선 것을 두려워하고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다가가 들여다보는 호기심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좋은 성장 소설은 청소년 소설이 아니다. 성장은 청소년들만의 것이 아니며, 성장은 정해 놓은 틀 안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성장 소설이라는 공식 안에서 공산품처럼 만들어진 청소년들의 이야기가 아니어서 참 좋았던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