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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발걸음 - 풍경, 정체성, 기억 사이를 흐르는 아일랜드 여행
리베카 솔닛 지음, 김정아 옮김 / 반비 / 2020년 10월
평점 :
품절
지도로 그려질 수 없는 어떤 땅에 시간과 기억이 펼쳐져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371p
리베카 솔닛의 작품이라 무척 기다려졌다. 하지만 마음의 발걸음은 저자의 그것과는 다른 의미로 쉽지 않은 걸음이었음을 고백한다. 역자 후기를 읽어보니 그도 가벼운 산책이라 예상했으나 아니었다고 말한다. 아일랜드라는 나라가 생소 했고, 리베카 솔닛의 문학과 철학의 깊이를 헤아리기엔 나의 앎의 모자랐기 때문인 듯하다. (가톨릭 국가, 기네스, 베케트 정도가 머릿속에 떠오를 뿐이다.) 아일랜드의 지도를 펼쳐놓고 지리적 특성을 상상하며 세계사, 역사, 문학과 철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저자의 논지를 파악하며 책을 읽으려면 서평을 쓰기까지 남은 일주일이 촉박할 것 같다. 하지만 전문적 서평이라기보다 독자의 입장에서 책을 소개하는 데 목적을 두고 글을 써보기로 했다.
원제목은 A BOOK OF MIGRATIONS. 제1장부터 5장까지는 아일랜드의 역사와 문화에 관한 저자의 설명이 가득하다. 더블린, 자연사박물관, 패트릭성당 등의 위치를 이동하며 저자의 의식의 흐름대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6장부터는 아일랜드의 서해안을 따라 걷는 여행이다. 풍경이나 아름다운 주변 환경의 묘사가 있으리란 기대는 무너졌고 지역명이 낯선 나는 급기야 아일랜드의 지도를 검색하기에 이르렀다. 사진과 지도 한 장없는 여행 에세이라니! 15장 <은총>의 예를 들면 웨스트포트의 은둔자를 찾아가는 이야기가 나온다. 아일랜드 서해안 작은 도시인 웨스트포트에 대한 설명은 단 세 줄뿐. 나머지는 웨스크포트에서 유명하다는 그레이스 오말리(해적여왕, 아일랜드의 강한여성의 아이콘) 에 연관된 스토리가 이어지고 있다. 은둔자 - 그레이스 오만리와 15장의 제목 은총은 무슨 상관이 있는걸까? 은총보다, 웨스트포트보다 강하게 머리에 남은 부분은 더블린과 코크의 '성 패트릭의 날 퍼레이드에는 게이, 레즈비언의 참여를 막지 않는다'는 한 줄. 같은 곳을 보면서도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하는 게 '아는만큼 보인다'라는 문구가 아닌 '아는만큼 다르게 보인다'로 이해되었다. 안다는 건 그냥 표면적인 앎이라기보다 한 주제에 관한 깊은 통찰과 관심, 오랫동안 실천하여 몸에 익히게 된 것이다.
17개 각장의 주제를 염두하고 리베카 솔닛이 걸었던 도시와 풍경을 상상하며 읽어내려간다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할 수 있을 것 같다. 특별히 아일랜드에 대한 애정으로 보이는 깊은 혜안, 사유, 날카로운 해석은 아마 그가 1986년 아일랜드 국적을 갖게된 것과 깊은 관련이 있을 거란 생각도 해본다. 걷기의 인문학(구 걷기의 역사)로 만난 솔닛은 나에게 진정한 역할모델이 되어 주고있다. 1997년, 그러니까 걷기의 인문학보다 4년 전에 이 책이 쓰여졌다니 놀랍다. 만일 솔닛의 작품을 접해보지 않은 독자라면 <걷기의 인문학>을 먼저 만날 것을 추천한다. 문학, 철학, 환경, 생태, 문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의 다음 작품 출간이 벌써 기다려진다.
옆자리 여자가 창턱을 잡더니 내 앞으로 상체를 숙였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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