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01 #시라는별 15 

정든 유곽에서 
- 이성복 

1
누이가 듣는 음악音樂 속으로 늦게 들어오는
남자男子가 보였다 나는 그게 싫었다 내 음악音樂은
죽음 이상으로 침침해서 발이 빠져 나가지
못하도록 잡초雜草 돋아나는데, 그 남자男子는 
누구일까 누이의 연애戀愛는 아름다워도 될까
의심하는 가운데 잠이 들었다

목단牧丹이 시드는 가운데 지하地下의 잠, 한반도韓半島가
소심한 물살에 시달리다가 흘러들었다 대목伐木
당한 여자女子의 반복되는 임종臨終, 병病을 돌보던
청춘靑春이 그때마다 나를 흔들어 깨워도 가난한
몸은 고결하였고 그래서 죽은 체했다
잠자는 동안 내 조국祖國의 신체를 지키는 자는 누구인가
일본日本인가, 일식日蝕인가 나의 헤픈 입에서
욕이 나왔다 누이의 연애戀愛는 아름다워도 될까
파리가 잉잉거리는 하숙집의 아침에

2
엘리, 엘리 죽지 말고 내 목마른 나신裸身에 못박혀요
얼마든지 죽을 수 있어요 몸은 하나지만
참한 죽음 하나 당신이 가꾸어 꽃을
보여주세요 엘리, 엘리 당신이 승천昇天하면
나는 죽음으로 월경越境할 뿐 더럽힌 몸으로 죽어서도
시집 가는 당신의 딸, 당신의 어머니

3
그리고 나의 별이 무겁게 숨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혈관 마디마다 더욱
붉어지는 신음呻吟, 어두운 살의 하늘을
날으는 방패연, 눈을 감고 쳐다보는 까마득한 별

그리고 나의 별이 파닥거리는 까닭을
말할 수 있다 봄밤의 노곤한 무르팍에
머리를 눕히고 달콤한 노래 부를 때,
전쟁戰爭과 굶주림이 아주 멀리 있을 때
유순한 혁명革命처럼 깃발 날리며
새벽까지 행진行進하는 나의 별

그리고 별은 나의 조국祖國에서만 별이라 
불릴 것이다 별이라 불리기에 후세後世
찬란할 것이다 백설탕과 식빵처럼 
구미口味를 바꾸고도 광대뼈에 반짝이는 
나의 별, 우리 한족韓族의 별​


‘이성복 시집을 다 읽어버리겠어!‘ 라고 야무진 다짐을 했으나 시인의 첫 시집을 읽다 좌절 중이다. 뭣보다 모르는 한자가 . . . 한자가 . . . 왜 이렇게 많단 말인가. 시 한 편 읽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꺼꺼이~~~~

1980년에 출간된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는 당시 문단에 신선한 충격을 안긴 시집이었다고 한다. 시 문법의 과감한 파괴, 번뜩이는 비유, 화려한 수사, 연상 작용을 통한 이미지 연결이 주된 특징이라는데 . . . . . . 잘 모르겠다. 어쨌든 이 시집은 황지우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최승자의 <<이 시대의 사랑>>과 더불어 1980년대 한국 현대시의 방향 전환을 이끈 시집으로 꼽힌다.

<정든 유곽에서>는 이 시집에 실린 두 번째 시로 1977년 계간 《문학과 지성》 겨울호에 처음 발표된 시인의 등단 작품이기도 하다. 이성복 시인은 1952년생이니 26세경에 쓴 시다. 시인의 등단작이자 대표작이어서 반복해 읽었으나 시가 정말 우러러볼 수만 있을 뿐 언제 가 닿을지 모를 ˝까마득한 별˝ 같다. 고통의 별빛. 내게는 이해하기 벅차 고통의 별이나 ˝별이라 불리기에 후세後世 / 찬란˝한 별로 지금까지도 반짝거리는 시집이다. 2016년 1월의 통계에 따르면 51쇄를 찍었고 6만 7천부가 판매된 스테디셀러 시집이다. 현재는 몇 쇄까지 찍혔는지 모르겠다.

2에 등장하는 ‘엘라‘는 헬라어 표기로 ‘나의 하나님‘ 이라는 뜻이다. 시편과 마태복음에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예수가 골고다 형장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가면서 하신 말씀으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는 의미이다. 이 뜻을 찾아보고 다시 읽으니, 우리 인간은 ˝목마른 나신裸身˝으로 세상에 나서 삶이라는 십자가를 지고 살다 그 십자가에 못 박히는 ˝참한 죽음˝을 맞고 별이 될 존재들이지 싶다. 까마득히 멀어 빛이 보이지 않더라도 별은 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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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03-01 03: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좌절이요...제 참을성 없음에....˝목단˝을 여태, 목련 꽃으로 평생 그렇게 알아왔네요. 시 읽닥 계속 막혀서 단어 찾는데...설마했던 목단이 그 목련이 아니었어요^^:;;;

행복한책읽기 2021-03-01 09:28   좋아요 1 | URL
ㅋㅋㅋ 동질감 대열에 합류해주셔 넘 반가워요. 지는 목단을 찾고도 목단???이 머지 했더니, 아 글쎄 화투장 중, 새와 꽃이 함께 있는 그 목단이더만요. 화들짝. 먼 옛날 울엄니가 목단!!이요 외치던 소리가 아스라이 들렸답니다^^

scott 2021-03-01 11: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 시 넘 슬퍼여 ‘나의 별, 우리 한족韓族의 별​‘삼일절에 읽는시 그리고 역쉬 행복한 책읽기님에 멋진 사진 맨마지막 사진 순간 윤동주 시인이 마지막으로 숨을 거둔 그곳으로 착각함 ㅠ.ㅠ

행복한책읽기 2021-03-01 16:05   좋아요 1 | URL
역쉬 scott님은 시를 읽는 눈이 밝다니까요. 저도 이 시가 우리의 슬픈 역사의 한 면을 시적으로 형상화했다고 느껴져요. ‘정든 유곽에서‘라는 제목부터가 짠하잖아요. 왜 하필 유곽이냐고요. 우린 결국 제 몸 팔아 돈을 벌어야 하는 존재들 아닙니까요. 그런 존재들이 사는 세상이니 유곽일 밖에요. 그런 세상인데도 몹쓸 놈의 정이 든다지요. 그런데. . . 저희 집이 후쿠호카 구치소가 돼버린 겁니까 ㅋ ^^

희선 2021-03-02 00: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영랑 시에 <모란이 피기까지는>이 있잖아요 모란이 바로 목단... 이걸 알았는데, 저도 댓글 보고 목단이 목련이 아니던가 하는 생각 잠시 했네요 오월이면 지나다니는 길에서 보고는 했는데... 모란이든 목단이든 별로 안 써서 잊어버렸나 봅니다(목단이라 하면 목 매단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이건 예전에 한 생각이군요) 이 시집 예전에 봤는데, 제가 제대로 봤는지 어땠는지 하나도 생각나지 않네요 어렵다고 생각했을지도... 삼일절, 그런 거 생각도 안 하고, 삼월인데 비 많이 오고 어딘가에는 눈도 온다니 하고 다른 우울한 생각을 했네요 지금 사람이 그렇지요


희선

행복한책읽기 2021-03-02 15:09   좋아요 1 | URL
어머나 모란이 목단이었어요?? 세상에나 만상에나. 저 이제야 알았어요. 희선님 고마워요. 세상에 모르는 거 천지이긴 하나 모란이 어떻게 생긴 줄도 모른 채 시를 외웠다니. ㅠㅠㅠ. 입시교육 폐해. 모란을 작약이랑 비슷해 목작약이라고도 부른다네요. 꽃이 화려합니다. 색으로 보면 목단은 장미과 목련은 백합과에 가깝네요.
목 매단다, 햐 그리 생각도 되겠네요. 좀 무섭지만 짱이심^^ 고마워요. 희선님 덕에 죽기전 모란을 알고 가게 됐어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