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스 오브 원더 레이첼 카슨 전집 4
레이첼 카슨 지음, 표정훈 옮김, 닉 켈시 사진 / 에코리브르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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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봄날 아침에 울려 퍼지는 새들의 노래를 듣지 못한 채 아이가 자라도록 내버려두지 말자. 아이의 새벽 단잠을 깨워서라도 바깥으로 나가보자. 100

 

새벽 6시에 일어나 깊이 잠들어 있는 아이들을 서둘러 깨우고 텐트를 접었다. 새벽부터 잠들어 있는 인간에게는 시끄러울 정도로 새들이 우는 소리가 요란스러웠다. 거기다 텐트가 날아갈 것 같은 바람 소리와 마치 내 머리맡에서 출항하는 배의 엔진 소리까지. 잠은 거의 한숨도 못 잔 게 맞다. 그럼에도 이 시간에 일어나 본 게 얼마 만인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비몽사몽해 하는 아이들을 겨우 차에 데려다 놓고, 남편과 텐트며 의자며 많은 짐들을 부지런히 정리했다. 여름 아침이었지만 꽤 쌀쌀했고, 아이들에게 자연을 조금이나마 느끼게 해 주었다는 뿌듯함은 있었지만 노동의 댓가는 꽤 많았다. 그리고 이 장소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 자연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대부분의 어린이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것들을 잘 볼 뿐만 아니라, 그런 것에서 기쁨을 느낄 줄 안다. 아마도 어른인 우리보다 작아서 땅과 더욱 가깝기 때문이 아닐까. 87

 

도시에서 아이들이 일상을 살아가면서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것들을 발견해서 기쁨을 느끼는 일이 얼마나 있을까? 도시라는 환경적인 요인도 있겠지만 아예 그런 기쁨을 발견하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것들이 더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디어, 바쁜 스케줄, 공부 등등 아이들이 흙으로 된 길을 보고 걸을 시간도 부족할 것이다. 그래서 주말이라도 아이들에게 자연을 느끼게 해주고 싶은데 오히려 평일보다 더 방치한 느낌이 들 정도로 집에만 있던 시간들이 많았다. 그래서 주변 지인들에게 물어물어 텐트를 비롯한 캠핑용품을 사서 아이들을 데리고 바깥으로 나갔는데, 수고롭지만 좋았다. 가족 중 한 명이라도 만족한다면 기꺼이 해도 되는 수고로움이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자연을 조금이나마 느끼게 해 주었다는 데서 오는 평안함이 그 모든 과정을 힘든 줄 모르게 해치우게 했다.

 

늘 자연과 가까이하는 그러한 기쁨은 과학자들만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땅과 바다와 하늘, 그리고 그 모든 것이 간직하고 있는 놀라운 생명의 경이에 자신을 기꺼이 내맡길 줄 아는 우리 모두에게 열려 있다. 126

 

이 책은 레이첼 카슨이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에 <우먼스 홈 컴패니언>이란 잡지에 기고한 글을 단행으로 펴낸 것이다. 제목을 의역하면 당신의 자녀가 자연에서 놀라움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라(Helping Your Child to Wonder)’ 정도라고 하는데 옮긴이는 ‘Helping’이라는 표현이 부모가 강요하는 것과 거리가 멀다고 했다. 레이첼 카슨도 이 글을 통해 아이들을 돕는 것, 거드는 것을 말했을 거라고 말이다. 그래서인지 카슨이 조카의 아들인 로저와 집 주변의 숲과 바닷가를 거닐고, 밤에도 서슴없이 자연을 관찰하는 모습이 평안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이 책은 레이첼 카슨이 생전에 꼭 마무리 짓고 싶어 한 바로 그 책이다.’라는 초대의 글에서 삶의 마지막까지 이 책에 전념하면서 이 책을 접하는 어른과 어린이 들이 자연에 대한 감수성을 풍부하게 기르기 바랐고, 만일 그렇게 된다면 생명 세계를 위협하는 행동을 삼가리라 믿었다.’는 데서 오는 마음이 뭉클했다.

 

이 책을 읽으며 인간이 늘 자연을 파괴한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던 마음을 조금이나마 내려놓고 자연을 느끼고 싶은 용기를 얻었다. 그래서 가족과 자연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다 캠핑을 떠올렸고, 긴 수고로움이 될지라도 조금 더 자연 깊이 들어갈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랐다. 자연을 이용하는 경험이 아니라 자연과 융화되어가는 시간들이 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그리고 그런 경험이 우리 가족 모두에게 깊은 감수성이 되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좀 더 유연한 마음을 갖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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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과 나
이소영 지음 / 글항아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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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푹 자고 일어나서 밖을 보니 날씨가 너무 좋았다. 아이들을 깨워서 학교에 보내고 베란다 문을 활짝 열었다. 1층이어서 그런지 풀 냄새가 가득 올라왔다. 얼마 전에 화단 풀을 깎은 듯한데 그래서인지 풀냄새가 더 좋았다. 간단하게 주방과 거실 정리를 하는데, 문득 '음악을 좋아하면 좋은 나를 위해 스피커를 사서 음악을 들어보라!'는 말이 떠올라서 책장 맨 아래 먼지가 켜켜이 쌓인 오디오를 꺼냈다. 오래전에 선물로 받은 중고 오디오인데 음악을 듣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 스피커 소리가 좀 왔다 갔다 하지만 잘 맞추면 그럭저럭 들을 만했다. 오디오 세트를 거실 텔레비전 옆으로 꺼내서 음악을 틀었다. 오디오 안에 클래식 음반이 들어가 있기에 그대로 재생시켰다.

음악을 들으며 집안 여기저기 묵은 먼지를 닦아내니 나름대로 능률이 올라왔다. 간식을 조금 먹고 창가에 있는 책상에 앉아 이 책을 꺼냈다. 오래전에 읽다 만 책이었는데, 현재 모든 상황들이 이 책을 떠오르게 했다. 오랜만에 다시 꺼낸 책이었는데도 마치 얼마 전에 읽다 만 책처럼 저자의 글은 친근했고 좋았다. 오래도록 관찰해서 식물을 세밀하게 그려내야 하는 저자의 차분한 내면을 들여다 보는 게 마치 식물 곳곳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내가 매일 살아내야 하는 평범한 하루처럼 어디선가 식물들도 제각각의 삶을 살아내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기록들이었다.

모두가 각자의 역할을 해내고 있는 한여름 숲속에서, 제각기 다른 생물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오늘도 힘을 얻는다. 작은 풀 한 폭의 기록 일지라도 세상에 무가치한 일은 없다는 것을, 긴 관찰의 여정에서 배운다. 107쪽

처음에는 저자의 직업이 생소했다. 식물세밀화가라는 직업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식물을 세세히 관찰하고 그려내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저자가 관찰하는 식물의 대상이 되고 싶다는 엉뚱한 생각이 든 적도 있었다. 누군가 나를 저렇게 세세히 관찰하고 기록해 준다면 부담스러울 것 같으면서도 존재감만으로도 충만할 것 같은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저자는 자신이 하는 일을 소개해 주는데 ‘식물을 소재로 사유를 담거나 아름다움에 목적을 두고 그린 그림이 식물화라면 식물세밀화는 과학 안에서, 식물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그려지는 해부도라고. 그러니 오로지 식물의 형태에만 집중해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그려야 하는 그림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이런 설명을 들으니 내가 해부되고, 객관적으로 바라봐져야 한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식물들에게 배울만한 점이 많은 부분에서 누군가에게 객관화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럼에도 식물들은 살아온 삶을 거리낌 없이 낱낱이 드러내는 반면, 내 삶의 오점들이 낱낱이 드러날 것 같은 기분에 자꾸 나를 식물화하는 혼란스러움이 우습기도 했다.

사람들이 신기하게 생겼다며 좋아하거나, 무섭게 생겼다며 기피하는 벌레잡이식물의 형태가 내게는 어쩐지 참 슬프게 느껴진다. 다른 식물들에선 보지 못했던 그들의 기이하고 생소한 형태는 생존을 위한 몸부림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166~167쪽

이런 면은 슬프게도 인간과 비슷한 점이 많은 것 같다. ‘생존을 위한 몸부림’은 각자 누구나 있지 않을까? 인간이라면 내면의 몸부림은 각자 하나쯤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일이 되었든, 습관이 되었든 나도 그런 모습이 하나쯤 있지만 식물처럼 매 순간 치열하지는 못했다. 기이한 형태가 될까 겁내거나 타인을 의식하느라 생존을 위한 몸부림에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게 식물 앞에서 조금은 부끄러워졌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항상 이렇게 부끄럽고 작아지는 기분만 들었던 건 아니다. 우리나라 참질경이에 대한 부분을 읽는데 잊고 있었던 어릴 적 기억이 떠올랐다. 저자가 작업실 근처의 질경이를 관찰하다, 잎맥이 특이해 잎을 반으로 자르니 그 안에서 다섯 개의 실줄기가 액체와 함께 나왔다고 했다. 시골 두메산골에서 자란 나는 어린 시절 놀잇감이 없어서 자연에서 늘 찾곤 했는데, 질경이의 그 질긴 실줄기를 이용해 제기를 만들어 가지고 놀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질경이의 줄기를 잘라도 실줄기가 나오는데 여러 잎의 실줄기끼리 엮으면 단단한 재기가 되었다. 누가 더 풍성하고 단단한 제기를 만드는지 내기도 하고, 잎이 시들때까지 반나절은 너끈히 놀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미안해지기도 하지만 내 어린시절 한 부분을 차지해준 질경이가 고맙게 느껴진다.

저자는 식물만큼이나 인간도 다른 생물의 공격을 당하기 쉬운 수동적인 존재라고 말한다. 오히려 식물은 우리보다 강하며, 오랜 시간 끈기 있게 변화하여 지능적으로 대응할 방법을 강구해낸다고 한다. 또한 밟히면서 더 먼 곳으로 나아가는 질경이에 저자는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 직업의 특성상 저자와 나의 관점은 다르지만 다른 의미로 질경이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공통점으로 충분히 위안을 얻었다. 내가 내 자신에게 가장 잘 못하기에 바라는 점이 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봐 주길 바라는 것처럼 식물들도, 이 세상 모든 것들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법을 배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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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상페
장자크 상페 지음, 양영란 옮김 / 미메시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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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이 책을 들고 다녔다. 책이 읽히지 않은 시기였고, 책을 읽어야 할 이유가 생기지 않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그랬으니 아무리 책을 들고 다녀도 글자들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고 애정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봤던 저자의 그림도 감흥이 없었다. 그러다 나만의 시간이 너무 없는 것 같아서 주말 저녁 혼자서 이 책을 들고 카페에 갔다. 평상시 같으면 후루룩 읽어 버릴 책을 얼마 동안 읽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어서 달랑 이 한 권만 들고 갔는데, 금세 읽어버렸다. 문득 시계를 보니 카페 문 닫을 시간이 30분이나 남아 있었다. 여분의 책을 들고 오지 않아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 책을 시작으로 다시 책을 읽을 힘을 생겼다.

 

이 책은 그가 자주 찾았고, 어쩌면 일생을 보낼 수도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미국에 대한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197

 

옮긴이의 설명처럼 여기에 실린 삽화들은 예전에 그려진 것들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상페가 쓴 글이 아닌 상페와 함께 일한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상페에 관해 쓴 글들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바라본 상페의 다양한 모습을 만날 수 있다. 특히 기억에 남았던 삽화들인 센트럴 파크를 그려낸 작품들이었다. 지금 보고 있으면 너무나 당연한 풍경 같은데 상페가 이 삽화들을 그려낼 당시만 해도 센트럴 파크는 우범지대였다고 한다. 그래서 흥미로운 일화 중 하나는 상페의 이런 삽화가 공개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센트럴 파크의 리모델링을 담당할 그룹이 생는데, 그들이 상페가 보여 준 삽화와 비슷하게 공원을 탈바꿈 했다고 한다. 상페가 센트럴 파크에 엄청난 꿈을 심어준 셈이다.

 

오늘날 그리니치빌리지가 예전 같지 않다는 건 나도 잘 안다. 보보스들은 다른 곳으로 떠나고 없다. 모든 것은 변했다. 본래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이니까. () 재기 넘치는 상페의 그림과 노래는 길이 남아서 이 전설적인 거리에, 우리의 젊은 날의 거리에 여전이 울려 퍼질 것이다 78

 

이 책은 장자크 상페 별세 1주기를 추모하며, 상페가 미국을 여행하며 그려 낸 작품과 그를 기리는 칼럼들을 함께 엮은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배경만 미국으로 바뀌었을 뿐이지 상페 특유의 매력들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그럼에도 이 책이 좀 더 특별하게 여겨지는 것은 언어와 문화가 다른 미국이란 나라에서 기꺼이 도전한 것이다. 1969년의 여름, 미국이 달 표면에 내딛는 첫발자국의 현장에도 상페가 있었다. 케이프케네디 특파원의 글의 끝에는 , 상페, 자네의 펜과 붓으로 자네가 경험한 아폴로호를 우리에게 보여 주게나.’라고 되어 있다. 글로도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상페 역시 자기만의 색깔로 드러내는데, 상페 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인을 비롯한 전세계인의 감동을 끌어내는 무언가가 아니라 상페가 해석한 달 탐사에 대한 그림들은 상페다웠다. 그래서 더 좋았다. 그에게 우주는 현재의 우리그리고 인간이 연결된 것으로 느껴졌다. 우주도 내가 존재해야 존재의 이유를 찾을 수 있으니까. 내 멋대로의 해석일지라도 인간의 존재감을 소소하고 현실적으로 그려낸 그림들이 우주라는 공간보다 더 광활했다.

 

내가 왜 상페의 그림들을 좋아하는지 생각해 본다. 엮은이는 거창하고 고매한 세상이 아니라 소소하고 자잘한 소시민적 세상인 만큼, 많은 독자와의 공감 가능성은 더욱 커 보인다.’라고 했는데 나도 마찬가지다. 공간적, 문화적 차이만 있을 뿐이지 상페가 우리나라의 정서를 그려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다. 하지만 상페가 전달하는 것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일상에서의 행복. 게으름을 피우며 느지막이 일어나 과일을 조금 먹고, 좋아하는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1악장 알레그로 모데라토/정경화(바이올린)’의 연주를 들으며 다시 상페의 삽화를 들춰보고 짤막한 느낌을 쓰는 이 시간이 나에게는 오늘 하루의 행복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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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버텨!
장자크 상페 지음, 양영란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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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손길을 주지 않았던 책장에서 네 권의 책을 뺐다. 그리고 이 책을 가장 먼저 읽었다. 책 제목이 나에게 하는 말 같았기 때문이다. 전에는 와닿지 않았던 책 제목이 오늘따라 내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오랜만에 만나는 저자 특유의 유머와 그림들이 나를 평안하게 해주었다. 내가 요즘 들어 방황했던 이유가 일상을 잃어버려서였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오롯이 마주할 힘. 그 힘을 나는 오랫동안 외면하고 있었다.

난 요즘 들어 혼자서 말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진다는 걸 깨달았어. 22쪽

혼자 말하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었다. 집에서도 혼잣말을 자주 하지만 밖에서도 종종 내 생각에 빠져 혼잣말을 하다 당황한 적이 몇 번 있었다. 아무도 없는 줄 알고 지하 주차장에서 무언가를 기억해 내서 큰 소리로 말했는데, 입구에서 사람이 걸어왔다. 또 중얼거리며 분리수거를 하는데 경비아저씨가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발견했던 때처럼 혼자서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그런 내가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저자의 그림들을 보고 있으니 단단해진 내 마음을 예전에 느꼈던 평안함이 비집고 들어와 빈틈을 만들어 주었다. 평범한 사람들과 평범한 배경을 내세워 돋보이게 만드는 일. 그들의 얼굴과 내면을 모두 일일이 기억하지 못하지만, 거리의 일상을 그대로 그려낸 것 같아 그 모든 게 삶의 일부분처럼 느끼게 해주는 힘이 있다. 특이한 동작을 하고 있는 여자가 그려진 전시회를 보고 나오는 부인이 하는 “난 어째 몸이 좀 얼얼해.” 라던지 사람이 바글바글한 루브르 박물관에 걸려 있는 <모나리자>를 멀찍이서 냉소적인 표정으로 “어쨌거나 굉장히 프로 같긴 하네!” 라는 글을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위안을 받는 것 같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안도감과 평범함에서 오는 공감일지는 몰라도 생각이 돋보일 수 있음에 생기를 얻었다고 해야 할까? 획일화되지 않은 감상평에서 살아있음을 경험했다면 이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게 저자가 그려내는 일상의 매력이고, 특별함이다.

뭐라고? 이제 겨우 시작되어 외울 것도 없는데, 역사 시험에서 빵점을 받았다고? 37쪽

이런 그림과 글은 허를 찌른다. 구석기 시대를 연상하게 하는 그림에서 아빠가 아이의 시험지 같은 무언가를 보며 하는 말이다. 그 아래 아이들은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저 시대에 시험과 종이와 글이 있었냐, 역사가 이제 겨우 시작되었다는 걸 어떻게 아냐는 의문의 진지함을 제외한다면 방심하고 있다 무심코 책장을 넘기는 독자에게 한 방 먹이는 것 같은 작품이다. 그렇다고 이런 신선한 발상만 표현한 것이 아닌 인간 내면의 속물적인 부분도 가감 없이 드러내는 그림도 있는데, 그런 기질을 나 또한 버릴 수 없어서인지 오히려 시원하게 드러내는 그들이 멋져 보이기까지 했다.

거기에 아무런 글도 없는 몇몇 그림도 독자로 하여금 대화하고 있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지금처럼 온 들판이 녹음으로 뒤덮인, 시골길 어디선가 보았을 그런 풍경에 죽어가는 나무가 서 있는 그림이 있다. 거기에 정원사 같은 사람이 그 나무를 쳐다보며 조리개를 들고 발을 꼬며 생각에 잠겨 있는데, 아무런 말이 없지만 여러 가지 대화가 가능하게 한다. 평범하게 따지면 “저 나무는 왜 죽어가지?”부터 저자의 시선으로 본다면 “너무 일찍 옷을 벗었군!” 정도가 될까? 익숙하지만 낯섦을 맞닥트리는 시선이 공존하는 듯한 기분도 좋다. 때론 이해할 수 없는 그림과 정서에 맞지 않는 대화와 생각의 나열들이 있어도 그대로 수용한다. 저자의 모든 글과 그림을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욕심이며, 이해보다는 마음으로 느끼는 게 또 다른 매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제 꺼내보아도 평안한 게 저자의 작품집이고, 그런 평안한 분위기가 내 기억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어서 다시 살아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당분간은 구매하고 읽지 않는 저자의 작품을 좀 아껴서 만나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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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틋하고 행복한 타피오카의 꿈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수피 탕 그림,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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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과 수업 사이에 잠깐 비는 틈에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준비했다. 에어프라이기에 치킨 텐더를 굽고, 냉장고에서 상하거나 오래된 반찬을 모두 버렸다. 된장국과 콩나물 불고기를 데우고 싱크대에 나와 있는 플라스틱 그릇은 씻고, 나머지는 식기세척기에 넣었다. 그러면서 틈틈이 부엌과 식탁을 정리한다. 수업 시작 30분 전, 에어프라이기에서 치킨 텐더가 익혀졌고 학원을 갔던 첫째가 돌아왔다. 따뜻한 치킨 텐더를 주고, 곁에서 나는 이른 저녁을 먹었다. 시간이 들쭉날쭉한 나의 일 때문에 언제부턴가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 저녁을 먹게 되었다. 그래서 주말에는 꼭 한 번은 외식을 한다. 함께 둘러앉아 밥을 먹는 게 그립기도 하고, 주말만큼은 밥 짓기에서 해방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멋진 일이든 슬픈 일이든, 마치 재해처럼 강력한 힘으로 찾아와 인생의 흐름을 뒤집어 놓을 수 있다. 너무 강력하게 멋진 것은 거의 슬픔과 비슷할 정도로 힘겨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것이야말로 인생이고, 우리가 살아 있는 존재라는 증거다. 18쪽

살아 있는 존재라는 감각은 매일 다양하게 느끼고 있다. 먹어야 하고, 자야 하고, 가족들을 위해서 부지런히 집안을 정리하고 돌아다녀야 하고, 일도 해야 한다. 그럼에도 내 마음을 짓누르는 고민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때면 내 인생이 흔들리는 것 같다. 이게 살아 있는 증거라면 그전처럼 무던한 일상이기를 바라고 바라보지만 이내 불가능하다는 것도 안다. 그저 살아내야 하는 수밖에. 그 안에서 의미를 다시 되새기는 수밖에.

저자는 아픈 어머니를 대신해 어릴 때 주로 밥을 지어주던 아버지와의 추억을 떠올린다. 함께 시작에 가서 장을 보고 온 일이며, 뿌리채소를 살 때면 택시를 타고 돌아오고, 재료를 남기고 싶어 하지 않는 아버지의 성향에 따라 음식은 달라도 내용물은 거의 똑같은 음식을 먹었던 기억이다. 예를 들면 시금치나물, 시금치 된장국, 시금치 계란 볶음 등이라고 할 때 나와 비슷해서 웃음이 났다. 요리를 잘하지 못하고, 큰 관심이 없는 나도 그런 적이 많다. 콩나물무침을 하면서 콩나물국을 끓이고, 미역국을 끓이면서 미역무침을 한다. 내 머릿속에 있는 음식을 만드는 방법이 다양하지 않을뿐더러 시간도 절약되기 때문이다.

처음 갓난아기가 옆에서 잠들었던 날, 어제까지 없었던 귀여운 인간이 불쑥 이 세상에 나타난 것이 여전히 놀라워, 하염없이 잠든 얼굴을 보고 있었던 일. 작은 손을 살며시 만졌던 일. 46쪽

그리고 저자는 자연스레 아버지의 음식에서 아이와의 추억으로 넘어간다. 한참 성장기인 내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분명 나도 저런 적이 있는데 언제 그랬나 싶을 정도로 어색하다. 저자는 모유를 쉽게 끊었다고 했지만 나는 두 아이 모두 모유를 힘들게 떼었고, 오랫동안 엄마의 젖가슴에 집착하는 아이들이 힘겨웠다. 그러면서도 모유를 떼어버렸을 때의 서운함이 기억난다. 모유를 먹이는 일은 무척 힘들었지만 그것이야말로 내가 살아있는 기분이 드는 일 중의 하나였다. 내 몸을 통해 한 생명이 살아가게 만드는 일. 감격스럽고, 신비롭고, 내 존재의 이유 같았다. 그런 다음 모유를 떼버린 아이를 볼 때마다 시원섭섭하고, 내 품에 안겼던 아이가 그립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가 커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이고, 이제는 자기 방에서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보며 앞으로는 더 멀어질 일만 남았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그럼에도 그런 아이가 내가 해 준 음식 하나만이라도 소울푸드로 기억해 주면 정말 고마울 것 같다는 생각을 늘 한다.

네가 연인과 먹는 밥이, 언젠가 ‘가족’이 먹는 밥이 되기를. 그리고 그 축적이 둘도 없는 지층이 되어 너의 인생을 빚어 가기를. 가능하면 그 인생이 행복하기를. 72쪽

함께 앉아 밥을 먹는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가장 행복하다. 그럼에도 얼마나 그 사실을 잊고 살았을까? 밥을 준비하는 과정을 지겨워하고, 다 먹은 뒤에 치워야 하는 상황을 힘들어하고, 먹고 사는 게 왜 이렇게 빡빡한가 한탄을 하기도 했던 시간들이 당연한 것 같으면서도 미안해진다. ‘인생은 한 번밖에 없으니 가능하면 행복한 편이 좋다. 가능하면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게 먹는 편이 좋다.’라는 저자의 마지막 말은 나에게도, 앞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꾸려갈 내 아이들에게도 해 주고 싶은 말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나부터 노력을 쥐어짜야 한다. 요리에 재능이 없으니 남들보다 더 노력해야 하고, 시간과 돈을 더 들여야 한다. 대만 일러스트레이터 수피 탕이 그려낸 따뜻한 식탁만큼은 아니겠지만 나름대로 건강과 정갈함이 어우러진 식탁에 가족과 함께 둘러앉아 있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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