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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틀맨 & 플레이어
조안 해리스 지음, 박상은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젠틀맨 & 플레이어』은 저자가 교직생활을 하며 얻은 경험에서 영감을 얻어 탄생한 작품이다. 처음에는 그저 학교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서스펜스 장르라 생각하고 흥미를 가졌다. 그 흥미가 책 두께는 보는 순간 흔들릴뻔 했지만(진심으로-_-) 문학동네 출판사의 이름에 힘입어 읽기 시작했다. 초반에는 '나'라는 화자가 2명이 번갈아가면서 나와서 조금 헷갈렸다. 물론 비슷한 이름들도 한 몫 한듯. 읽다보니 검정 체스와 화이트 체스가 다른 '나'를 지칭하는 뜻이라는 걸 깨닫게 됐다. 검정색은 스트레이틀리, 화이트는 핀치벡.
우선 ‘젠틀맨 & 플레이어’는 크리켓에서 유래한 말이다. 2차대전 이전의 영국 정상급 크리켓 경기에서는 선수들을 ‘젠틀맨’과 ‘플레이어’로 구분했는데, ‘젠틀맨’은 보수 없이 경기에 참가하는 유한계급의 아마추어 선수를, '플레이어'는 보수를 받고 뛰는 직업 선수를 지칭하는 말이다. 제목이 시사하는 바처럼 이 아이가 부와 명예와 전통의 상징인 영국의 한 유서 깊은 사립학교에 동경과 질시를 품고 그 세계에 도전하는 이야기이다.
기본틀은 이러하지만 그 속에 담긴 내용은 상징적이면서도 병적이다. '핀치벡'이라는 아이는 하위계층의 대표상징, '세인트오즈월드'는 상위계층의 대표상징이다. 핀치벡이 성인이 되어 돌아와 세인트오즈월드를 순식간에 망가뜨리는 모습은 돈의 힘에 의해 운영되어져 부패되고 썩은 최상위층을 비웃는듯 했다. 하지만 최상위층은 살짝의 동요만 있을뿐 애꿋은 선생들만 다친다. 어찌보면 현실과 정말 잘 맞지 않을까? 공격해도 실제로 얻어맞고 터지는 사람은 최고위층이 아니라 그 바로 아래에서 멍멍거리며 열심히 뒤쫓는 사람이더라.
두번째로 '핀치벡'이라는 아이를 보니 병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고, 이혼 가정에서 살아왔다. 상위계층에 대한 선망과 질투가 가득하고 자격지심 또한 만만치 않았다. 핀치벡을 보면 얼마나 자신이 인정받고 싶었는지가 절실히 들어난다. 아버지에게, 어머니에게, 리언에게, 마지막으로 스트레이틀리에게. 핀치백은 자신을 어머니에게 보낸 후 자살한 아버지에게 버려졌다고 느낀다. 어머니는 자식을 낳치 못해 핀치벡에게 혼신을 다하다가 새 아기가 생기면서 핀치벡을 버린다. 핀치벡은 진작에 자신이 버려졌단 사실에 대해서 알고 있었지만 결국 태어난 동생 덕분에 더 처절하게 깨닫게 된다. 자신은 진정으로 인정받고 사랑받지 못했다고. 그리고 자신이 사랑했던 리언에게 사랑받고 싶었으나 결국 마지막에 모든 정체를 들키며 모든 것을 부정당한다.
자신을 알아주길 바랬던 세 사람이 죽고 나머지 한 사람이 남았다. 자신을 처음으로 알아챈 스승인 스트레이틀리. 그래서 핀치벡은 세인트오즈월드에 돌아온듯 했다. 그가 세인트오즈월드로 온 목적에는 상위계층에게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고, 리언에 대한 복수, 그리고 세상에 대한 복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목적은 자신을 인정받기 위한 것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어릴때 그렇게 세인트오즈월드를 다녔지만 그 누구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다. 성인이 되어 돌아온 세인트워즈월드에서 또한 마찬가지이다. 뒤에서 그렇게 많은 일들을 벌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 '투명인간.' 바로 그 글자가 어울린다고 해야할까. 그랬기에 자신을 제발 알아봐주길 바라며 스트레이틀리를 압박했을지도 모르겠다. 또한 얼마나 인정 받고 싶었으면 그렇게까지 했을까라는 생각에 연민의 마음이 든다.
인간이란 무섭다. 사랑을 받기 위해, 자신을 모습을 인정받기 위해서 그 많은 일들을 펼치는 것을 보면 무서우리만큼 섬뜩하다. 마지막에 스트레이틀리씨를 살린 건 자신을 알게 된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였을까. 그리고 왠지 핀치벡은 그 어떤 누구도 죽이지 않았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기도 했다.
이 책은 특별히 흥미진진하고 스릴 넘치는 장면은 없었지만, 몰입감이 있고 다음 내용이 궁금해지는 책이었다. 마지막을 제외하면 드라마적인 요소가 강하고 잔잔한 느낌의 이야기였다. 게다가 마지막에 몇페이지를 안 남겨두고 입이 벌어졌다. 반전의 반전. 어느 정도 예상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예상을 완전 뒤집는 반전이 나온다. 이 반전에 대해서는 기대를 해도 좋다는 생각이 든다. 이 작가의 딴 책도 읽어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