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읽었던 어떤 책에 나온 책읽기의 방법중 '체인리딩'이라는 책읽기 방법이 있었다. 체인스모커에서 따온 말인듯한데, 책을 읽다가 그 책에 나온 책을 읽고, 또 그 책에 나온 책을 읽고...를 반복하는 것이다.
뒤늦게 모리미 토미히코의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를 읽고 있다. 그냥 재미만 있는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몇가지에 대한 중편소설들이 무지 발랄하고 재미나다. 예를 들면 밤, 술에 관한 표제작이기도 한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나 책, 헌책에 대한 '심해어들'이나 ..
'심해어' 를 읽다가 재미난 글이 있어 메모해본다.
"저기, 형님."
소년이 갑자기 작은 소리로 말하며 가느다란 팔을 들어 보이지 않는 요요를 당겨 올렸다 놓았다 하는 듯한 몸짓을 했다.
"아버지가 옛날에 나한테 말했어. 이렇게 한 권의 책을 들어 올리면 헌책시장이 마치 커다란 성처럼 공중에 떠오를 거라고. 책은 모두 이어져 있기 때문이라는 거야."
"뭔 소리야."
"형님이 아까 본 책들도 그래. 연결시켜볼까?"
"해봐."
"처음에 형님은 <셜록 홈즈 전집>을 봤어. 저자인 코난 도일은 SF라 할 <잃어버린 세계>를 썼는데 그건 프랑스 작가 쥘 베른의 영향을 받은 거였어. 그 베른이 <아드리아 해의 복수>를 쓴 건 알렉산더 뒤마를 존경했기 때문이야. 그리고 뒤마의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일본에서 번안한 것이 <요로즈초호>주간을 했던 구로이와 루이코인데, 그는 <메이지 바벨탑>이라는 소설에서 작중 인물로 등장해. 그 소설을 쓴 야마다 후타로가 <전중파 암시장 일기> 속에서 '우작'이라는 단 한마디 말로 참수시킨 소설이 <귀화>인데 그걸 쓴 것이 요코미소 세이시. 그는 젊은 날 잡지 <신청년>의 편집장이었는데 그와 손을 잡고 <신청년>의 편집에 관여한 편집자가 <안드로규노스의 후예>를 쓴 와타나베 온. 그는 업무상 방문한 고베에서 타고 있던 자동차가 전철과 충돌하여 죽게 되지. 그 죽음을 <춘한>이라는 글로 추도한 것이 와타나베에게서 원고를 의뢰받았던 다니자키 준이치로. 그 다니자키를 잡지에서 비판해 문학 논쟁을 전개한 것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인데 아쿠타가와는 논쟁 몇 개월 후에 자살을 해. 그 자살 전후의 모습을 모티브로 우치다 햣켄이 <중산모자>를 썼고 그 우치다의 글을 칭찬한 것이 미시마 유키오. 미시마가 스물두 살 때 만나서 '나는 당신이 싫다' 하고 맞대놓고 말한 상대가 다자이 오사무. 다자이는 자살하기 일 년 전에 한 남자를 위해 추도문을 써서 '너는, 잘했다'라고 했어. 다자이에게서 추도사를 받은 남자는 결핵으로 죽은 오다 사쿠노스케야. 봐봐, 저기 그의 전집을 읽는 사람이 있어."
소년이 가리키는 곳에는 아까 말한 평상이 있고, 기모노를 입은 여성이 우산을 쓰고 읽는 건 분명 오다 전집 중의 한 권이었다.
"너 혹시 요괴 아니냐?"
세상의 모든 책은 연결되어 있어서 내가 책 한권을 들어올리면 세상의 모든 책들이 한꺼번에 공중에 떠오른다.
우왕- 멋짐!
이책 저책 찍접대다보면, '오, 이런 우연이' 싶은 일들이 종종 있다.
지금, 내가 벌려놓은 책들...



<위대한 박물학자>를 읽고 있다. 21세기북스에서 나오는 비쥬얼시리즈 1탄이다.
박물학.이란 말의 정의부터 확인해보았다.
박물학 [博物學, natural history]
동물·식물·광물 등 자연물의 종류·성질·분포·생태 등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좁은 뜻으로는 동물학·식물학·광물학·지질학의 총칭이다. 그러나, 현재에는 이들 각 과학이 고도로 분화 발달하였기 때문에 자연사(自然史)가 주로 쓰이고 있다.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박물학이 영어로 natural history <위대한 박물학자>의 원제는 The Great Naturalist
내가 사랑해 마지 않는 다이앤 애커먼의 <감각의 박물학>의 원제는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
언젠가 이 책이 박물관학쪽에 있었다며 투덜거렸는데, 영 틀린건 아니였다. 박물학에 대한 아주 간단하고 기초적인 정의를 보고 나서 다이앤 애커먼의 책을 떠올려보니, 음.. 그렇군.. 하는 기분.
<위대한 박물학자>를 엮은이는 로버트 헉슬리.
런던 자연사 박물관 식물학부 표본실장이다. 자연사 표본실 북아메리카연합의 위원회 위원이며, 자연사 표본 보존협회의 회장을 역임. 한스 슬론 경이 17세기와 18세기에 걸쳐 수집한 소장품들의 일부를 전담 관리하고 있으며, 17세기및 18세기의 박물학을 알리기 위한 저술 및 방송 활동을 하고 있다.
로버트 헉슬리씨의 직업을 보니, 스피벳씨가 생각났다.
<스피벳>의 스피벳은 자연사를 좋아하고, 그림/삽화/도해를 그리기 좋아하는 열네살의 천재(?) 소년이다.
스미소니언 박물관을 찾아가는 모험 이야기는 아홉살난 아이들의 필독서!라고 누가 그랬는데, <위대한 박물학자>도 그러하다. 물론 나는 아홉살과는 거리가 멀지만, 모험을 꿈꾸고 열정을 느끼는건 아홉살박이만이 아니라 아흔아홉살이라도 와이낫.
<위대한 박물학자>는 일단 삽화가 너무 멋지다.
<박물학>에 대한 나의 지식은 너무나 미미하고, 동물,식물,광물, 지질등을 연구하는... 학문은 살짝 과학알레르기 있는 나에게 삽화에도 불구하고 재미날리 없.... 다고 생각했는데, 삽화를 보는 재미뿐만 아니라 글도 재미나다.
고대의 아리스토텔레스부터 19세기 다윈까지 39명의 박물학자들에 대해 각각에 대해 짧게는 세장에서 대여섯장까지의 짤막하게 나와 있다. <스피벳>을 떠올리며 책을 읽어나가다보니, (재미난 삽화가 많다. printed in China인건 어떤 의미일까? 종이질과 퀄러티에 책장 넘기는 감동이 있다.) 또 떠오르는 책. 아, 이런거 얼마전에 읽은 책에 나왔던...
플리니... 도 있는데... 하는데, 마침 나온 플리니우스! 아, 신기해-!
로버트 해리스의 책은 <임페리움>과 <폼페이>를 읽어보았는데, 두 권 다 읽고 나서 곱씹어보면 더 재미있는 책이다.
<임페리움>에서의 키케로 캐릭터를 무척 좋아하는데, <폼페이>역시 흥미진진한 캐릭터들로 가득차 있다. 다만, 중심 캐릭터들이 좀 약한 것이 아쉽. 읽은 직후보다 지금 생각하니 더 재미나고 흥미로운 등장인물이었던듯. 무튼, <폼페이>에서 주인공 외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캐릭터가 플리니였다. 폼페이 화산폭발중에 죽은 플리니는 방대한 분량의 <박물지>를 쓴 것으로도 유명하다. 자연사 관찰에 대한 그의 열정에 대한 묘사가 <폼페이>에 나오는데, (실제 로버트 해리스는 서른 몇권의 박물지를 다 읽었다고) 이치가 주인공이거나, 이치를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도 있었음 좋겠다 싶었는데,
<위대한 박물학자>에서 소설 속의 플리니가 아닌 '박물학사'속의 플리니, 플리니우스를 만날 수 있어 급흥분
플리니우스가 폼페이 폭발 중에 조카와 함께 관찰을 위해 건너갔다가 죽은 이야기가 물론 나오고
조카가 쓴 삼촌의 사생활에 관한 재미난 이야기가 인용되어 있다.
"동이 트기 전부터 일을 시작했고, 구할 수 있는 책들을 모두 읽었고, 읽은 책마다 발췌했으며, 공부를 하지 않고 보내는 시간은 모두 낭비하는 시간으로 여겼다고 전했다. 플리니우스가 책을 손에서 놓는 때는 오직 목욕물에 푹 잠겨 있을 때뿐이었고, 목욕을 끝내고 나서 몸을 문질러 닦자마자 책을 집어 들 정도였다고 한다. 또한 일분일초가 아까워 걸어 다닐 때조차 책을 들고 다녔단다."
<위대한 박물학자>를 다 읽는 동안 얼마나 더 많은 책들이 들어올려질지 벌써부터 설레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