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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를 사랑했네 - 개정판
안나 가발다 지음, 이세욱 옮김 / 북로그컴퍼니 / 2016년 12월
평점 :
절판
리뷰를 보고 재출간된 책을 다시 읽고 리뷰를 써 줄 수 없냐는 연락을 받았다.
안나 가발다의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 다. 아, 그 책. 이전 리뷰를 찾아보니 딱 십년전의 리뷰다.
다른 것보다도, 십년전의 내가 읽었던 '사랑' 책을 지금의 내가 다시 읽어본다는 것이 맘에 들었다. 십년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고, (두 번 변했다) 십년 전에는 없었던 것을 지금은 내 옆에 꽁꽁 가지고 있으니깐. 사랑을 모르던 내가 읽었던 책과 사랑하는 내가 읽는 책은 좀 다르겠지. 싶었다.
내가 기억하던 내용과 중요 플롯이 완전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람핀 남편에게서 두 딸을 데리고 시아버지와 함께 가족별장에 온 것은 맞다. 그리고, 시아버지의 사랑 이야기를 듣는 것도 맞는데, 나는 그 다음을 완전 다르게 기억하고 있었다.
시아버지는 지난 10여년 동안 슈퍼마켓에 발을 들여놓은 적이 없다고 했다.
언제나 혼자서 쇼핑 카트를 밀고 다녔을 시어머니.
어디를 가든 언제나 혼자였을 시어머니.
무뚝뚝한 시아버지. 이전에 이 남자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리뷰를 봐도 짐작도 안 간다.
같이 살고, 같이 먹는데, 왜 장 한번 같이 안 봤을까. 장을 본 적도 없고, 장을 같이 본 적도 없고.
좋아할만한 구석이 없는 남자가 겁을 내고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놓친 회한을 듣는 것인데, 좋아할만한 구석이 없긴 하지만, 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아쉬움에 대한 이야기는 공감할 수 있었다.
해외 출장중에 일로 만난 여자를 사랑하고, 해외출장을 만들어 그 여자와 유럽 곳곳을 누비며 사랑을 하지만, 거기까지. 아내도 애인도 선택하지 못하고, 어영부영 세월을 보내고, 사랑을 떠나보낸다. 떠나보내는 것도 비겁하다.
사랑 앞에서라면, 자존심도, 비겁함도 우습지 않으나, 용기 내는 척 했다가, 자신 앞에 나타나준? 핑계를 덥썩 붙들고, 자위하는 것은 꼴불견이다.
"그런 셈이야. 더 정확하게 말해서, 그녀의 남편이었던 장 폴 자르메 때문이지.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 사람이 없었다 해도 나는 떠나지 않았을 거야. 또 다른 핑계를 찾아냈을 테니까 말이야. 신의가 없는 자들은 핑곗거리를 찾아내는 데에 아주 능하거든. 아주 능하고말고."
이 책에서 다시 봐도 기억에 남는 문구가 있다.
우리는 상처투성이가 되었을지언정 오랜 친구 같았단다.
우리 둘이서 방금 커다란 돌덩이 하나를 들어 올렸다가, 돌덩이 아래에 우글거리는 것들이 너무나 흉측한 나머지 곧바로 그걸 다시 내려놓은 느낌이 들었어.
아내가 불륜을 알게 되지만, 얘기하게 되지만, 결국 시간이 뭔지. 상처투성이의 오랜 친구 같았다고 말한다.
돌덩이 아래 있는 흉측한 것들은 그냥 돌덩이를 다시 내려놓으면 되는걸까? 거기 뭐가 있는지 서로 아는데, 그럼 그걸로 되는걸까?
사랑은 하지만, 놓치는 멍청이. 그것이 사랑이든 무엇이든.
나는 늘 생각한다. 마음이 식는 것만은 어쩔 수가 없다고.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것도 어쩔 수가 없다고. 둘이 동시에 열렬해지는 건 기적과도 같고, 마약과도 같아서, 그런 사람이 나타난다면, 보내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 사랑하니깐. 사랑이 식은 후에, 그것이 사랑은 아니었다고 생각된다면, 그리고 내가 여전히 그를 사랑한다면, 다시 받아줄 수도 있을 것 같다. .. 라고 말은 하지만, 나의 질투력은 보통이 아니니, 실제로 그런일이 생기게 된다면, 어떻게 할지 나도 모르겠다. 그리고, 내 마음이 왜 안 식고, 계속 뜨거워져만 가는지도 모르겠고.
"우리는 언제나 남아 있는 사람들의 슬픔에 대해서만 말하지. 하지만 떠나는 사람들의 괴로움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니?"
너무 이기적이고 뻔뻔한 말이다. 이전의 나는 그렇게 생각했을지 모른다. 지금의 나는 애인이 나에게 헤어지자고 했던 것을 힘들어하고, 괴로워한 것을 알고 있다. 내가 너무 죽을 것 같아서 그 상처를 치료해주지 못했어서 마음 한구석에 미안함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애인에게도 아내에게도 만족감을 주지 못한 남자가 아들이 막 바람피워서 떠난 며느리 앞에 대고 할 소리는 아니지!
남자는 자신의 아들이 다른 여자를 사랑하고, 아내와 자식들을 떠나는 이야기에서 자신의 과거를, 자신이 놓친 과거를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다. 그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은 아들이 떠난 것을 힘들어하는 며느리이지만,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였을 것이다. 혹은 속내를 이야기하지 못한채( 하지만, 아마 다 알았을 것 같은 ) 떠나보낸 마틸드에게 하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가족관계, 남녀 다 덜어내고 보는 것이 가능하다면,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후회의 연속이다. 생각해보니, 이전 리뷰에도 이런 어정쩡한 글을 남겼던 것 같다.
이 이야기는 마틸드(시아버지의 애인이었던, 시아버지를 사랑했던, 그러나 떠나기로 했던) 의 이야기로 다시 읽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