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원
아사다 지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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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철도원'을 묘사하는 가장 맘에 드는 글귀는 산케이 신문에 났던 글이다.
'철도원'에는 줄곧 눈이 내리고 있다. 혹은 문장 뒤켠에서 눈을 느낄 수 있다. 그 추위는, 인생의 그것과도 비슷하다.

영화 철도원을 먼저 보고, 책을 봤다. 단편이었고, 두시간이 넘었던걸로 기억되는 감정과잉의 영화와는 사뭇 틀린 느낌이었다. 아사다 지로의 첫소설집은 참으로 대단해서, 이 사람 야쿠자가 안되고 작가가 되길 천만다행이다. 는 생각이 절로 든다.

표제작이기도 한 '철도원' 은 일본에서 그리고 '러브레터'는 한국에서 이미 '파이란'이란 영화로 만들어져서 잘 알려져 있는 원작이기도 하다. 철도원으로 자라서, 철도원으로 살다가 철도원으로 죽는 한 외곬수 남자의 이야기. 눈이 소복하게 쌓이고, 인생의 괴로움이 쌓이고, 또 눈이 쌓이고, 또 후회가 쌓이고, 눈이 쌓이고, 아쉬움과 못다한 사랑이 쌓이고...
'철도원' 이외의 삶을 생각지 않았던 정년퇴임을 앞둔 오토마츠씨는 호로마이역에서의 마지막밤에 큰 선물을 받는다.

'러브레터'는 한 양아치가 돈 받고 위장결혼해준 중국여자의 '편지'를 받으면서 굳게 딱쟁이져있던 마음을 풀어내는 이야기이다. '이곳은 모두 친절합니다. 조직 사람도 손님도 모두 친절합니다. 바다도 산도 아름답고 친절합니다. 계속 이곳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셰셰(謝謝). 그것뿐입니다. 바닷소리가 들립니다. 고로씨, 들립니까? 모두 친절합니다. 하지만 고로 씨가 제일 친절합니다. 나와 결혼해주었으니까요. 셰셰. 많이 셰셰. 안녕히 주무세요. 파이란'  타국에서 몸을 팔러왔지만, 자신의 남편이라는 그 남자의 사진과 이력을 외우며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 사랑에 마지막까지 기대게 된다. 결국 그 마음은 러브레터를 통해 삼류양아치였던 그에게 전해진다.  너무 늦게.

다른 모든 단편들도 따뜻하다. 가족의 정. 사람의 정을 각각의 짧은 단편안에 감동적으로 녹여내고 있다.
단 한작품 '캬라' 만은 다른 단편들과 색을 좀 달리하는데, 그 색 또한 나는 참 좋더라. 연애소설같기도 하고, 스릴러 같기도 하고, 환상소설같기도 하고.

별다른 조사 없이 술렁술렁 쓰여졌을 것 같은 이 책은 그렇기에 더욱더  아사다 지로가 타고난 글쟁이임을 보여주고 있다.

스릴러만이 눈을 못 떼게 하는건 아니다.
이 책 역시, 짧은 호흡으로 감정의 클라이막스를 지날때까지, 눈을 못 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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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春) 2006-02-07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은지 오래 됐다고 이걸 먼저 읽고, 철도원을 봤는지 그게 기억이 안 나네요. 하지만, 여지껏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책이에요.

한솔로 2006-02-07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사다 지로의 단편의 조밀한 센티멘탈리즘은 중독되기 쉬운 유혹이 아닐까요.

하이드 2006-02-07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독되기 쉬운이라.. 또다른 생각거리를 던져주고 가시는군요. 한솔로님.
하루님, 장미도둑보다 이 책이 더 나은것 같아요. 따뜻한 기억으로 남고, 나중에 다시 읽어도 또 좋을 것 같아요.

한솔로 2006-02-07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의미에서의 중독성을 말씀드린 겁니다.^^
"나 오늘 울기 싫은데, 어응, 아사다지로가 나를 울려버리네" 이런 정도의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