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변부인 김승옥 소설전집 4
김승옥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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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랄까, 무진기행의 단편들 속 현란한 언어들에 허우적 대다가 이 책을 읽으면 홀딱 깬다.
이 책에는 두 편의 중편이 수록되어 있다. '보통 여자' 와 '강변 부인' 이다.
각각 69년, 77년 여성지에 연재되었던 작품(?) 이다.

분명 그보다 전에 발표했던 '무진기행'의 시대묘사가 어색하지 않았는데,
그 이후의 '보통 여자' 와 '강변 부인' 은 작가가 의도하지 않게, 2005년을 살아가는 보.통. 여.자. 독자를 웃긴다.  딱히 비판을 하려고 마음먹고 리뷰를 쓰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 리뷰 제목을 ' 통속소설도 김승옥이 쓴다면' 이라고 하려 했었으니.

궁금한 것은
여성지에 연재되던 소설이면, 뭔가 그 때 대중들의 심금을 울리는 공감을 주는 부분이 있을텐데, 그것이 어떤 것이었을지, 흥미롭기 그지없다.

'보통 여자' 에서  수정과 명훈은 선을 보는데, 수정은 숫처녀에 데이트 한번 안 해본 순댕이고, 명훈은 여자가 있는 남자이다. 

명훈의 전화를 기다리는 수정을 놀리는 동생 수란.
' 형부 좋아하네. 벌써 형부야? 으응, 벌써 그렇구 그렇게 됐군. 새침떼기 골루간 ...'
' 뭐라구? 기집애가 못 하는 말이 없어. 엄마한테 이른다.'
' 하여튼 단단히 이분의 일 했군, 흥.'
수란의 말마따나 자기는 명훈한테 좋아졌다는 정도를 지나 반해버렸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 후략)
(13pg)

지하철에서 몇번을 다시 읽었다. 설마, 설마, 정말? 푸하하 
조만간 꼭 써먹어야지 책 모서리를 접었다.

수정의 엄마는 사채를 하는 큰손이다. 장녀인 수정을 수란에 비해 금이야 옥이야 키웠다.
어느 점심 수정과 함께 냉면을 먹으러 나간다.  수정이 냉면 한 그릇을 국물까지 말끔히 비우자 '눈을 동그랗게 떠 보이며' 한마디 한다.
' 시집도 안 간 젊은애가 그게 뭐니...... 임신한 여자처럼. 남보기 창피하구나.' 말하면서 주위를 살피는 시늉을 했다.
' 아이, 엄마는! 누가 보기나 하나요. 되려 엄마 말소리 땜에 망신 사겠어요.'
(중략)
' 아이 참, 엄마두! 언제는 적게 먹는다구 야단치시구선...'
' 그야 잘 먹으면 좋기만 하겠니. 하지만 너, 요즘 가만히 보니까 너무 먹어제끼는 거 같아. 그러다가 배탈이라도 나면 어떡하니?'
수정은 문득 어머니의 은근한 말투가 의심스러워졌다.
(중략)
그렇다면, 냉면 사줄테니 순이한테 집 단단히 보라고 이르고 밖으로 나오라고 하신 것도 오늘 나에게서 듣고 싶으신 게 있어서? 냉면을 사준 것도 일부러?
' 엄마!'  수정은 뾰로통해져서 나직이 그러나 쏘듯이 불렀다.
' 왜애?'
' 엄마, 날 의심하고 계시죠? 그렇죠? 아까 하신 말씀 농담이 아니시죠?'
' 의심이라니? 내 무슨 말이 농담이 아니란 말이냐?' 김씨는 시치미를 뗐다.
' 엄마 나빠. 그런 의심을 하시다니. 절 그렇게 못 믿으시겠어요?'
수정은 쏟아지려는 눈물을 억누르기 위해서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통로를 빠른 걸음으로 걸어나갔다. 그리고 현관에 있는 '숙녀용' 안으로 황급히 들어가서 핸드백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을 막았다.
황급한 걸음으로 뒤쫓아온 김씨는 수정의 어깨를 얼른 감싸고 꼭 껴안으며 말했다.
'얘, 수정아, 엄마가 잘못했다. 내가 주책이 없어 괜한 걱정을 해본 거지....' (중략)
' 밥 좀 많이 먹는다구.... 흑흑... 밥 좀 많이 먹는다구...'
간신히 악물고 있던 입이 말 몇 마디를 내놓자마자그만 크게 벌어지며 으아앙 울음보가 터졌다.

중략중략 했는데, 다 읽으면 수정과 김씨의 오버가 우습다.


'때라면 적어도 딸자식인 경우엔 덜 묻으면 덜 묻을수록  좋다. 여자에게서 깨끗한 것, 아름다운 것, 질서를 지키려는 본능, 조화를 유지하려는 욕망을 빼버린다면 도대체 무엇이 남을 것인가. 그런 것이 닳아져버린 여자를 어느 남자가 사랑해줄 것인가? 남자에게서 사랑받을 수 없는 여자보다 더 비참한 것은 없다.' (41pg)

이런 식의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들이 '보통 여자' 에서 '강변 부인' ( 강변 부인은 그 제목 답게 자신 안의 불꽃을 주체하지 못하는 유부녀 이야기다) 까지 계속 등장한다.

뭐랄까. 페미니즘 뭐, 그딴 얘기 하려는게 아니라, 멀지 않은 과거의 그 이야기들이 너무나 딴 세상 이야기같이 읽히니 책은 어쨌든 술술 넘어간다.

그러니깐 앞에 얘기했듯이 김승옥이 쓰면 통속소설도 재미있다는거.
하지만 '무진기행' 을 읽고 정말 대단한 작가야! 감탄감복 했던 독자라면, 굳이 나처럼 다음에 읽을 책으로 이 책을 고르지 않기를.
하긴, 나도 여성지 연재소설같은 지극히 통속적인 소설 읽고 싶어서 이 책 집어들긴 했다. 나의 호기심이 충족 되었으니, 그리고 다행히 재미는 있어서 하하호호 웃으면서 금새 읽어냈으니 뭐, 그닥 불만족스런 독서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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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지 2005-12-08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풉. 인용구절을 보니까 재미있을 것 같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이드 2005-12-08 0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술술 넘어갑니다. ㅎㅎㅎ 음. 웃기고, 야하고 그렇습니다.

mannerist 2005-12-08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옆의 아이콘처럼
나같이 청승가련 순진무구 쾌락만땅 청년은 '이분의 일'이 뭔지 잘 모르겠어요오오~~
가르쳐 주세요오오오~~~ 활짝 앤드 싱긋 ^_^o-

moonnight 2005-12-08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웃겨요. ^^; 좀 민망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한 책일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