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영화 '암살'을 보러 가기 전, 고양이 이빨 뽑는 치료비에 보탤까 싶어 오래간만에 알라딘 중고서점에 가서 판 책들 중에는 더글라스 케네디의 '빅퀘스천'이 있었다. 책 일곱권의 가격이 딱 5만원 나왔더라. 팔 때는 금액이 많으면 많을 수록 좋지만, 살 때 워낙 5만원 집착병이 돋다보니, 뭔가 팔 때의 금액도 5만원 맞으니깐 기분 좋았다. 


기회가 되면 다시 사 볼 책인데, 표지는 봐도봐도 맘에 들지 않는다. 혹시 아직까지 나의 책구매/정리 패턴을 모르는 분이 계신다면.. 책은 읽고 바로 파는 편이다.(알라딘 중고서점이여!) 그리고 다시 읽고 싶어졌을 때 다시 사는 편인데, 막 읽고 싶어 죽겠어서 산 책도 당일 도착해도 아침맘, 저녁마음 달라서 안 읽고 싸아두는 일이 부지기수인데, 두번째 산 책들도 마찬가지이다. '차일드44'야 오랜만에 읽는거라 다시 사서, 그래도 역시 사고 한참 있다 지난 주에야 읽었고, '제노사이드'는 다시 읽고 싶어서 다시 샀는데, 아직 안 읽고 있고, '경관의 피'도 마찬가지. 근데, '13.67' 읽고 다시 읽고 싶어졌으니 '경관의 피'는 조만간 다시 읽을 것 같다. 이렇게 시대성 드러나는 잘 쓴 경찰소설이 희귀함. '13.67'과 '경관의 피'밖에 안 떠오른다. 


그러니깐, 이건 더글라스 케네디의 '빅 퀘스천'과 '심농'의 이야기였지. 


더글라스 케네디의 '빅 픽처'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책이다. 이 책도 두 번 샀다. 그 이후로 늘 재미는 있었지만, 늘 맘에 안 찼다.더 좋고, 덜 좋고의 문제는 있지만, '빅 픽처'만 못했고, '빅 픽처'를 너무 좋아했어서 그 이후로 재미 없어도 계속 사보는 사이클에 들어 버렸는데, '빅 퀘스천' 이 '빅 픽처'만큼 좋다. 그간 읽고 실망했던 더글라스 케네디의 책들이 모두 이 책을 읽기 위한 과정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이다. 


더글라스 케네디의 책을 더 이상 사지 않겠어. 라고 결심하던 즈음에 나온 신간에 마음이 흔들릴때즈음 ( 책에 맘이 흔들리는건 무죄...응?) 지금의 자리로 옮기기 전 센트럴시티 반디앤루니스에서 이 책을 훑어보다 심농 이야기를 발견하고 바로 주문했다. 


딱딱한 싱글베드에 누워 두 가지 신문을 샅샅이 읽고 나서 브랜디를 두 잔 마셨다. 그다음, 조르주 심농의 소설 <뉴욕의 매그레를 꺼냈다. 조르주 심농은 86세에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2백여 편의 소설을쓴벨기에 출신 작가이다. 그는 보름 동안 한 권의 소설을 써낼 만큼 무시무시한 창의력을 자랑했고, 확인할 길은 없지만 약 1만 명의 여자들과 잠자리를 가진 바람둥이로도 유명하다. 앙드레 지드는 조르주 심농을 20세기의 주요 작가로 꼽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그 당시 나는 막 조르주 심농을 발견했고, 그의 소설을 읽는 동안 같은 작가로서 동지애를 느꼈다. 인간 조건의 결정적인 순간들을 읽기 쉬운 이야기와 문장으로 결합하는 능력, 마치 슬픈코미디처럼 인간관계가 변모해가는 모습, 인생에서 피할 수 없는 불공평에 대해 차가운 일침을 가하는 절규 등이 나의  소설 세계와 일치하는 부분이었다. 



1999년 말에 내가 조르주 심농을 발견하게 된 건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외로움, 어긋날 수밖에 없는인간관계 등을 다루는 심농에게서 나는 작가로서의 동지애를 느꼈다. 


스위스의 비 오는 날 저녁, 조르주 심농이 1946년에 쓴 소설 <뉴욕으 매그레를 읽으며 내 상황을 소설에 대입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소설의 초반부에 등장하는 다음 구절은 특히 내 처지를 묘사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머리통 형태 그대로 눌려 있는 베개, 잠 못 들고 몸을 심하게 뒤척이다 구겨진 시트, 파자마, 슬리퍼, 의자에 널브러진 옷가지, 탁자 위에 펼쳐진 책 옆에는 먹고 남은 저녁음식이 차갑게 식어 있었다외로운 남자의 끔찍한 음식..... 불현듯 그는 자신이 도망쳐 온 모든 것들을 떠올렸다.그는 입구에 서서 고개를 숙인 채 움직이기 두려워 얼어 붙어 있었다.'

  

사람은 왜 책을 읽을까? 혹시 책을 읽는 가장 큰 이유는 이 혼돈의 세상에서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사람이 나 하나만은 아닐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기 때문은 아닐까? 


조르주 심농의 소설에 등장하는 위의 구절은 당시 내가 처해 있는 상황을 그대로 정리해놓은 듯했다. 다행히 내 방에 식은 음식이나 우스꽝스런 슬리퍼는 없었다. 


다만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추락하는 감정, 내가 처해 있는 불행과 산적한 문제들을 그대로 비추는 거울 같았다. 



'빅 퀘스천'은 더글라스 케네디의 자전적 에세이이고, 절망 속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이어 나가야 하는 '중요한 질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절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현재진행형의 희망이고, 그 답도 하나마나한 말 같지만, 진리.라는 것이 좋다. 

책을 읽고 나니 더글라스 케네디가 작품 속에서 주인공을 존나게 괴롭혀 왔던게 좀 이해가 갈 것 같기도 했다. 더글라스 케네디가 자신의 작품 이야기하는거, 위에 심농처럼 그가 읽는 작가랑 작품 이야기 하는거, 그런것들 다 와닿았다. 

이 책에 관해서는 페이퍼에서 몇가지 더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일단 내가 애정하는 작가 심농의 이야기를 옮겨둔다. 나처럼 더글라스 케네디에 실망하고 의구심 가지고 있다가 당장 주문버튼을 누르는 누군가가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아는 가장 멋진 표지 콘셉트. 였는데.. 다 못 나와서 아쉽고 또 아쉬운 조르주 심농의 매그레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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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5-07-29 13: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쉬워요.ㅠㅠ 재미도 있지만 예뻐서 간직하고 싶은 시리즈인데ㅠㅠ

하이드 2015-07-31 06:38   좋아요 1 | URL
디자인은 최고인데, 내구성이 좀 떨어지더라구요. 양장도 아닌 것이 반양장도 아닌 것이. 표지 색도 잘 바래구요.
여튼, 나온 것만이라도 고이 간직!

지금행복하자 2015-07-29 13: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심농~ 아직 한번도 읽어보지 못했는데.. 호기심이 생기네요~ 도서관을 가봐야겠어요 ㅎㅎ

하이드 2015-07-31 06:37   좋아요 0 | URL
심농.. 정말 좋아하는 작가라 몇 권 안 되는거 마르고 닳게 읽다가 시리즈 나와줘서 반가웠는데, 일단 나온것만이라도 읽어볼 수 있으니 좋지요.

고양이라디오 2015-07-29 18: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5만원집착병 참 공감가네요ㅠㅋ
그리고 빅픽처와 빅퀘스천에 대한 글도 대공감이었습니다^^
저는 빅픽처로 더글라스케네디를 처음 만났는데 그 후로 작가의 다른 책을 봐도 빅픽처만한 작품은 없더라고요. 저도 이 빅퀘스천은 빅픽처만큼 좋았습니다ㅎ

하이드 2015-07-31 06:36   좋아요 2 | URL
다행히? 빅퀘스천 읽고 나니,그간 꾸역꾸역 욕하며(?) 읽었던 더글라스 케네디의 다른 책들도 잘 읽었다 싶더라구요. ^^

더글라스 케네디 좋아하시는 분들은 좋아하는 작품들도 다 비슷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