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바이크가 본 카사노바, 스탕달, 톨스토이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나누리 옮김 / 필맥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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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츠바이크보다 더 흥미롭게 사람을 읽는 사람을 알지 못한다. 

'세계의 거장들' 시리즈,  마신과의 싸움(- 휠덜린, 클라이스트, 니체), 서사적으로 세계를 재창조한 사람( 발자크, 디킨스, 도스토예프스키) 를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첫번째 유형이 무한성의 세계로 이어지고, 두 번째 세 거장들이 현실세계로 이어졌다면 이 책의 세 거장은 자신이라는 '소우주' 의 탐험의 수단으로서 예술을 시도하였다.

카사노바. 스탕달. 톨스토이. 단계적으로 나아가는 것은 그들의 서로 다른 세 층위, 점차 높아지는 세 단계를 상징한다.
   카사노바. 원초적 단계로 소박한 자기묘사를 대표하며, 스탕달은 자신에게 강한 호기심을 가지고 관찰하며, 탐구한다. 톨스토이에 이르러서는 심리적 자기 관찰에 더해 윤리적이고 종교적인 자기묘사를 함으로써 최고의 단계에 도달한다.



카사노바


'귀족 족보에 올라 있지 않아 법적 권리와 지위가 없는 식객이었고, 문학계에서도 아웃사이더였다. 초라한 최후를 맞는 그 순간까지 그는 보잘것없는 배우의 아들로, 파문당한 사제로, 퇴역 군인으로, 악명 높은 사기도박꾼으로 황제나 왕들과 교류하며 파란만장한 모험을 감행했다.'

 도덕심이라곤 눈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고, 사기와 기만을 예술로, 도덕을 초월하는 의무로까지 여겼던 무법자. 오직 한가지에만 열중하며, 돈도 명예도 초개같이 여겼다.

그 하나는 '카사노바' 하면 누구나 다 알듯이 물론 '여자' 다.
학문, 예술, 외교, 사업, 종교 어느 분야에서나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었던 그이지만, 그 어느것도 선택하지 않고, 얽매이지도 않고, '자유' 에만 몸을 맡겼다. '나의 가장 큰 보물은 내가 나 자신의 주인이며, 불행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카사노바는 여성에게 헌신했다. 단지 그들이 '여성' 이라는 이유로. 여성의 기쁨이 카사노바의 기쁨이었다. 모든 종류의 상상할 수 있는 모험을 '한 사람' 이 '한 시대' 에 겪었으나, 공평하게도 그의 회고록은 소설이라기보다는 통계적인 보고이고, 문학이라기보다는 현장체험의 기록이다.  카사노바가 남긴 가치는 질이 아니라 양에 있다. 라고 츠바이크는 분명히 말한다. 회고 내용의 다양함에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거기에 더해서 도덕이나 명예를 '가치'로 취급하지 않았던 그에게 자기 검열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였고, 덕분에 가장 적나라하고, 자세한 성에 대한 묘사와 육체의 세계를 꾸밈없이( 문학적 소양이라곤 없었으니) 다큐멘터리처럼 묘사할 수 있었다. 그런 이유로 그 시대의 어떤 정신적이고 문학적으로 고양된 인물들보다 길이길이 역사에 남았고, 앞으로도 남을 것이다. 불멸성은 도덕이 아니라 오직 밀도에 의해서만 좌우된다.

   

스탕달



스탕달보다 거짓말을 잘하고 열정적으로 세상을 현혹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반대로 그보다 정확하고 심오한 진실을 말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앙리 베일( Henri Beyle)은 결코 순순히 본명을 대는 법이 없다. 가면을 쓰고 자신을 숨겨야만 마음이 편했던 그는 평생 자기 자신을 감추며 살았다.

'파르마의 수도원' 서문에 이 책을 1830년 파리에서 1200마일 떨어진 곳에서 썼다고 하는데, 장난이란다!
철들기 전부터 유언으로 자기 묘의 가짜 비문을 남길때까지 끊임없이 위장하고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에 대해 그토록 많은 고백성 진실을 말한 사람이 이세상에 있을까?'

자기 자신을 무섭도록 관찰하고 표현하는데 있어서 , '혹시라도 저항감이 느껴질 때면 그 저항감을 움켜쥔 다음 끄집어내서 하나하나 완전히 분해해 버렸다' 고 한다. 
자신을 포착하는 스탕달의 잘 단련된 '심리학'은 동시대인중에서도 오직 발자크만이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한다.

잘난구석이라곤 한군데도 없는 그의 외모. 저속하고 천박한 부르주아의 모습에 짧은 다리와 볼록 튀어나온 배. 그.러.나. 이 튼튼한 농부같은 육체 안에 '아주 섬세하고 거의 병적인 감수성을 지닌 예민한 신경다발이 파르르 떨고 있다. 이를 알게 된 의사들은 모두 그를 '감수성의 괴물' 이라고 부르며 놀라워했다. 그토록 나비같은 영혼이( 이것은 저주다!) 이렇게 크고 뚱뚱한 몸에 깃들여 있다니,' 

그는 아버지로부터 계산적이고 융퉁성없으며 지극히 현실적인면을 어머니로부터 감수성과 열정을 물려받았으며, 그로 인해 죽는날까지 자신 내부의 두가지 극과 극의 모습에 분열되지 않도록 온갖 노력을 다 해야 했다. 그의 감수성과 현실성은 냉정과 열정사이를 오고가는 그의 책의 주인공들의 모습을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글 쓰는 것은 자신을 관찰하는 수단의 하나로만 여겼고, 돈벌이로 여겼고,  음악이나 미술 같은 예술에 목말라하며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벼르고 단련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예술은 목적이 아니었고, 그의 유일하고 영원한 목적인 자아의 발견과 자기인식의 즐거움을 얻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다.

 스탕달이 최초로 쓴 글. 돈이 궁해 썼다는 3/4은 베꼈다는 그 날림 책은 아니겠지?

 

 

톨스토이



톨스토이의 책들에 손이 가지 않는 것은 그 소설의 방대한 양과 명정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엄격한 도덕주의자로서의 말년의 모습 때문이기도 하다.

어느것 하나 부족한 것 없이 풍족한 백작.
건강과 힘이 넘쳤고, 열렬히 사랑하던 여자를 아내로 맞았으며, 슬하에 열세 명의 자식을 두었다.
그의 작품은 살아 생저에 이미 불후의 명작이었고, 지나가는 모두가 그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전 세계가 그의 명성에 고개를 숙였다.

츠바이크가 말하는 것처럼 '하룻밤' 만에 모든게 변한 것은 아니였겠지만,
소년시절부터, 아니 그가 기억하는 가장 분명하고 오래된 기억인 두살때부터(믿기 힘든 일이지만!) 해온 자기 자신에 대한 채찍질. 엄한 기준. 반성. 고뇌.들은 쌓이고 쌓이다 어느날 갑자기. 이제 그만. 쌓이길 거부하고 튀어나왔을지도 모르겠다.

생의 즐거움에 빛이나던 '그'는 갑자기 '빛'을 잃고 침통해지고, 불행해졌다. 왜?
사실 그에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이보다 더 무서운 대답은 없을 것이다.

건강, 유례없는 생명력을 지니고 태어난 거친 농부와 같은 털보 남자. 그의 내면이 타고난 잘 단련된 감각으로 충만해 있다는걸 누가 그를 보고 짐작이나 하겠나.

츠바이크의 세 인물에 대한 극적이고, 화려하고, 감동적인 평가는 그 대상이 카사노바이건, 톨스토이이건간에 그 인물의 위대함 뿐만 아니라, 그들의 부침과 콤플렉스와 퇴보에 대해서도 서술한다.  고전의 저자, 혹은 가쉽의 주인공으로만 알고 있는 그들 자신을 '읽는 것' 이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는 것은 다 츠바이크 때문이다.

이제 나는 카사노바 평전을 읽으면서 그가 남긴 것을 떠올릴 것이고, 스탕달의 적과 흑을 읽으면서 줄리앙의 모습에서 스탕달을 떠올릴 것이며, '안나 까레리나'를 읽으면서 도덕적 판단의 잣대를 들이대기 시작한 톨스토이를 만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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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a78 2005-11-08 0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참 궁금했더랬어요. ^^ 살 때 잊지 말고 땡스투할게요.

chika 2005-11-08 0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츠바이크는 정말 사람을 흥미롭게 해주는거 같아요. '카사노바'와 '톨스토이'가 한 책에 들어있는게 참 의아했는디... ㅎㅎ (낼 살꺼예요오~ ^^)

사마천 2006-02-10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좋은 리뷰입니다. 사진도 풍부해서 좋군요. 저는 게을러서 사진은 절대 넣지 못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