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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우울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염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10월
평점 :
품절
'일식' 한 권을 읽고, 나는 히라노 게이치로의 왕팬이다. 하는건 좀 과장스럽긴하지만, 충격적인 첫작품을 그마만큼의 ( 작가가 원하던 원치않던) 매스컴의 주목과 더불어 목격했고, 그 데뷔작을 즐겼고, 그와 같은 데뷔작을 쓴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해 왔던 독자라면, 그 초창기의 열풍에서는 벗어났더라도, 그의 '일식'과 '달'을 보고, 이번 신작 '장송'을 보고 반가워하는 독자라면, 히라노 게이치로의 냄새가 짙게 풍기는 이 책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난 우울한 사람을 좋아하나보다. 아니, 작가라는 직업 자체가 어느 정도의 멜랑꼴리를 포함할 수 밖에 없다고 한다면, 그 멜랑꼴리가 특히나 더 지나치다 싶은 사람을 편애하나보다.
VOICE 란 잡지에 연재했던 글들을 모아 만든 책이다.
'문명의 우울' 이란 제목에 몹시 어울리게도 연재의 첫글은 '로봇 강아지'이다. 2000년 즈음부터 연재했던 글을 마칠즈음은 9.11 테러가 났을 때라고 한다. 마지막 글은 '어디선가 한번은 봤던 듯한 일' . 9.11 테러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우울한 '문명' 이 아닐 수 없다.
얇은 분량과 급조된듯한 느낌이 나는 책임에도 불구하고, 책은 만족스러웠다. 히라노 게이치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동시대를 살아가는 그의 우울한 잡담 싫어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으로 처음 작가를 접하려고 하거나, 히라노 게이치로의 작품은 별로였다라고 생각했던 사람에게라면 불만족스러울지도 모른다. 게이치로의 인터뷰 한꼭지, 에세이 한개라도 궁금한 사람들을 위한 팬북이다. 그 이상을 기대하고 실망하지는 말라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