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작가들 사이에는 징크스가 하나 있다. 우연히 ( 반드시 우연이라야 한다) 서점에서 자기 책을 사는 사람을 발견하면 그 책이 대박이 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껏 단 한번도 그런 행운을 경험해보질 못했다.
 단지 딱 한번, 신촌의 어느 서점에서 거의 그럴 뻔했던 적은 있었다. 한 여성이, 물론 무척 아름답고 지적인 풍모를 지닌 분이셨는데, 신중하게 내 책을 집어 들고 한참을 뒤적이더니 그것을 들고 계산대로 가는 것이었다. 나는 안 보는척 하면서 곁눈으로 그녀의 움직임을 좇았다. 그녀는 또각또각 계산대로 걸어가면서 핸드백에서 갈색 가죽 지갑을 꺼내고 있었다. 바로 그때, 평생 책이라고는 단 한 권도 안 읽을 것같이 생긴, 산적이나 소도둑 역을 맡으면 딱 좋을 것같이 생긴 무뢰한이 그녀 앞에 나타났다. "여기서 뭐 하는 거야?" 그는 그녀가 사려던 내 책을 빼앗아 일별하더니 " 골치 아프게 이런 건 뭐 하러 사냐? 돈이 남아도냐?" 고 말하고는 그 책을 아무 매대에나 던져놓았다. 그리고 그녀의 손을 낚아채 서점 밖으로 휭하니 나가버렸다. 나는 그 둘이 어서 헤어지기를, 진심을 다해 기원했다. 꼭 책을 못 팔아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ㅜ.ㅜ

 

김영하 '랄랄라 하우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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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22 19: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루(春) 2005-10-22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영하가 좋아지려고 해요.

하이드 2005-10-23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진심을 다해 기원하는 그 마음 정말 절절히 이해가죠?

히피드림~ 2005-10-23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하하~~

moonnight 2005-10-23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영하책은 한 권도 못 읽었는데 참 재미있는 사람 같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