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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화 ㅣ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3
김이설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예쁜 꽃사진으로 리뷰를 시작해야할 것 같다.
방금 꽃사진 올리면서 문득 깨달았다.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고, 책 이야기를 먼저 하면,
태어나면서부터 얼굴 한쪽에 화염상모반이라는 커다란 붉은 흉터가 있는 선화라는 여자의 이야기이다. '노벨라' 시리즈를 읽는건, 북스피어의 에스프레소 노벨라 시리즈에 이어 두번째이다. 시리즈로 나오지 않았다뿐이지 그 동안 많이 읽었을지도 모르겠다만, 경장편.이라고 하는 길지도 짧지도 않은 소설은 더 압축되고, 독자에게 더 상상의 여지를 주는 것 같다.
흉터를 가지고 태어난 꼬였을 것 같은 여자가 멀쩡한 언니 얼굴에 상처를 내고, 키가 아주 작은 남자를 만난다거나, 흠이 있는 여성만 만난다는 남자를 만난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어두워 보이지만, 그리고, 작가의 전작이 아주 독했어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읽었지만, 기대와는 달리(?) 다 읽고 나니 다른 리뷰들에서 말하듯 환한 느낌이, 밝은 느낌이 뭔지 알 것 같다.
나는 작은 상처에 관대한 편이다. 아주 어릴적부터 아주 커다란 흉터로 괴물이라 놀림을 받아 온 선화의 상황이 되어본 적 없으니 그녀의 상황을 차마 이해한다 못하겠지만, 엄마에게 물려받은 켈로이드 체질로 어깨에 주사 자국도 있고, 어릴적 코끼리 저금통 따다가 뼈가 보일만큼 베었다가 아물지 못한 손가락의 상처도 있다. 고양이를 키우면서 나는 자잘한 상처를 보고, 사람들은 꽃 때문인지 알지만, '아니요, 고양이년들 때문에요' 라고 쿨하게 답하곤 했다.
엄마는 가슴에 켈로이드 흉터가 있는데, 내 어깨의 흉터보다 작고, 그렇게 티가 나는 것도 아닌데, 엄청 신경 쓴다. 왜 그걸 신경 쓰는지 나는 평생을 같이 지내도 1%도 이해하지 못하는 쪽이다. 작은 상처들과 흉터들을 보면, 그 상처가 생겼던 순간들을 기억하고, 오래되온 흉터라면, 오래된 '내 것' 으로 애착까지는 아니라도 그 흉터와 상처가 가진 기억들을 애정한다.
그러니깐, 그것들이 선화와 같은 경우는 아니겠지만.
어른이 된 선화는 여전히 흉터를 부끄러워하고, 그러나 나이를 먹은만큼 체념하는 마음도 함께 하고 있는 것 같다.
무뎌진다는 건 나이를 먹는 것의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하다.
꽃집 주인인 선화의 꽃이야기들이 나오면, 나는 어쩐지 좀 부끄러워졌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어떤 기분일까. 낯익고, 낯선 꽃이름들이 나열되는 것을 보면, 뭔가 예쁜 것을 상상하며 밝아지는 마음일까. 이건 내가 꽃을 시작하면서 유일하게 잃은 것이다. 지금 생각한게 아니라 오랫동안 생각해 왔는데, 보통 사람이 꽃을 받을 때의 마음. 을 상상하기 힘들어져 버린 것이다. 이건 아마 내가 하수라서 그럴꺼라고 생각한다. 나이 들고, 꽃과 함께 한 시간들이 더 길어져서 타샤 할머니같이 늙어 꽃을 선물 받을 때 소녀처럼 기뻐하는 마음이 되는 것이 고수의 마음일꺼라고 생각해 본다.
소설이 개인적으로 읽히는 또 한가지 이유는 선화의 남자들이다. 꽃일을 하면서 만나게 되는 남자들이란, 역시 꽃시장이나 농장에서 만나는 이들. 병준처럼. 동병상련하는. 그리고, 꽃을 사러 오는 남자들이다. 영흠처럼. 꽃집의 처자가 좋아서 꽃을 사러 오는 남자 같은건 기차 옆자리에 에단 호크가 앉는 것만큼의 확률적 이야기이고, 꽃을 사러 오는 괜찮은 남자들은 다 괜찮은 여자들에게 선물하기 위해서 온다.
고단한 삶. 아름다운 꽃을 팔지만, 그 아름다운 꽃을 누군가에게 전해주기 위한 밥벌이로의 삶은 고단하다. 밖에서 맛있는 걸 걸 먹으면, 그 맛있는 걸 만들어 내기까지의 삶이 고단하듯. 그러나 그 고단함 속에도 아름다움이 있다는 점이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어주는 것이다. 가족도 마찬가지. 고단하다. 누군가에게 연을 끊고 싶은 가족이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는 않지만,(드라마 미생 안영이 아빠!) 고단한 중에도 어느 순간 위안을 얻게 된다. 아름다움이 있고, 보람이 있고, 기억이 있어서, 흉터와 고단함과 체념이 있어도 계속할 수 있다.
얼굴이 뜯어질만큼 추운 날이야. 라고 말하고 보니 또 선화가 생각났다.
길고양이들 사료 주러 나가야지.
춥지만, 먹기라도 잘 먹고, 버텨라. 이 겨울. 고단한 이 세상.
아, 처음에 하려던 이야기.
꽃사진 올리면서 생각났는데,나는 꽃의 다양한 모습이 좋다. 공장에서 찍어낸 것이 아니라 다 다른 꽃의 모양. 시든거 아니냐고 열에 일곱,여덟은 물어보는 장미의 떡잎. 정말 아름답다. 상처난 꽃잎, 꼬불꼬불한 줄기,구멍난 잎사귀. 이런 모습들이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게 바로 내가 살아 있는 것의 상처, 흉터를 보는 마음가짐이 아닌가 싶다. 자연스럽고, 뭔가를 견뎌낸 것 같은 모습. 뭔가를 만들어내고 있는 모습. 뭔가가 나아지고 있는 모습. 그런 모습들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