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 쇼핑, 소설' 을 읽고 있다. 재밌다.  이 책은 앨리스(여자주인공) 의 입장에서 만남 헤어짐 다시 만남이 쓰여진 책으로 '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에 이어 두번째로 쓰여진( 역시 스물네살때!) 책이고,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의 여자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소설 카테고리에 들어있기는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앨리스란 여자가 에릭이란 남자를 만나서 사랑에 빠져서 어쩌구저쩌구 하는 이야기인데,  '앨리스와 에릭의 러브스토리'  는 결코 아니다. 뭔가 낭만적인걸 기대하고 본다면 쓴물만 보고 이 책을 덮게 될 것이다. 반면 연애의 쓴맛, 신맛, 매운맛이 단맛보다 더 기억에 남는 사람들에게는 이 책 읽고 최소한 동병상련의 기분이라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읽는 내내 정말, '이럴수가' 하며 읽게 되는 것이, 보통의 성정체성을 의심케할만큼 여자 입장에서 쓰여진 글이다. 이전에도 말한 적 있지만, ' 넘버원여탐정 에이전시' 의 작가가 남자인 것은 그야말로 충격을 넘어서 경악이었고, 이 책 또한 보통이 남자인걸 알고 봤지만, 후에 어느분이 아들딸 잘 낳고 알콩달콩 살고 있다고 얘기해주시기도 했지만, 믿을 수 없단 말이다. 우어어어, 그게 아니면 혹시 내가 남자? 쿨럭.

별로 인정하고 싶지 않음을 제외하곤 정말 제대로다.

46pg 냉소 中
무례함은 별도로 하고 이른바 정직성의 장점이 무엇이건간에 조안나에게도 한가지 잘못은 있었다. 비록 앨리스는 사랑을 갈망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 사실을 자신에게나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인정하기를 꺼리게 되었다. 이전에는 그녀가 혼자인 것이 농담이나 가벼운 놀림거리였지만, 오랜 기간이 지나는 동안 그것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이제는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중력을 지니게 되었다.

67pg 사랑과 사랑하기 中
성숙하게 표현하여 앨리스는 에릭과 사랑에 빠진 것이 아니라 사랑과 사랑에 빠졌다고 말할 수 있었다.
문법적으로 보면 동어반복적인, 이 이상한 감정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사랑하는 상태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되는 것으로서, 애정의 대상으로부터 즐거움이 싹트기보다는 자신의 열정에서 즐거움을 발견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사랑과 사랑에 빠진 연인은 X가 멋있다고 느끼기 이전에, X와 같이 멋있는 어떤 사람을 발견하다니 얼마나 멋있는 일이야, 라고 생각한다. 에릭이 베터시 다리 중간에서 구두끈을 묶기 위해 잠시 멈춰 섰을때, 앨리스는 단지, 구두끈을 묶는 그의 모습은 정말 훌륭해 보여! 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구두끈을 묶는 모습이 저렇게 훌륭한 남자를 결국 만나다니 이건 꿈이 아닐까?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93pg 회전식 인생관中
앨리스의 인생관은 - 이렇게 칭할 수 있다면- 인생관은 정신상태에 따라 두 가지 흐름이 바뀌곤 했다. 그 하나는 계단식 인생관이었고 다른 하나는 빨래건조기식 인생관이었다.

도입부만 보아도, 대충 어떤 이야길 할지 짐작이 간다. 이런, 젠장, 참잘난 보통씨

보통의 글을 읽으면서 때론 산만하단 느낌을 받을 수 있겠다. 때론 ...아, 씨 전화받다가 까먹었다. 그러니깐 때론 너무 길다( ㅜㅜ 이거 아니였는데 )는 느낌을 받을 수.. 아, 생각났다. 때론 너무 수사적이란 느낌을 받을 수도 있겠다. ( -> 그러니깐 이런게 산만한거거덩 하이드야? -_-a)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보통의 글에 빨려들어갈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초단순한 내가 생각하기엔 그런것 같다. 가끔, 아주 가끔은 내게도 그분이 오신다. 가끔 오시면 마구 아이디어가 샘솟고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날아다닌다. 근데, 내게 아주 가끔 오시는 그 분이 보통씨에게는 상주하는 것이다. (무슨 복을 타고 났길래) 청산유수로 그분이 뿌려주는 아이디어들을 줍기만 하면 되는 보통씨이니 조금 산만하다고 하더라도 뭐 좀 어떠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두 명의 영국작가( 그러고보니 둘 다 스위스에서 태어나서 영국에서 공부하고, 뭐, 그렇게 유럽이 다 내땅이다 하고 돌아다니는 글로벌리언이다. ) 존 버거와 알랭 드 보통의 쓰기 스타일은 극과 극이다. 존 버거의 글은 정말 군더더기 없으며, 때론 마침표 하나, 쉼표 하나에도 가슴 쿵 할 정도이니, 사색적이고, 독자로 하여금 그의 글의 명료함의 세례를 받고 찬양하게 한다. 반면 보통은 좀 더 현실로 끌어내려지고, 좀 더 젊은 느낌이고, 존 버거식 단순명료함으로 그의 글을 정리하고자 한다면 아마 남는 것 하나도 없을 것 같은 산만함이지만, 독자가 빨려들어간다는데, 뭐, 그 이상 뭘 바라랴.

다시 섹스, 쇼핑, 소설로 돌아가서
섹스와 쇼핑, 소설이라는 화두에 대한 젠장스러운 일상의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는데, 제발 다이어트에 대한 얘기는 안 나오길 바란다. 난 현실을 계속 외면하고 싶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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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8-01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버거와 보통, 정말 좋지요?^^

하이드 2005-08-01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요! 로드무비님, 보통의 이 책도 다시 나오면 좋을텐데 말입니다.

마늘빵 2005-08-01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버거는 안읽어봤는데... 추천해주세요.

moonnight 2005-08-01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너무 읽고 싶어지는데 절판이라니요오 -0-;; 그, 그런데 정말 심장을 콕콕 찌르는 글이로군요. ㅠㅠ

비로그인 2005-08-01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버거를 사놓고도 못읽고 있습니다. 잠깐 훑어보기만...아직 준비가 안됐어요ㅜ.ㅡ
좀 산만해보여도 재잘대듯 읽히는 글이 좋습니다요^^

하이드 2005-08-01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사탕님 그러니깐요. 버거 책은 간결하지만 꼭꼭 씹어먹어야하고, 보통 책은 그냥 대충 삼켜도 맛있죠.
문나이트님. 정말 콕콕 ㅜㅜ 극히 일부만 옮겨놨는데, 거의 첨부터 끝까지 계속 콕콕쿡쿡그럽니다. 보통책 요즘 많이 나오고 있으니, 이것도 조만간 나오겠지요.
아프락사스님. 아마 처음 보시는 책에 따라 느낌이 틀려지시지 않을까 싶어요. 제가 선물 많이 한 책은 '행운아' 구요. '포토카피'도 지극히 존버거스러운 책이 아닐까 싶어요. 제 리스트에서 존버거 구경해보세요. ^^ 저도 안즉까지 사놓고 읽은책 반, 안 읽은책 반입니다. 존 버거의 책은 꽤나 많이 번역되어 있어서 한번 시작하면 끝장보기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