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닉 혼비의 피버피치를 읽고 나서, 영국의 축구를 모르더라도 충분히 재미있는 책!이라고 불을 뿜었다. 그러나, 역시 야구를 모르고서야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재미를 120% 느끼기는 힘들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산 것은 백만년전이지만, 왠지 패배자들을 위한 어쩌구 내지는 패배자들을 위한 찬가 따위의 선전이 연봉십만불을 목표로 달리고 있던 내게 못내 거슬렸고, 그럼으로써 어딘가에 처박아 놓고 안 읽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몇권이나 선물을 하기도 했다. 주말에 책정리를 하던 중 이 책이 나왔고, 마침 작가의 신작인 '카스테라' 를 적립금에 눈이 어두워 살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고, 마침 롯데가 7연패의 늪을 끊느냐 마느냐 하는 경기를 바로 앞에 두고 있었다.

야구를 틀어놓고, 이미 열흘정도 보아왔던 낯익은 롯데의 플레이를 애써 옆눈으로 보며 책을 읽었다. 책의 첫부분에는 화려한 삼미의 역사가 나온다. 나는 처음으로 삼미의 로고가 수.퍼.맨.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고 경악했고, 삼미는 첫해에 16연패. 다음해의 18연패 기록으로 전해의 기록을 갈아치움으로써 ' 삼미의 라이벌은 삼미' 라는 찬사를 받을 정도로 끝내주는,뭔가 초현실적인 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읽으면서 완전 뒤집어지는 글들이 나올때마다 , 처음 프로야구가 생길때 인천의 어느 방에서 동네 사람들이 모여있는데 동네 반장이 인천고 야구감독의 초빙으로 1학년 한 선수의 피칭을 보러 간다. 속으로 ' 아직은 풋내기가 아닌가' 하고 따라나섰는데, 그 선수의 공이 장난이 아니었다. 마치 도루코 면도칼로 스트라이크 존을 도려내는 듯한 볼의 컨트롤, 세상의 모든 커브 볼들에게 '자넨 참 성격이 곧군'이라고 말해도 될 만큼 낙차가 큰 변화구.'



웃음을 참지 못하며 야구를 좋아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그 부분을 읽어준다. 1982년 프로야구 원년에 나는 다섯살이었고, 그와 같은 운동경기를 미친듯이 좋아하며 기록을 달달 외우고 다니던 아빠의 손에 끌려 롯데자이언츠 어린이 회원이었고, 기억은 잘 안나지만 몹시 큰 야구장에 쫓아다녔었다. 어릴적 사진을 보면 아이는 계속 자라는데, 옷은 항상 시퍼러둥둥 촌시런 롯데자이언츠의 잠바(사진 속에는 반팔티. 물론, 사계절용 옷이 다 있었다.) 였다.

 

 

* 어렸을적 우리나라를 강타했던 우주박람회 *

그러나 이것은 야구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작가의 현란한 안작가스러운 말솜씨를 따라가며 롯데의 어이없는 답답해 죽는 플레이를 8연패를 강하게 예감하며 보다 보니 좀 피곤했다.

주인공 '나'는 삼미에 열광하고 자학하고 삼미를 버리고( 혹은 삼미가 팬들을 버리고?) 돼지발정제를 먹은 사회로 뛰어든다.

'프로야구'는 소년들에게 더 열심히 공부하게 하고 사회인에게 더 열심히 일하게 하는 국가차원의 거대한 음모였던 것이다. 라는 생각이 든다. 당시 삼미 슈퍼스타즈가 했던 야구는 '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다'  는 '자신만의 야구'이다.  이 부분을 먼저 읽었더라면 난 허걱 하며 책을 덮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삼미수퍼스타즈로 시작된 유년기에서 곰이 된냥 호랑이가 된냥 마늘만 먹으면서.. 는 아니고라도 그 비슷하게 열심히 외워서 일류대학에 소속되고,  일단 그 '일류대학' 간판을 걸고 대기업에 들어가고, 열심히, 더 열심히, 죽어라고, 미친듯이 열심히 일을 한다.

그러다가 권고사직. 투스트라이크 스리볼에서 삼진아웃을 당한줄 알았으나, 사실은 투스트라이크 포볼로 1루에 진주해 쉬라고, 삶이 던져준 네번째 볼이었다고 생각해버리고. 신은 사실 인간이 감당키 어려울 만큼이나 긴 시간을 주고 있어서 누구에게라도, 새로 사온 치약만큼이나 완벽하고 풍부한 시간을 주어져 있었던 것이고 '나'는 언제나 새 치약의 퉁퉁한 몸통을 힘주어 누리는 기분으로 시간을 향유했다. 시간이 없다는 것은, 시간에 쫓긴다는 것은 - 돈을 대가로 누군가에게 자신의 시간을 팔고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니 지난 5년간 내가 팔았던 것은 나의 능력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의 시간, 나의 삶이 었던 것이다.

알고 보면, 인생의 모든 날은 휴일이다.

그렇게 책의 마지막은 '인생의 모든 날은 휴일이다' 라고 말해준다.  '나'는 구질구질한 인간들. 사회에서 보기에 낙오자인 인간들을 모아 '삼미수퍼스타즈 팬클럽'을 만들고 전지 훈련 장소로 삼천포로 간다. '삼천포로 빠진 그들' . 나는 지금 어디쯤 있는가?. 베이직을 강조하고 프로가 되라는 보스의 말을 들으며 , 다른 한편으로는 하고 싶은 재미있는 일들을 모두 해내려고 바득거리며 책을 읽고 느낀점을 쓰는 월요일 휴가날이다.

삼천포와 명동한복판에 한발씩을 걸치고 어정쩡하니 삶을 향유하지도,그렇다고 열심히 살았다고 소리높여 외칠 수도 없는 어정쩡한 프로는 그때도 6개구단중 5위였던( 삼미가 물론 6위) 롯데. 3위에서 4위로 내려가고 열심히 5위, 6위로 내려가고 있는 롯데의 지금과 비슷한가?

이렇게 말하니 왠지 운명론자 같은 생각이 든다. 화요일, 수요일 경기에는 지금 제일 잘나가고 있는 미련곰탱이들(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과 붙어야 되는데, 두자리수 연패도 멀지 않았다. 젠장.

나 뿐 아니라, 동생도 ( 저 위의 사진에 있었던 꼬맹이가 이렇게 컸다) 어린시절 롯데 잠바를 입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번에 사진 찾으며 깨달았다. 털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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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muko 2005-06-13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이지 <삼미 슈퍼스타즈..>에 어울리는 리뷰로군요^^ 그나저나 롯데가 부활해줘야 저도 다시 야구를 볼텐데 말입니다...

oldhand 2005-06-13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롯데가 연패의 늪에 빠져있더군요. 타력이 부진하자 투수진까지 동반 몰락의 길을.. 롯데의 분발을 기원합니다. (개막이후 꼴찌 질주중인 기아팬(82년 원년 회원출신)이..-_-;)

하이드 2005-06-13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ㅜㅜ 전 어제 SK 응원했지요. 근데, 심정은 다 비슷한지 책 읽다보니 나오더군요. 삼미옷 입고 그물망에 매달려 차라리 오비를 응원하는 책 속의 '나' . 그러고보니 피버피치에서도 못하는 팀이 바닥도 모르고 계속 못할때 팬들이 자학의 극에 달하면 상대팀을 응원하더군요. 으흐흑.

하이드 2005-06-15 0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ㅜㅜ 오늘 9연패 어허허허흑.

2005-06-18 17: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0-02-18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민규도 난감해한 작가 ‘박상’ 첫 장편소설. ‘소설이 이렇게 재미있는게 말이 되냐’ 박상 작가가 대한민국 모든 유쾌발랄찌질궁상 청춘들에게 바치는 청춘로망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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