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에 다녀왔다.
시간이 멈춘듯한 그 곳에서 짧고 긴 하룻밤을 지내고 2시간 반여의 버스 여행의 끝에 동서울 터미널에 도착했을 때  

서울은 추웠고, 나는 냉정한 도시에 내팽겨쳐진 씁쓸한 기분이었다.
불과 몇시간 전 따뜻한 산골의 햇볕이 방 구석구석까지 들어오는 곳에서 전기 히터를 켜 놓고, 딩굴거리며
갓내린 커피 홀짝이며, 가을방학을 들으며, 책을 읽던 기억이 아주 먼 옛날 같았다.  

지하철을 타고 두 정거장. 잠실 역에 내려 교보문고에 들렀다.
하릴없이 신간코너를 돌다 오쿠다 히데오의  신간 <꿈의 도시>를 봤다.  

 뒤적여 보니 재미있을 것 같다. 600페이지가 넘는 묵직한 책이다.
오쿠다 히데오는 당장 읽고 싶게 만드는 글들을 이 묵직한 책에 잔뜩 담아 놓았다.

'.. 아, 어디 콕 처박혀서 딩굴거리며 이 책이나 다 읽었으면 좋겠다' 고 생각하고 있는 나를 발견. .. 하자마자, 아.. 그건 아니잖아.  

가방 속에는 이번 여행길에 챙겨갔던 다카무라 가오루 여사의 <조시>가 1권 중간 어디쯤 책끈 끼워진 채 있었고, <조시>는 바로 내가 이번 겨울, 올해를 마무리하며 읽고 싶은 야심작(작가가 아닌 독자가 이런 말을 써도 된다면) 이잖아. 배경이 한여름이라 좀 김이 샜지만, - 손책은 왜 마크스의 산은 여름에 내고 조시는 겨울에 냈나? 반대잖아 -  고다경부를 만나는 건 가슴 뛰는 일이다.  

그렇게 눈 앞의 <꿈의 도시>를 매만지며 <조시> 생각을 한다. 이건 뭐..  

<조시> 뿐만 아니라, 이번에 주문한 읽을 책들 잔뜩이잖아. 벼르던 나우시카도 드디어 주문했고 .. 하지만, 난 집에 가면 알라딘에 들어가서 이 책을 주문하겠지.. 그리고 또 언제 읽을지 기약도 못하겠지.. ( 라고 생각하며 알라딘 들어와보니, 마침 알사탕 500개날이다. 이런, )  라고 약간 나 자신을 불쌍해하며 생각한다. 

  

 

 

 

 

책을 동시에 읽을 수는 없다. 한꺼번에 여러권을 읽을 수는 없어도, 한꺼번에 밥과 반찬을 씹는 것처럼 한 눈에 조시와 꿈의 도시를 읽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 라는 생각을 하는 자체가 내가 좀 많이 조급해 한다는 증거다.  

읽고 싶은 책은 많고 ( 살 필요도 없이 집에도 쌓였다)
재독하고 싶은 책들도 많다. ( 두 말하면 잔소리)  

내가 부지런히 책을 읽지 않는가. 라고 자문한다면, 한달에 2-30권이 적은 분량이 아니라는 건 심정적으로 알고 있다.  
2-30권이 4-50권은 될 지언정 (컨디션 아주 좋을 때의 숫자다) 2-300권이 될 수는 없다. 라는 것도 알고 있다.  

세상은 넓고, 책은 많고,
난 다 살 수도 없고 ( 왠지 좋아하는 책은 다 사버릴 것 같은 기세가 벌써 몇년째이긴 하지만..)
다 읽을 수도 없다. 는 것을 인정하고, 느긋하게 독서하는 것이 그렇게 힘든 일일까? 

끄덕끄덕  

힘든 일, 의식해서 노력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고,
그렇게 애써 느긋하게 독서를 하고 싶지 않기도 하다.  

그러다보니 나의 독서는 늘 조급하고,
아주 재미난 책을 읽을 때도 '오늘까지 다 읽어야지' 라는 마음이 책의 앞장과 뒷장에 들러붙어 있고,
그 아주 재미난 책 다 읽고 이 책하고, 저 책 읽어야지. 라는 무용한 계획이 역시 그 뒤에 들러붙어 있다.   

어쩔까.

지구는 둥그니깐, 자꾸 걸어 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들 다 만나고 오..는 것처럼
자꾸 읽어 나가면 느긋하게 읽을 수 있는 날이 올까?   

안 와도 할 수 없;  

난 계속 쫓기듯 책을 읽겠;  

내가 쫓기겠다는데, 그게 좋다는데 어쩔꺼야. 응응   

꿈의 도시나 주문하러 가야겠다. 함께 주문할 다른 책들도 'ㅅ'  

아, 요코미조 세이시의 <삼수탑> 나온 건 다들 알고 계시죠?  여름에도 나오고, 겨울에도 나오네요. 기특하게스리.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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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0-12-21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로 마무리되는 페이퍼 ^^;

아이구 구구절절 마음에 와닿는 내용이에요. 맞아요. 살 필요도 없이 집에 책이 쌓여있건만 왜 이리 맘만 조급해서 (저는 하이드님처럼 많이도 못 읽어요. ㅠ_ㅠ) 새 책 나오면 허겁지겁 사들여요. 오늘 안 사면 품절 내지는 절판 될 것만 같은 기분.

너무너무 맘에 드는 책을 읽고 있으면 페이지가 넘어가는 게 막 아까워서 발을 동동 구를 지경;인데 맘 한 구석에는 그래, 이 기세로 마구 읽어나가는 거야. 라며 다른 책들을 나란히 나란히 줄 세우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허걱 -_-; 이렇게 책을 읽어도 되는 걸까? 싶을 때가 있어요. 최근 신승훈 콘서트를 다녀왔는데 백사람이 한번 듣는 음악보다 한사람이 백번 듣는 음악을 하고 싶다고 하던데, 저도 가끔은 책 한 권을 백 번씩은 아니더라도 두 번, 세 번이라도 정독하는 느긋함을 갖고 싶다고 느껴요.

그. 러. 나. -_- 뭐 어쩌겠어요. 하이드님 덕분에 저도 (좋은 정보! 를 외치며) 꿈의 도시랑 삼수탑 주문하러 가구요.
비닐도 안 뜯은 '조시'랑 '리오우' 한 번 쓰다듬어주며 하하.

영월 숙소죠? 창밖 풍경 끝내주네요. 나뭇결이 살아있는 책상도 너무 멋져요. 저런 곳에서 음악듣고 커피 마시며 (물론 와인이랑 맥주도!) 책 읽고 싶어요. @_@;

2010-12-21 1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2 04: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2 16: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놀 2010-12-23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즐겁게 읽으시면 되지요. 서둘러도 좋고 느긋해도 좋은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