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의 정원
다치바나 다카시.사토 마사루 지음, 박연정 옮김 / 예문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근데 다행히 몰라도 재미있다.
이유인즉슨, 이 책이 대담집 형식이어서, 그리고, 리스트덕후인 내게 무려 400개의 독서리스트를 안겨주기 때문이다.
대단히 뻔뻔한 호평도 재미나지만, (대단히 뻔뻔해야한다.) 혹평을 읽는 은밀한 재미를 따라오지 못할 것이다.  

인물, 책, 시대에 대한 호평과 혹평을 오가는 두 知의 거장.   

다치바나 다카시는 워낙 다양한 분야의 저서로 한국 독자들을 찾았지만, 사토 마사루의 이름은 낯설기만 하다. 카피에는 '지의 거장' 다치바나와 '지의 괴물' 사토로 부르고 있다. 사토의 경우 외무성에서의 경험, 감옥경험, 신학 전공이라는 과거가 있어서 그의 이야기에는 심도 깊은 신학 이야기, 외무성 직원, 첩보 이야기 들이 있고, 간간히 나온 감옥 이야기 (카렐 차페크의 '도롱뇽의 전쟁'이 언급된 의사체험에 대한 이야기는 특히 재미있었다.)가 무척 실감났고, 의외로 (적어도 내게는 의외) 러시아의 교육, 엘리트 등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와서 일정부분 러시아를 다시 보게 되는, 더 알고 싶게 된 계기도 되어 주었다.  

이 책이 아주 두껍고 큰 양장본의 책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작고 300페이지 정도밖에 안 되는 책이라 그나마 이마이 시간들여 읽고 또 읽었으니 말이다.  

각각의 대담자가 서재에서 뽑아낸 100권의 리스트, 그리고 코멘트 들이 간단하게 때로는 길게길게 나오 있고, 뒷편에는 '문고/신서 중에서 골라낸 100권의 리스트'가 나와 있다. 앞의 리스트가 '서재에서 뽑아낸 리스트'라서 고서나 절판된 책이 많다고 하면, 뒤의 리스트는 '서점의 책장에서 뽑아낸 리스트'로 접근성이 더 좋다고 하겠다.  다치바나는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문고와 신서를 고르려고 했는데, '새 책이 계속해서 밀고 들어와 양질의 책이 금세 절판 되는 출판계의 현 상황'을 깨닫고 서점을 둘러보며 책을 골랐다고 한다.   

* 책의 인테리어는 '7.24 도착한 책무더기' 에서 볼 수 있습니다.

사토가 고른 '문고/신서 리스트'는 2-30대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이제 막 사회인이 되어 열심히 일하고자 하는 의욕이 남다른 연령대에 책이 하나의 무기가 될 수 있도록 실용적인 책'을 많이 골랐다고 한다. '이걸 읽으면 도움이 된다', '서점에서 지금 즉시 살 수 있다' 는 점을 강조한 책이라고 하는데, 왠지 서점 가서 즉시 사고 도움을 받아야 할 것만 같다.  

들어가는 1장' 독서가 인류의 뇌를 진화시켰다' 에서 말하길  

다치바나 : (...) 21C는 인터넷 시대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찾아낸 최첨단 정보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기본이 되는 책을 먼저 읽어두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검색엔진에 어떤 키워드를 입력해야할지 몰라 머뭇거리게 되죠'

다치바나 : 인간의 두뇌 회로는 글자나 책을 읽으면서 급격히 변화하게 됩니다. 인간이 어떤 언어 세계에서 양육되고 어떤 문자를 읽느냐에 따라 뇌회로가 크게 달라진다는 사실을 지금 읽고 있는 <
책읽는 뇌 : 원제 '프루스트와 오징어'(메리언 울프)>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일본어로 양육되는가, 중국어로 양육되는가, 영어로 양육되는가에 따라 뇌가 다르게 변한다는 것이지요. (...) 뇌이 발달이 책읽기와 관계가 있다는 사실은 뇌과학에서는 상식입니다. 일본어에는 히라가나와 가타카나와 한자가 있습니다. 결국 음과 문자의 의미가 미묘하게 틀어지게 되는데 뇌는 이런 비틀림이 존재할수록 그 복잡성에 순응하기 위해 고차원적인 발달을 이루어 냅니다.   

먼저 인용한 '인터넷과 책'에 대해서는 뒤에 좀 더 나오는데, '인풋과 아웃풋, 그리고 스루풋'에 대한 이야기 역시 흥미롭다.  

그렇게 독서에 관한 잡담(수준 높은.. 가끔 알아들을 수도 없는;;) 을 하다가

첫번째 북리스트인 '서재 책장에서 꺼낸 100권' 의 리스트가 나온다. 제목도 거창하게 '우리의 뇌를 단련하기 위하여'  
각각의 짤막한 코멘트를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리스트에 나온 대부분의 책들에 달린 짤막한 코멘트도 종종, 아니 자주 버거웠다는 것은 이야기해둔다.  

그리고 2장 '지(知)의 전체상을 파악하자' , 3장 '20세기는 과연 무엇이었나', 4장 '가짜에 속지 않는 법', 5장 '진정한 교양은 해독제가 된다' 이 나오고 두 번째 북리스트가 나온다.  

각각의 챕터와 소챕터를 달아두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그들이 내어 놓은 리스트에 관한 수다라고 보면 된다. 수다, 잡담 노xx 등으로 표현하고 싶은데, 그러니깐 '대담'보다는 말이다. 그마만큼 몰라도 눈에 들어오는, 계속 읽게 만드는 흡입력을 지니고 있다.

독서리스트와 그 리스트에 대한 심도 깊은 한 판 대담. 그것도 '괴물'하고, '거인'하고 (여기서 연상되는 사람과 팀이 있다는 건 굳이 이야기할 필요 없겠지만 ^^;;) 재미있고, 유익한 기획이다. 당연히 보관함은 빵빵해졌다.  교양에 대한 책들은 서점에 가면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대체로 두껍고, 크고, 묵직해서 책 외의 다른 용도로도 너끈히 쓸 수 있는 분량이다. 그렇게 쌓아나가는 교양도 있고, 요즘 젊은이들 교양의 부재에 치를 떠는 두 교양의 거장의 이야기를 훔쳐보고 자극 받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리스트에 넣어둔 내가 쥐약인 과학분야 도서들을 이번에는 내가 읽을 수 있을까? 과연?)  

부록으로 달린 '다치바나 다카시의 선택 - 섹스의 신비를 탐구하는 책 10권' '다치바나 다카시의 '실전'에 도움이 되는 독서기술 14개조' 는 무슨 이유로 부록으로 달아놓았는지 모르겠다. 책의 컨셉이나 톤과 맞지 않는데, (특히 전자;;) 뭔가요? 독자서비스인가요??

읽는 내내 한계를 느끼게 해 준 독서이긴 하지만, 역시 재미있었다. 시간이 지난 후, 재독했을 때는 부지런히 쌓은 교양으로 그들의 이야기에 좀 더 끼어들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결심이 결론.     

이런 저자들, (마쓰오카 세이고도 포함하여) 이 이야기하는 '독서'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는듯하다.
얼마전에 '일본인의 독서'에 대한 책들이 여러권 한꺼번에 나왔는데, 뭐가 그렇게 특별한지 힌트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찾아봐야겠다는 사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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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知의 정원을 읽고 담아둔 책들
    from 커피와 책과 고양이 2010-08-01 13:42 
    이 책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다치바나 다카시와 사토 마사루의 독서와 교양에 관한 대담과 400권의 북리스트가 코멘트와 함께 달려 있는 책   독서에 대한, 교양을 쌓기 위한 독서에 대한 교양의 거장들이 추천하는 책들 중 강력하게 땡기는 책들을 꼽아보았다. 거장 답게 낚는 실력도 훌륭하다.           다치바나 다카시 <나는 이런 책들을
 
 
moonnight 2010-08-02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00페이지라는 말씀에 일단 보관함으로 넣습니다만, 두려움이 엄습하네요. 후덜덜 ;;;;
그치만 읽어보고 싶어욧! >.< 용기가 필요한 책일 듯. ;;;
그런데 부록1은 정말 뜬금없네요. 독자서비스인가요? 라는 말씀에 큭큭 ^^;;;;

하이드 2010-08-02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딱 아는 부분밖에 안 읽혀서 의외로 술술 넘어갔어요. ^^ 부록1의 책들은 번역본이 없었다는 것이 아쉽;;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