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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칼랭
로맹 가리 지음, 이주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6월
평점 :
그로 칼랭의 뜻은 big hug, 파리의 서른 일곱 미혼남 쿠쟁이 기르는 2미터 20센티인 비단뱀의 이름이다.
이 책은 로맹 가리가 에밀 아자르의 이름으로 낸(희대의 문학적 사기를 친) 첫번째 책인데, 왜 저자의 이름에 로맹 가리를 썼을까?
프랑스 문학계의 유명한 상인 공쿠르상은 한 작가에게 한 번만 주어진다. 로맹가리는 로맹가리의 이름으로, 그리고 에밀 아자르의 이름으로 두 번의 공쿠르상을 받는 유일한 작가가 된다.
에밀 아자르는 로맹 가리라는 유명한 작가가 빠지게 된 매너리즘의 탈출구였을까, 평단과 독자에게 향하는 장난질이었을까,
에밀 아자르 이름으로 공쿠르 상을 받은 <자기 앞의 생>과 같은 착한 책도 좋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가리의 <새들은 페루에서 죽는다> ) 하지만, 아자르의 이름으로 낸 첫번째 책인 이 책은 여러모로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말장난이 많아, 처음에는 오타인가 싶었을 정도이고( 같은 출판사의 바로 전에 읽은 책에 오타가 있어서 생각이 글로 튀었음) 읽다보니 나오는 단어의 치환에.. 예를 들면, '밥한테 인사하고, 아빠 먹어' 이런식의 단어 치환과 한 챕터가 멀다하고, 삼천포로 빠지는 것.을 '그로 칼랭' 식, '비단뱀'식 이야기라고 우기고 있는데, 신선하다고 해줘야 하나?
에밀 아자르라는 생소한 이름으로 이 작품을 접한 출판사에서는 대단히 기발하고, 대단히 재치 있으며, 대단히 지적이어서,마음속의 뱀을 꿈틀거리게 하는 이 작품을 알아보았다. 눈 좋은 출판사의 편집자가 아니라, 평범한 소설 독자라도 이 작품의 가치를 계급장(?), 유명한 성공 작가의 이름, 떼고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작품이다.
다만, 너무 난해하다 싶은 뒷부분의 결말을 훅 덜어내었고, 이번에 나온 <그로칼랭>에는 덜어내었던 결말도 함께 부록으로 실려 있다. (잘 덜어내었다 싶다.)
파리에서 비단뱀을 기르는 쿠쟁은 관심을 바라고, 그 관심을 얻기 위해, 그리고, 외로움을 끌어 안기 위해 비단뱀을 기른다.
같은 건물에서 일하는 아프리카에서 온 드레퓌스씨를 짝사랑하고, '경의와 감사를 담아 귀하게' 여기는 '창녀'를 정기적으로 찾아간다. 흑인과 창녀에 대한 반복되는 문장들은 좀 거슬린다.
이래저래 좋은 작품인듯 하나, 뭔가 작가에게 농락당하는 듯한 찜찜함이 있는 (그러나, 이 작품이 로맹가리의 에밀 아자르로서의 첫 작품이란 걸 모르고 읽었다면, 없었을 찜찜함일 수도 있는) 그런 작품이다.
그래서, 이 작품을 추천하는냐. 묻는다면, 에밀 아자르/ 로맹 가리 좋은 다른 작품들 많습니다. 라고 답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