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간만에 홈즈를 읽기 위해 쌓인 먼지 후후 불어내고, 황금가지의 홈즈 전집을 꺼냈다.
반값행사할 때 사기는 했는데, 이와 관계없이, 이 커버는 반양장도 아니고, 양장도 아니고. 양장이라 부르지만, 이런 연약한 커버 양장으로 인정할 수 없어! 열린책들 커버랑 책커버 싸움(책받침 싸움 같은거 .. 없겠지만 .. 없겠지만;;) 하면, 단번에 쪼개지고 말거야.  

라는건 홈즈에 대한 글을 쓰는 뻘시작이고, 그러나 내가 지금부터 할 이야기도 그닥 영양가 있는 이야기는 아닐걸? 아마도. 
 
번역본을 읽는 것은 하두 오래간만이라 전혀 기억나지 않을 것 같았는데, 완전 새록새록 기억 다 난다. 몇 년만에 가는 딱 한 번 갔던 여행지, 하나도 기억 안 날 것 같지만, 막상 가 보면, '아, 여기' '맞어, 여기' 하는 식.  

읽으면서 짤막짤막하게 메모했던 것들을 옮겨 본다.  

근데... 영화 셜록홈즈 괜히 봤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영화 셜록홈즈 본 이후 처음 읽게 된 셜록 홈즈인데,
자꾸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랑 주드 로 얼굴이 겹쳐서 계속 그 두 훈남(몸도 잘 만들었던데 .. 응?)의 얼굴을 몰아내기 위해 애쓰고 있어. 쩝  

왓슨과 홈즈가 병원에서 처음 만나 서로의 취향을 물으며 룸메할 수 있을지 간보는 장면에서 
왓슨이 이야기한다.

'나는 불도그 새끼를 한 마리 키우고 있습니다..'  

왠지 풉 웃어버렸다. '불독 한마리'도 아니고, '불독 새끼'도 아니고, '새끼 불독'도 아닌, 불도그 새끼라니
왠지 속으로 힘주어 읽어 버렸다. 불도그 쉬키  

첫번째 시체의 주머니에서 나온 물건들을 나열하는 장면에서

'런던 바로드사의 금시계, 제조 번호 97163번, 순금 앨버트 목걸이, 꽤 묵직하다오. 프리메이슨 문장이 든 금반지, 불도그 머리 모양의 금핀, 눈은 루비로 되어 있소. (하략)'  

나 또 막 상상한다. 불독 머리 모양의 금핀, 예쁘겠는걸? 옷핀 같은건데 거기 불독 머리 장식이 있다는 거겠지? 눈은 빨간 루비로 되어 있고. 호오- 호오...  

어떤 남자가 홈즈네 집에 찾아와 편지를 전하는데, 홈즈가 그가 해병대 하사관 출신이라는 걸 맞추고, 그의 추리 과정을 왓슨에게 이야기해준다. 그러자 왓슨이

'정말 훌륭하십니다그려!'  

라고 대답. 크크. 또 웃어버렸어. 왓슨이 '정말 훌륭하십니다그려' 라고 말하다니, 노인네 같잖아. 안 그렇수? 노인네 같습니다그려!  

홈즈와 왓슨이 사건 현장을 발견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홈즈는 그날 저녁 보게 될 노만 네루다의 공연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트라 라 라리라 리라 레이 노래를 부른다. 

'아마추어 탐정은 마차에 깊숙이 몸을 파묻고 앉아서 종달새처럼 노래 불렀고, 나는 인간 정신의 여러 측면에 대해 깊이 사색했다.'  

풉- 이 부분은 분명 유머를 구사한거지? 코난 도일이?  홈즈가 트라라라라 라리 레이 하고 그 옆에 왓슨이 심각하게 앉아서 '인간 정신의 여러 측면'에 대해 사색하는 모습을 상상하고 난 또 낄낄낄  

앙리 뮈르제르의 '보헤미안의 생활'이란 책을 왓슨이 읽는다. 홈즈를 기다리면서. 

혹시 그런 책이 있을까 싶어 찾아봤는데 없네. 주석본 찾아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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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홈즈 읽는 중 - 2
    from 커피와 책과 고양이 2010-04-28 14:16 
    셜록 홈즈는 벽난로 선반 구석에 놓아둔 약병을 내리고 산뜻한 모로코 가죽 상자에서 피하 주사기를 꺼냈다. 그리고 희고 길며 신경질적인 손가락으로 주사기에 약을 채우고 왼쪽 셔츠 소매를 걷어올렸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긴 눈으로 힘줄이 불거진 팔뚝과 손목을 바라보았다. 팔에는 주사바늘 자국이 무수히 남아 있었다. 그는 결국 주사기를 살에 꾹 찌르고 조그마한 피스톤을 눌렀다. 그리고 흡족한 듯 긴 한숨을 내쉬며 벨벳 쿠션을 댄 안락의자에 몸을 묻었다.
 
 
2010-04-27 09: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hanicare 2010-04-27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들어서 다시 보니 사건해결 이런 부분보다
약간 시니컬하고 유머러스한 성격이나 상황 묘사가 재미있게 다가왔어요.

카스피 2010-04-27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불도그라니 마치 50~60년대 번역번 말투 같네요.ㅎㅎ 예전 번역투를 쓰고 싶었다면 셜록 홈즈도 샤록 홈쓰라고 했으며 더 재미있었을 것 같네요(샤록 홈쓰는 50년대 번역책에는 이렇게 번역되었더군요)^^

하이드 2010-04-27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어린이용 버전을 벗어나 어른 버전을 읽었을 때는 꽤 심각하게 읽었던 기억이 나요. 홈즈는 사실 마약중독자에 우울증이다. 막 이러면서요, 오래간만에 나이들어(?) 읽으니, 재미나게 읽히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