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날 밤, 도쿄는 건조하고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아카바네역 서쪽 출구로 내린 몇 안 되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귀가를 서두르며 흩어졌다. 그 속에 섞인 고다 유이치로 또한 홀로 아카바네다이 단지 방향으로 걸었다. 도중에 스물네 시간 영업하는 편의점에 들러 '따끈따끈'이라고 쓰인 케이스 안에 있는 캔 커피 두 개를 산 뒤 다시 5분 정도를 걸었다. 이윽고 높고 평평한 지대에 자리 잡은 단지 입구의 계단을 올라갔다. 계단을 오르자 붉은 비상등이 켜진 작은 파출소가 있었다. 평소처럼 유리창을 두드리고 들어가자 안면이 있는 중년의 당직이 "오늘 밤은 이르시네요"하고 한가롭게 웃는 얼굴을 보였다. 그러나 이르다고 해도 벽시계는 벌써 11시가 넘었다.
고다는 당직인 순사장의 책상에 캔 커피 하나를 두고 자기는 석유 난로 앞에 의자를 끌고 와서 앉았다. 그렇게 하고 나머지 캔 커피 하나를 마시기 시작했다. 여름은 차가운 커피. 겨울은 뜨거운 커피. 달짝지근한 캔 커피 하나를 근처의 파출소게어 마신 뒤 귀가하는 습관이 언제 생겼는지 그리고 어째서 계속하고 있는 건지 이젠 떠올릴 수도 없었다. 더군다나 한 주에 한두 번 이유도 없이 들렀다가는 남자를 상대가 어떻게 여기고 있는지도 생각하지 않게된 지 오래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도중에 캔 커피를 사서 파출소에 들르고 이름도 모르는 중년 경관과 잠깐 동안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를 한다. 그뿐인 소소한 일상이다.
"오늘 밤 어떻습니까?"  

-110~111pg 다카무라 가오루 <마크스의 산>中  -  

다카무라 가오루의 <마크스의 산>을 읽는 중에 위의 이야기를 만났다.
흡사 드라마 '심야식당'의 오프닝같이 쓸쓸하고 고독한 도시 한구퉁이의 풍경이다. 

건조하고 차가운 바람이 부는 도심 지하철역, 귀가하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걸음을 옮기다 어두운 골목에서 홀로 환하게 빛나고 있는 편의점에 들러 그 백색의 공간에 황송하게 마련되어 있는 상품들 중에 온장고를 열어 캔 커피 두개를 꺼내 계산을 한다.  붉은 비상등이 켜진 파출소에 들어가 당직 보는 순사장과 의미없는 수다를 떨며 캔커피를 노나마시고, 인사하고, 집으로 귀가하는 일상. 여름에는 차가운 캔 커피고, 겨울에는 뜨거운 캔 커피.  

달짝지근한 그 캔 커피의 맛을 나는 좋아하지는 않지만, 다른 모든 것처럼 '일상'이라는 중독의 카테고리에 들어가게 된다면, 그 맛을 좋아하는지,좋아하지 않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사진은 소설의 주배경중 하나인 미나미 알프스

소문만 자자하던 <마크스의 산>을 읽는 지금, 워낙 가독성 떨어지는 지루하고, 건조한 이야기라는 평을 들어서 그런지, 의외로 잘 읽히는 재미난 책이다. 이전 작품인 <황금을 갖고 튀어라>가 무지 안 읽혔던걸로 기억하는데, 다시 읽어보면 사실은 재밌는거 아닐까? 하는 생각가지 들정도. 

아직 중간 정도 읽는 중이라 뭐라 말하기 힘들긴 하지만, 등장인물을 드라마틱하게 묘사하는데 힘을 쓰는 작가는 아님에도 불구하고, 흘끗흘끗 지나가는 그 모습과 심리가 인상적이고, 강력하다. 그 중 '마크스' . 마크스가 뭔가 했는데, (아니, 워낙 제목을 보면 짐작을 했었어야 하는지도 모르지만) 사람 이름이었다.  이 사람이 범인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여튼 경찰은 아니고, 머리가 약간 이상하고, 제목에도 나올 정도이니 중요한 등장인물임은 분명하다.  

마크스의 심리묘사 장면이 길게 나오는데, 굉장히 섬찟하다. 미드고, 일드고, 아님, 뉴스에서고, 우리는 사이코패스니, 소시오패스니, 연쇄살인범이니 하는 악마같은 인물들을 보곤한다. 표정없고, 눈에 광기 어린, 인간의 감정이 말살된 존재. 어쩌면, 워낙 많은 범죄 이야기에 노출되어서, 그런 존재에 대한 어떤 스테레오타입, 그것도 눈에 보이고, 작가들(기자들)이 써 내는 모습으로만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크스가 어떤 존재인지는 모르지만, 불길한 존재라는건 틀림없다. 그리고 다카무라 가오루가 마크스의 심리의 결을 따라가는 것은 그 특유의 건조함을 간직하면서도, 뭔가 아주 좋지 않은 것의 속내를 본듯한 느낌에 정확하고 분명한 그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래서 더욱 더 공포감을 자아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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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0-04-07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앗-_-; 너무 재미있겠어요. 오늘 주문하려고 하는데요, 하이드님의 리뷰를 기다립니다! ^^

하이드 2010-04-07 16:47   좋아요 0 | URL
요즘은 딱 읽을 책만 사는데 말이죠, 이 책은 하두 오래 (몇 년이나!) 기다려왔던 책이라 냉큼 샀어요! 단단히 각오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잘 읽히고, 위의 장면 같은 맘에 와서 젖는 그런 장면들도 나오고 그러네요. 근데, 잘 읽히긴 잘 읽히는데, 왜케 진도가 안 나가는지 ^^; 어제부터 붙들고 있는데, 내일이나 되야 다 읽을듯요.

그린브라운 2010-04-07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그 건조하면서 음산하고 불길한 그 기분이 전권을 뜷어서....저는 그 책이 별로였어요....어떻게 보면 칭찬이겠지만 소장하거나 재독할 느낌이 들기에는 책이 저에게 버겁다고 할까요?? 하이드님께서 써주시니까 딱 느껴오네요 제가 싫어했던 그 느낌.... ^^

하이드 2010-04-07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일단 가독성이 좋다는데서 이 정도면 추천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마크스의 산' 이 나오는 부분이 굉장히 불길한데, 그게 나름 섬세해서, 느끼는 사람만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락방님은 제대로 느끼셨나보군요. ^^ 아, 저는 이 책에 안 반할 수가 없다는. 이전의 <황금을 갖고 튀어라>도 그 재미없고, 갑갑한데, 뭔가 마음 한구석을 바늘로 찌르는듯한, 그런 미묘한 좋은 것도 싫은 것도 아닌 둔중한 강렬함 때문에, 여즉 소장하고 있다죠.

올해 안에 번역되어 나올 여사의 다른 작품도 기대해봅니다.

미루 2010-04-07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먼저 읽어서 thanks to를 못눌러드려서 아쉽네요...

저는 산에 대한 묘사와 7계 형사들과 수사진행 과정에 대한 묘사가 무지무지 좋았습니다.
2권에는 묘사부분이 거의 없어 훨씬 빨리 읽히는데 저는 많이 아쉽더군요.
지금까지 읽은 경찰소설,일미 중 최고...........

지금 석양에 빛나는 감을 읽고 있는데 여기도 초반에 공장에 대한 묘사가 기가 막혀요.
다 읽으시고 나서의 리뷰도 기대할께요^^

하이드 2010-04-08 10:34   좋아요 0 | URL
경찰소설 좋아하는데, 우아, 이건 너무 좋잖아요. 형사들에 대한 묘사가 이렇게 생생할 수가요!
'석양에 빛나는 감'을 읽고 계시다니, 그저 부러울뿐입니다.

울보 2010-04-07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하이드님 페이퍼보고 질렀답니다,,ㅎㅎ

하이드 2010-04-08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나오자마자부터 마구 설레발을 떨기는 했지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