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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가 X에게 - 편지로 씌어진 소설
존 버거 지음, 김현우 옮김 / 열화당 / 2009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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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낸 손 그림들을 창문 바로 아래 붙여 놓았다고 했죠. 그렇게 하면 바람이 불 때마다 그림들이 제멋대로 흔들린다고요.
그 손들은 당신을 만지고 싶은 거예요, 당신이 먼 곳을 보고 싶을 때 당신의 고개를 돌려 주고, 당신을 웃게 해주고 싶은 거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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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가 X에게
아이다가 사비에르에게
책을 계속 읽다보면, 삶을 계속 살다보면, 이런 편지들도 만나는구나. 이런 '연애'편지들도 만나는구나.
약국을 하는 아이다가 73호 감방의 사비에르에게 보내는 편지들이지만,
그 편지는 사비에르에게 보내는 편지이기도 하고, 아이다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이기도 하고, 신이 있다면 신에게 보내는 편지이기도 하고, 들을 수 없겠지만, 세상에 보내는 편지이기도 하다. 그래서 역자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라고 여겨지는 연애 이야기가 세계화에 대한 저항으로 이어지고 있다' 고 말하기도 한다.
사비에르는 테러리스트 단체를 결성한 혐의로 이중종신형을 받고 복역중이다. 존 버거는 옛 교도소 73호 감방의 마지막 수감자가 만들어 두었던 수납 칸에서 편지 뭉치를 발견하고, 이 책은 그 편지의 이야기들이다.
아디나가 보는 특별한 세상, 기다림이라는 무거운 천에 사랑이라는 바늘로 꿰맨 절망과 희망의 색을 왔다갔다 하는 옷을 입은 아디나. 아디나의 세상도 녹록치가 않고, 그녀가 사랑하는 사비에르의 감방에서의 시간도 쉽지가 않다.
그들을 연결하고 있는 것은 사랑, 신념, 그들의 사랑은 서로의 결점에 대한 사랑, 나아가서 서로의 모든 것에 대한 사랑.
당신 손목에 있는 흉터를 봅니다.지나가는 세월에 대해 생각하고 있어요. 나의 모든 잘못과 결점 중에 당신은 어떤 게 가장 마음에 들어요? -66-
계속해서 편지를 보내 소식을 전하고, 사랑을 전하고, 믿음과 용기를 전하는 아이다. 편지와 함께 보내는 건 양말이기도 하고, 블루베리잼이기도 하고, 손그림이기도 하고. 때로는 희망, 때로는 절망, 때로는 포기, 그러나 결론은 사랑
포기가 포기를 하는 사람에게 하나의 선물이 되는 것은 왜일까요. 그걸 이해한다면, 우리에겐 두려움도 없을 거예요, 야 누르, 사랑해요. -183-
현실에 저항하고, 금지에 저항하고, 국가에 저항한다. 그들 사이의 커다란 공간과 메울 수 없는 시간에 저항한다.
희망과 기대 사이에는 아주 큰 차이가 있어요. 처음에는 그저 지속되는 시간에서만 차이가 있는 줄 알았죠. 희망이 좀더 멀리 있는 일을 기다리는 거라고 말이에요.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어요. 기대는 몸이 하는 거고 희망은 영혼이 하는 거였어요. 그게 차이점이랍니다. 그 둘은 서로 교류하고, 서로를 자극하고 달래주지만 각자 꾸는 꿈은 달라요. -40-
사비에르는 그 73호 감방을 나와 어디로 갔을까.
사비에르와 아디나에게는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세상의 많은 사비에르들과 그만큼 많은 아디나들은 같은 별 아래 그렇게 희망과 절망과 포기와 사랑을 오가며,
저항하고 있다.
존 버거는 저항을 이야기하고, 권력 쥔 자를 비판하는데,
그가 이야기하는 이와 같은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는 사랑. 이야기 앞에서, 나는 늘 당황스럽다.
사랑만이 답은 아니지만, 사랑이 답이라는 이야기도 늘 당황스럽다.
부재가 무라고 믿는 것보다 더 큰 실수는 없을 거예요. 그 둘 사이의 차이는 시간에 관한 문제죠. 무는 처음부터 없던 것이고, 부재란 있다가 없어진 거예요. 가끔씩 그 둘을 혼동하기 쉽고, 거기서 슬픔이 생기는 거죠. -115-
벽에 쌓아 둔 잡지를 한 발로 밟고, 벽에 기대면, 그제야 창문으로 보이는 하늘 이야기 같은 거. 열렬한 사랑이 무언가 더 깊은 것에 의해 승화되어 그들 주변을 특별한 공기로 애워싸고 있다. 그것이 특별하게 여겨지지 않을 때야 비로소 나는 존 버거를 이해할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