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결실이란 전에 이룩한 선(善)에 대해 회상할 일이 많다는 것이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것은 무엇이든 선으로 간주되어야 하네. 한데 노인들이 죽는것보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또 어디 있겠는가? 젊은이들도 똑같은 일을 당하지만 그럴 경우에는 자연이 반항하고 저항한다네. 그래서 젊은이들이 죽으면, 마치 강한 불길이 많은 양의 물에 의해 꺼지는 것처럼 보인다네. 그러나 노인들이 죽으면, 마치 외부의 힘이 가해지지 않는 가운데 불이 다 타서 저절로 꺼지는 것처럼 보인다네. 그리고 마치 과일이 설익었을 때에는 따기가 힘들지만 농익었을 때에는 저절로 떨어지듯이 젊은이들에게서는 폭력이, 노인들에게서는 완숙이 목숨을 앗아 간다네. 그리고 내게는 이런 '완숙'이란 생각이 너무나 즐거워. 내가 죽음에 더 가까이 다가갈수록 항해 끝에 마침내 육지를 발견하고는 항구에 입항하려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네.  

죽음을 무시할 수 있기 위해서는 젊어서부터 그런 신념을 품고 있어야만 하네. 그런 신념 없이는 아무도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없는 법이네. 우리가 죽는다는 것은 확실하며, 어쩌면 오늘 죽을지도 모르네. 그러니 언제든지 다가올 수 있는 죽음을 두려워한대서야 어떻게 마음이 굳건할 수 있겠는가? 
  

키케로의 <노년에 관하여, 우정에 관하여>중, '노년에 관하여'는 내가 요즘 집착하고 있는건지, 무의식적으로 그러는건지, 아님, 그냥 연속되는 우연인건지, 주구장창 읽게 되는 '죽음', '노년' 에 관한 책들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책이지만, 가장 모던한 책들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위에 옮겨 둔 첫문단은 정말 명문이지 않은가? (역자는 물론 천병희다.)

키케로는 '죽음'을 가장 자연스러운 일로 보고, 그 중에서도 나이들어 죽는 것이 가장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일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에너지를 소진하고, 불이 다 타, 소진해, 저절로 꺼지는 노인의 죽음과 강한 불길이 많은 양의 물에 의해 꺼지는 급작스러운 젊은이의 죽음을 비교한거 하며, 과일이 완전히 농익어 저절로 떨어지는 노인의 죽음과 설익은 상태에서 억지로 따지는 젊은이의 죽음, 그래서 노인의 죽음인 '완숙'이란 생각은 즐겁기 그지없다고,  

마지막 문장, '죽음에 더 가까이 다가갈수록 항해 끝에 마침내 육지를 발견하고 항구에 입항하려는 것 같은 느낌' 이라고 하는 부분에서는 독자이 나도 함께 희열을 느낄 지경이다. 아, 봐도봐도 좋다.

두번째 문단은 어제 읽은 기타노 다케시의 <죽기 위해 사는 법>, 그리고, 그의 영화 <소나티네>, <소나티네>에 대한 정보를 찾으며 읽게 된 기타노 다케시의 죽음관. 등에 대해 읽고 나서, 생각나서 옮겨 본 것이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죽음 앞에 공평한 인류일진대, '죽음'이라는 확실한 사실 앞에서 확실한 '신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는 거. 완숙이 되서 농익어 떨어지건, 억지로 많은 양의 물에 의해 꺼지건 (내가 지금 강렬하게 활활타고 있는지는 한번 더 생각해봐야겠고..) '죽음'에 대해 '준비'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중요하다는 것이 요즘의 생각이다. 더불어 '노년'에 대해서도.  

... 라고 생각하지만!, 역시 내 나이에 이제 같 꺾어진 예순인 '꽃다운' 서른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온당한가. 하는 생각도 동시에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의외의 복병, 리처드 예이츠의 <레볼루셔너리 로드>

 케이트 윈슬렛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나온 영화로 제작되었다는 것이 이 책이 가볍고 술술 넘어가는 로맨스 소설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데, 그렇게 생각했던건지, 하룻밤 독서로 생각했던 것이, 벌써 며칠을 이어가면서, 계속 읽을까 말까를 거듭 고민하다가,  

이 책이 무려 타임지 선정 100대 영문소설에 들어가는 걸 알고는  

일단 읽기로 마음을 굳히긴 했는데, 그리고, 처음 읽을 때는 별 생각이 없었던건지, 성의가 없었던건지, 배경이 1950년대 미국인 것도 별로 의식하지 못했는데, 그렇다면, 얼마전에 본 미드 '매드맨' 의 배경과도 얼추 닿아있지 않은가. 싶어서, (60년대 미국은 상당히 흥미로웠고, '매드맨'은 정말이지 거침없이 당대를 화면에 담아내었다. 아, 존 햄이여. ㅎㅇㅎㅇ) 그 모습들을 떠올리며, 재미를 느끼기 위해 애쓰는 중이다.  

재미없으면, 멈추라고, 닉 혼비가 그랬다구? 재미없는 책을 덮을 권리가 있다고 다니엘 페낙이 그랬다구? 무슨 얘기인지는 알겠는데, 그렇다고 재미있는 책만 골라 읽을 생각은 없다. 그렇다구, '타임지 선정 100대 영문소설' 타이틀 따위에 귀 팔랑거리는 내가 훌륭하다고 말하는 것도 절대 아니고.  

무튼, 굉장히 섬세하고, 자세한(속 터지게 자세한! 개미가 과자 부스러기를 들고 마라톤 하는 걸 하릴없이 보고 있는듯한!)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를 읽고 있자니, 뭔가가 부글부글...

사실, 이 책을 후딱 읽고 남경태의 <역사>를 드디어마침내결국파이널리 긴 호흡으로 읽어주려고 했었는데 말이다.

페이지 수가 그리 많은건 아닌데, 책도 우라지게 무거워서 막 팔 아프고, (원래 이런건 재미없다. 생각할수록 무지 의식되는 법) 이런 결론, 아직 150페이지 정도를 읽은 정도라 성급하겠지만, '결혼은 시망이요' 뭐 이런 생각만 잔뜩 들고, 볼드,밑줄, 별표,돼지꼬리땡야~  

프랭크와 애이프릴, 누가 나쁜건 아닌 것 같은데, 서로 지지리도 어긋나고, 사람의 존재 자체가 지옥, 그것이 한 집에 사는 배우자라면, 진짜 사는게 지옥. 아니, 왜 죽고 나서 갈지 안 갈지도 모르는 지옥을 현생에서 겪나요? 결혼이 인생의 무덤이라고 누가 말했나.  

이야기가 해피앤딩으로 흘러간다고 하더라도 초반부의 이 감정싸움이 나한테는 너무 벅차다. 내가 이와같은 '감정소모' 에 특히 약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긴, 누구라고 좋아하겠냐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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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0-01-12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볼루셔너리로드].. 저도 처음엔 [매드맨]이랑 연관지으면서 베티얼굴이랑 에이프릴이랑 연결해서 생각하고 막 ㅋㅋ
근데 초반부 읽다가 한 번 손에서 놓으니까 읽을수가 없어요. 힘들어요 힘들어; ㅠㅠ

그나저나 드레이퍼씨는 제 이상형의 기준을 뒤엎어버렸지 뭡니까 ㅎㅇㅎㅇ

하이드 2010-01-12 11:01   좋아요 0 | URL
시즌 1만 보고 일단 손 놓긴 했는데, 드레이퍼씨는 그동안 어디서 뭘하다 이제 나타났담!!
근데, 이건 영화가 있어서, 아무래도 디카프리오랑 케이트 윈슬렛 생각 안하기가 쉽지 않아요~ 쉽지 않아.

게다가 케이트 윈슬렛은 시대는 요즘이지만, 얼마전에 또 이런 부서진 가정의 바람난 주부역할 하는 영화 봤어서 더욱 머릿속에서 헷갈리고 있는 중 :(

blanca 2010-01-12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키케로 책은 꼭 읽어봐야겠어요. 레볼루셔너리 로드가 원작이 있었군요. 근데 제 경험상 영문100대 소설 같은 것들은 대체로 재미가 좀--;; 번역 때문에 그런 것인지. 요새는 재미없으면 오기로라도 계속 읽게 되더라구요. 책값도 아깝고. 지금까지 읽어온 페이지도 아깝고.

하이드 2010-01-12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로 뜨면, 아무래도 원작에 선입견이 들어가는 것 같아요. 번역은 나쁘지 않은데, 이런 섬세하고 '자세한!' 이야기 전개가 오래간만이라 약간 진땀 나는 정도;;에요. 키케로 책은 좋았어요. 제가 의외로(?) 아우렐리우스니 세네카니 이런 책들 보면서 생활에 즉각대입하는걸 좋아해요. ^^